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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DJ에게 딱 한번 거짓말, 영원히 마음에 걸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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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2호 10면

권노갑은 DJ의 ‘평생동지’였다. 한보 사건에 연루돼 부담을 안겼지만 DJ는 한마디 질책도 안 했다. 희한하게도 두 사람이 함께 찍은 사진은 별로 없다. 왼쪽부터 권노갑, DJ, 이희호 여사, 김상현 의원. [중앙포토]

물이 없으면 물고기가 헤엄칠 수 없듯이 DJ는 논리가 없으면 행동하지 못했다. 그래서 뭘 하든 논리부터 먼저 만들려고 했다. YS(김영삼 전 대통령)가 직관에 따라 ‘일단 저지르는’ 것과는 정반대였다. 그건 옳고 그름의 문제라기보다는 개인적 성향이었다. 1997년 1월 노동법 정국 때도 그랬다. 신한국당은 그 전해인 12월 26일 새벽에 국회의사당에서 노동법과 안기부법을 날치기 통과시킨 뒤 궁지에 몰려 있었다. 노동계와 재야에선 총공세를 펴고 있었다. 문제는 DJ가 덥석 동승할 처지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내부적으론 ‘정권 교체를 하려면 투쟁보다 노련한 국정 관리자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전략을 세운 상태였다. 하지만 그걸 외부에 공개할 순 없었다.

[장성민 전 의원 인간 金大中이야기 <25>]DJ 평생동지 권노갑

1월 6일, 국민회의 당사에서 간부회의가 열렸다. DJ가 말했다. “날치기와 파업 사태에 대해 현실론적인 접근을 해야 한다. (노동계) 파업 사태를 방관하는 건 직무유기니 노동법이 원천무효임을 전제로 여야 3당이 협상하자. 그에 앞서 먼저 영수회담을 하자.” 한마디로 전면투쟁할 생각이 없다는 거였다. DJ답게 그에 대한 이유를 덧붙였다. “자칫하면 여권의 음모론에 말려들 수 있어요. 노조파업을 유도해서 공안정국을 조성할 수 있고, 투쟁이 장기화되면 경제 위기 책임을 노동자와 야권에 전가할 가능성이 커요. 오히려 김영삼 대통령의 임기 말 권력 장악력을 높이고 여당 독주 정국을 만들 수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대화와 투쟁을 병행해야 합니다.” 일부 회의적 반응도 있었지만 DJ가 이렇게 구체적으로 대화를 강조하는데 그걸 반대할 사람은 없었다.

하루 뒤인 7일엔 오전에 눈이 조금 내렸다. YS는 대통령으로서 마지막 연두 기자회견을 했다. 오후에 마포 밤섬 사무실에 들른 DJ가 말했다. “연두 기자회견 다 봤지? 회견문 가져와서 기자들과의 일문일답을 그대로 읽어봐요.”

여기서 DJ의 ‘시청각 활용법’을 소개해야겠다. DJ는 종종 책과 신문을 비서들에게 읽어달라고 주문했다. 몸은 힘든데 읽어야 할 건 많을 때 그랬다. 신문 1면 톱부터 죽 읽어주면 눈을 지긋이 감고 듣다가 “잠깐, 거기 자세히 좀 읽어봐” 하고 말했다. 2개 신문의 사설을 눈으로 보면서 귀로 듣는 경우도 있었다. 이를테면 중앙일보 사설을 읽으면서 비서에겐 한겨레 사설을 큰 소리로 읽으라고 하는 것이다. 결코 허투루 듣는 건 아니었다. 중간 중간 논조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지적할 정도였다.

DJ는 눈으로 보면서 귀로 들으면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했다. 중요한 연설문은 스스로 소리 내 읽고 녹음한 뒤 그걸 들으며 수정하기도 했다. DJ는 내가 일문일답을 읽어주자 하나하나 자기 생각을 말했다. 극히 이례적인 일이어서 나도 깜짝 놀랐다. 좀 길지만 당시 DJ의 생각을 육성으로 확인하기 위해 그대로 인용한다.

▶기자=차기 신한국당 후보는 언제 어떻게 선출하나. ▶YS=적절한 때 전당대회를 개최하고 당 총재의 입장에서 분명한 내 생각을 당원과 국민에게 전달하겠다.

그 문장을 읽자마자 DJ가 말했다. “이렇게 하겠다는 건 당을 끝까지 쥐고 가겠다는 생각이지? 당내 대선구도에 직접 영향을 미치겠다는 것이고 맘에 드는 후보를 간택해서 내세우겠다는 생각인데, 과연 여권 후보들이 그대로 움직일지는 지켜봐야 해요. 자신이 임기 말까지 당을 쥐고 가겠다는 의도로 보여요. 그렇지? 또, 그 다음으로 넘어가요.”

( )는 내가 읽고 난 뒤 DJ가 언급한 내용이다. ▶기자=당정개편은 할 것인가. 이수성 총리가 당으로 갈 가능성이 있나? ▶YS=이 총리는 행정부에서 잘하고 있어 전혀 고려치 않고 있다. 당정개편도 계획 없다. (DJ=이것은 이 총리를 당내 후보들 대항마로 붙들어 둠으로써 이 총리도, 당내 후보들도 꼼짝 못하게 잡고 가겠다는 의미 아니겠어?)

▶기자=야당 총재 면담을 수용할 생각은 없나. ▶YS=민주주의 선진사회에서는 국회에서 표결하지 못하게 하는 폭력적 방법을 사용한다든가, 의장실을 점거한다든가, 부의장을 식당에서 납치하는 예가 없다. 이 시점에서 야당 총재를 만날 계획이 없다. (DJ=아니, 엊그제까지 민주화 투쟁을 하면서 독재 세력의 의회 횡포를 폭거라고 주장한 사람이 대통령 됐다고 어떻게 이렇게 돌변할 수 있지? 의회를 무시하고 야당을 무시한 대통령의 말로가 얼마나 비참했는지 뻔히 보았으면서. 이제 김영삼씨도 결국 불행의 길로 들어서겠구먼. 참 안타까운 일이에요.)

▶기자=북한 체제 내부의 심각한 변화와 한반도 평화 유지가 어려운 상황이 와도 대선 등 정치 일정이 차질 없이 지켜질 것으로 보는가. ▶YS=대단히 심각한 얘긴데 대통령으로서 가설을 갖고 미리 얘기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DJ=가설은 말할 필요가 없다고? 이게 무슨 소리여? 지금 남북 문제가 얼마나 위기 상황인데 이런 태평스러운 생각으로 국정을 이끌고 있는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에요. 김정일과는 정상회담 안 한다고 무산시켜 버리고, 남북 관계가 지금 매우 불안정한 상황에서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돼요.)

▶기자=마음에 드는 후보를 밝힐 용의는 없나. ▶YS=추진력·능력·깨끗함·도덕성을 갖춰야 한다. 지금 구체적으로 말하면 다하게 되는 것 아닌가. (DJ=자신도 천문학적 대선자금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텐데 어떻게 이런 주장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국민이 야당 하라고 찍어준 표를 국민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바로 군부세력과 3당 야합해서 배신해 버린 사람이 어떻게 차기 지도자 덕목으로 깨끗한 도덕성 운운할 수 있는지….)

▶기자=92년 대선 당시 사용한 선거자금을 밝힐 용의는. 노태우 전 대통령으로부터 직간접으로 자금을 받았다면 그 규모는. ▶YS=당시 노태우 대통령은 10월초쯤 선거 두 달 전에 갑자기 선거 중립을 이유로 탈당했다. 그 전까지 주례회동을 통해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났는데 그때부터 만날 이유도 없고 일절 만나지도 못했다. 선거 후에도 만나지 못했고 취임식 날 처음 만났다. 그러니 그런 기회가 전혀 없었다. 나는 과거에 대통령이 돈 받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대통령이 되면 절대로 안 받겠다고 생각했다. 대통령이 되고 나서 단 1전도 받지 않았다는 걸 하나님과 국민에게 떳떳이 말할 수 있다. (DJ=김영삼씨란 사람은 능히 이렇게 말하고도 남을 사람이에요. 새빨간 거짓말을 하고 있어요. 지난 대선 때 천문학적인 대선자금을 뿌린 것으로 알고 있는데 부인한다고 부인해질 수 있겠어요. 내가 노태우씨 측근으로부터 들은 것과는 정반대예요.)

기자들의 질문이 몇 개 더 이어졌고 DJ의 반응도 더 있었지만 나중에 책에서 자세히 쓰겠다. 연두 기자회견은 실패작이었다. 특히 YS가 노동법 사태에 대해 사과는커녕 자기 자랑을 늘어놓는 듯한 태도를 보인 데 대해 여론의 반응이 싸늘했다. 상황이 갈수록 악화되자 YS도 어쩔 수 없이 영수회담을 수용했다. 1월 21일, 청와대에서 2시간17분 동안 진행된 영수회담에서 YS는 DJ와 JP에게 노동법 재개정을 사실상 약속했다. ‘아무도 못 말린다’는 YS로선 굴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긴 터널의 시작일 뿐이었다.

영수회담 이틀 뒤인 23일, 한보철강 부도 사태가 터졌다. 부실대출 규모 5조7000억원. 건국 이래 최대 금융부정 사건이었다.

DJ는 노동법 때와는 다르게 대응했다. YS 책임론을 공공연하게 제기했다. 25일 연청 충북도지부 개편대회에서 DJ는 “한보 거액 대출은 대통령의 지시와 양해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필요하면 김 대통령도 조사를 받아야 한다”고 맹공을 퍼부었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1월 28일 합동 의총을 열고 임시국회 소집과 국조권 발동을 요구했다. 고양이가 쥐를 몰 듯, 맹렬하게 여권을 궁지로 몰아갔다. 하지만 호사다마(好事多魔)였다. 신한국당도 앉아서 당하진 않았다.

1월 30일 신한국당 김철 대변인은 “야당 인사 여러 명도 한보 비리와 관련 있다”고 주장했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발칵 뒤집혔다. 김 대변인의 발언은 검찰 수사 내용을 바탕으로 한 게 뻔했다. 근거 없다고 넘길 상황이 아니었다.

다음 날인 31일, DJ가 마포 사무실로 권노갑 의원을 불렀다. “신한국당에서 야당 측근 인사 연루설을 흘리는데 혹시 자네 한보와 특별한 관계가 있는가? 별일 없지?” 권 의원이 말했다. “예, 저는 한보와 상관없습니다.” DJ는 크게 안심하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2월 5일 조선일보에 기사가 터졌다. 한보가 청와대 홍인길 총무수석에게 7억, 권노갑 의원에게 5억원을 줬다는 검찰발 기사였다. DJ에겐 청천벽력이었다. 권 의원은 새벽에 곧바로 일산 자택으로 호출됐다. “대체 어찌된 일인가.”
DJ가 물었다. “동국대 선배인 신한국당 정재철 의원 소개로 한보 정태수 회장을 만났는데 93년 2월 초 5000만원을 받아서 민주당 최고위원 경선 때 썼습니다. 그 뒤 추석 때 등 두 번 더 5000만원씩 받았습니다. 대출 외압과는 전혀 상관없고 조건이 없는 돈이었습니다.” 권 의원이 면목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알았어. 그럼 빨리 국민과 언론에 있는 대로 솔직히 시인하고 사실대로 말하라고.”
권 의원은 곧바로 기자실로 가 이런 내용을 밝혔다. 국민회의가 한보에 대해 더 이상 마구잡이 공세를 펼 수 없는 상황이 돼 버린 것이다.

DJ는 조세형 부총재에게 당무를 맡긴 뒤 일주일간 일산 자택에 칩거했다. 충격이 적지 않은 듯했다. 하지만 ‘평생동지’인 권 의원에게 서운하다는 내색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러기엔 두 사람은 너무 가까웠다. DJ가 그동안 진 마음의 빚도 적지 않았다. 권노갑은 나중에 사석에서 회한을 토로했다. “내가 평생에 딱 한 번 총재에게 거짓말을 했다. 그게 영원히 마음에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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