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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특집] 여의도의 여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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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결혼도 미루고 청춘 다 바친 당원에서 이혼 전문 변호사까지…
300여 명의 여성이 금배지를 향해 날개짓을 한다"

총선을 8개월여 앞두고 여의도가 술렁거린다. 덩달아 정당에 청춘을 바친 여성들, 국회의 최장수 아줌마 보좌관, 재야 여성단체 활동가의 가슴도 뛴다. 국회 입성이라는 목표를 향해 불나방처럼 몰려드는 여성들의 열정과 그늘을 살폈다.

올해 45세의 최순애 씨는 83세의 노모와 단둘이 산다. 세상의 잣대로 보면 지극히 평범한 소시민의 1남 5녀 막내딸이다. 젊어서 ‘정치’와 결혼하느라 혼기를 놓쳤다.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봐도, 앞날을 내다보아도 최씨의 가슴은 답답하다.

올해는 최씨가 정치판에 들어온 지 꼭 10년. 의학전문지와 한 여성신문의 정치부 기자를 거쳐 2002년 대선 때 이회창 후보 캠프에 합류했다. 역할은 ‘2030 위원회’ 여성사업단장. 그 후 중앙차세대여성위원장을 거쳐 지난해 7월엔 한나라당 대표실 부실장이라는 직책까지 올랐다. 4·27 재·보선 이후 안상수 대표가 당 대표직을 물러나면서 최씨도 함께 물러났다. 정당에서 뛰는 사람들은 그럴 때가 가장 당혹스럽다. 다시 뚜렷한 보직을 맡지 않는 이상 당사에 나가기도, 국회 사무처를 기웃거리기도 민망하다.

지난 10년의 기회비용만 따져봤을 때 그에게 ‘정치’란 손해 보는 장사였다. 당직을 유지하고자 이래저래 쏟아부은 돈은 어디로 얼마나 흘러들어갔는지 모른다. 저축한 돈도 한 푼 없고 가정도 꾸리지 못한 채로 10년 세월은 거짓말처럼 흘러가버렸다.

“요즘 막스 베버의 <소명으로서의 정치>라는 책을 읽고 있어요. 그 책에서 말한 대로 소명을 가지고 정치한다는 게 현실 정치 세계에서는 참 어려운 일이에요. 특히 저같이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난 여자가 소명의식만으로 버티기란 정말 어렵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는 요즘입니다.”

막스 베버는 이 강연집에서 “내가 헌신하기엔 세상이 너무나 어리석고 비열해 보일지라도 이에 좌절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 사람, 그리고 그 어떤 상황에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말할 확신이 있는 사람, 이런 사람만이 정치적 ‘소명’이 있다”고 말한다.

최씨는 지난 18대 총선 때는 비례대표 신청을 했지만 후순위로 밀렸고, 다음 총선에서 또 한 번 도전할 생각이지만 솔직히 지금은 절망감이 먼저 앞선다.
“한나라당의 한계가 뭔지 아세요? 법조 출신과 교수, 관료 출신들이 선거 때만 되면 대거 공천을 받으려고 몰려든다는 거죠. 이런 상황이니 오랫동안 정치 현장에서 훈련이 된 정당에서 키워진 여성들이 공천을 받기란 하늘의 별 따기가 됐어요.”

돈 없고 ‘빽’ 없으면 줄이라도 잘 서야
최씨가 차세대 위원장으로 선출될 때의 에피소드다. 위원장직을 제안받고 한참이 지나도 말이 없기에 나중에 알아봤더니 학벌 때문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자리를 맡게 됐지만 그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분이 삭혀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부자당·기업당·서울대당·법조인당의 행태 그대로더라고요. 아무리 정책을 그럴싸하게 내놓아도 이런 의식과 행태가 바뀌지 않는 한 한나라당의 변화는 공염불에 그치고 말 겁니다.”

설사 우여곡절 끝에 공천을 따냈다 하더라도 또 다른 문제가 남아 있다. 바로 ‘돈’이다. 집안의 도움을 받거나 남편의 재력이 없다면 최씨 같은 평범한 여성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의 선거자금을 댈 재간이 없다.

“한나라당 내에서 국민참여경선을 통해 상향식 공천을 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지만 우리 같은 신인에겐 오히려 불리한 제도예요. 당내 지역 경선에서 대의원에게 한 표를 호소하려면 밥도 사야 하고 선물 공세도 필요하기 때문에 지명도와 돈 있는 후보가 유리할 수밖에 없거든요. 재력 없이 실력과 진정성으로 승부를 걸기란 천운이 아니면 힘들죠.”

별다른 자산 없이 여성이 ‘자기 정치’를 하려면 당 권력자의 주변을 맴돌아야 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라고 그는 말했다.
“정치권에 진입하려는 여성들이 돈 없고 인맥이 없으면 마지막으로 매달리는 게 ‘실세’에게 줄서기입니다. 최고 권력 주변을 맴돌면서 그 사람을 엄청난 충성심으로 돕는 거죠. 저만 해도 지난번 당대표 선거 때 홍준표 후보가 아닌 원희룡 후보를 도왔어요. 솔직한 심정으로 제가 미는 후보가 당대표가 되면 공천을 받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기대를 품게 되죠. 결국 홍 후보가 권력을 쥐었고, 그를 돕던 참모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겠죠. 다음 총선에서 어떤 식으로든 당 대표의 입김이 작용할 텐데 누가 유리하겠어요? 벌써부터 여의도에는 친이·친박·친홍 세력에게 공천권이 나뉠 거란 얘기가 돌고 있어요.”

그에게 내년 총선은 마지막 도전의 기회가 될 듯하다. 나이와 경제 상황을 고려해볼 때 그는 “더 이상 남은 인생을 저당 잡히긴 싫다”고 말했다. 그가 요즘 다시 당직을 붙들려고 뛰어다니는 이유도 공천 심사에서 조금이라도 더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는 노력이다. 최씨가 건넨 마지막 말은 애처로울 지경이었다.

“지난 총선 때는 ‘진짜 깨끗한 선거 한번 해보자’는 순진한 꿈도 꿔봤어요. 그런데 이젠 그런 생각 안 해요. 남에게 지탄받을 정도가 아니라면 현실과 타협을 좀 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제가 공천받을 준비를 한다고 하니까 주변에선 돈을 한 번에 쓰지 말고 가랑비에 옷 젖듯 조금씩 뿌려야 효과가 있다고 조언하는 분도 있는데 그런 말을 들을 때면 회의가 밀려들죠.”

17대와 18대 총선을 지켜본 모 정당의 여성 A씨도 여전히 정치판에 금권선거가 만연하다고 말했다.
“여자들이 돈 바치고 몸 바쳐 공천을 따냈다는 얘기가 떠도는데 전혀 근거 없는 얘기가 아닙니다. 벌써 ‘5당 3락’이라는 얘기가 여의도에 돌아요. 50억원이면 붙고 30억원이면 떨어진다는 얘기죠. 18대 총선 때는 ‘3당 2락’이었어요. 그러니 평범한 여성들은 어디 명함이나 내밀겠어요?”

A씨는 선거판에서 공천을 얻으려고 여성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로비를 벌이는지 B씨의 사례로 설명했다.
“수년 전 30대 후반의 B씨가 정당에 불쑥 가입했습니다. 그리고 1년여 후 선출직 당직에 도전했어요. 장애인위원장·청년위원장·네티즌위원장 등 이런 자리는 중앙당의 지명 없이도 선출직으로 도전해볼 만한 자리거든요. 당선되면 공천 등에서 유리한 경력을 쌓게 된다는 장점이 있죠. 그런데 B씨가 낸 후보 경력이 위조됐다는 사실이 밝혀졌어요. 당에서는 이 문제를 쉬쉬하며 덮었죠. 그 후로 B씨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당 사무처 국장, 국회 보좌관들을 찾아다니며 전방위 로비를 벌이더군요. B씨는 이명박 정부가 집권한 동시에 모 기관에 자리를 잡습니다. 이후 18대 공천에서 4배수 안에 들며 공천 면접심사를 통과했지만 결국 최종까지 오르진 못했어요. B씨는 다음 총선에도 출마를 준비한다고 들었어요.”

정치판에서 젊은 여성으로 살아남기
지난 18대 총선에서 비례대표 공천 심사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본 여성 당원 C씨의 말을 들어보자.
“공천받고 순번을 정했다고 해서 끝난 게 아닙니다. 비례대표 순위가 언론에 공개되기 전까지 치열한 음해와 언론플레이가 진행됩니다. 공천 심사위원이 정해지면 어떻게 해서든 그들의 전화번호를 따고 로비에 들어가요. 실제로 17대 총선에서 모 여성 후보자가 이 방법으로 앞 순번을 받은 후보의 약점을 공략해 공천 심사위원들을 설득, 국회에 진출한 사례가 있습니다. 단지 여성만의 문제로 볼 순 없지만 여성이 남성들보다 더 불리한 환경이기 때문에 여성 후보들 사이에서 더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일이죠.”

최근 국회의원선거의 여성 후보자 수가 크게 늘었다. 17대 국회의원선거에서 11.5%(156명)였던 여성 후보는 18대 국회의원선거에서 16.5%(215명)로 늘었다. 하지만 16대 때 16명이던 여성 당선자는 17대 때 39명이 됐지만 18대 때는 41명으로 단 두 명만 증가했다. 그만큼 당선 확률은 낮아졌다는 얘기다.

비례대표의 경우 선거법이 여성 50% 할당을 규정하기 때문에 당연히 50%를 공천해야 하므로 여성 후보 증가는 비례대표 부분을 빼고 봐야 한다. 지역구 후보만 놓고 볼 때 18대 국회의원선거 전체 후보자 1113명에서 여성은 132명으로 11.9%다. 17대 총선에서 5.6%(65명)였으니 두 배 가까이 늘었다. 그러나 당선자는 많지 않아서 지역구에서 14명 당선에 그쳤다. 18대 지역구 여성 후보 당선율은 10.6%로 17대 선거(15.4%)에 비해 크게 줄어들게 된다. 이처럼 여성 후보는 늘고, 당선자는 줄어드는 현실 앞에서 여성들은 더욱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한다.

한나라당 사무처 직원은 “한나라당만 국한시켜놓고 볼 때 서울을 비롯한 전국 지역에서 19대 총선에 도전할 여성 당직자를 합치면 100여 명이 넘을 것”이라며 “거대 여당이 이 정도니 민주당과 다른 군소 정당의 출마 의사를 밝힌 여성들까지 합치면 300여 명은 족히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두아 의원실의 김혜원(32) 보좌관. 그는 한나라당 최연소 시의원 출신이다. 2006년 지방선거 때 만 28세에 마포에서 서울시 의원으로 당선돼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96학번인 김 보좌관은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당 사무처 채용 공고를 보고 정치권에 발을 들였다. 정치를 하고 싶어 스스로 한 선택이었다. 김 보좌관은 2000년 11월 당 사무처 6기 공채로 입당한 지 6년 만에 시의원에 당선됐다. 디지털위원회에서 함께 일한 당협위원장이 눈여겨보고 지역 시의원으로 전략 공천해 얼떨결에 나갔지만 당선으로 이어졌다.

서울 여의도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한눈에 봐도 앳되고 해맑은 얼굴이었다. 시의원을 했을 거라는 생각이 안 들 정도였다. 4년의 시의원 생활을 평가해달라고 하자 그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제가 공천을 받은 뒤로 지역에 별별 소문이 다 돌았죠. 돈 주고 공천받은 거라느니 결혼도 안 한 상태였는데 이혼녀라느니 이런 식이에요. 여성이 짊어질 수밖에 없는 불이익이라고 생각했죠. 더 심한 말도 나왔지만 제가 떳떳하니 굴복하지 않았어요.”

그는 ‘저렇게 어린 여성이 무슨 정치를…’이라는 주위의 시선을 무마시키려고 뚝심을 보였다. 원치 않는 술자리는 모두 거부했고 ‘대중교통요금 전격 인상’ 같은 서울시에서 내려오는 ‘주문’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면 관행을 무시하고 반대표를 행사했다. 주변의 눈총을 받기도 했지만 돈 정치와 비리 정치를 하지 않았기에 큰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시의원 생활을 마치고 나서 바로 국회 보좌관직을 걸으면서 또 다른 정치 환경에 도전 중이다.

“시의원은 제게 값진 경험이었지만 동시에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생각도 깨닫게 해줬어요. 아직 젊으니 좀 더 다양한 보직을 맡으면서 정치 경험을 해보려 합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제 정치를 해볼 겁니다.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정당 활동 자체가 아직까지도 젊은이들에게 부정적인 시각으로 비쳐진다는 거죠. 정치의 어두운 부분을 없애나가는 것도 저 같은 젊은이들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내년 4월 총선 이후엔 대선 캠프에 합류하려고 한다. 사무처 생활 6년 만에 시의원을 경험한 김 보좌관은 그래도 행복한 경우다. 20, 30대의 평범한 여성이 정치판에 들어와 살아남기란 만만치 않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고민하는 한 30대 여성 당원 K씨의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얘기를 들어보자. 그는 젊은 여성들이 정치판에서 겪는 고통을 연예계와 비교했다.

“자고 일어나면 터지는 스캔들, 그래도 연예계는 스타가 되고 나서 그런 일이 벌어지죠. 하지만 정치판은 아예 그 싹부터 자르려고 혈안이 돼 있는 사람들 투성이예요. 사방이 온통 적이죠. 누군가 부상하면 일단은 밟고 누르고 봐요. 그게 여성이라면 더욱 심합니다. 실력이나 자질 검증보다 도대체 어떤 ‘빽’이 있어 선택됐을까라는 의문부터 품고 달려들거든요.”

K씨의 하소연은 계속 이어졌다. “정치판은 돈 없이 정치한다고 소문나면 우스운 꼴만 당하기 십상이라 정당의 젊은 여성들이 모여서 얘기하다 보면 ‘돈 많은 사람과 결혼해 돈으로 편하게 정치하는 편이 낫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아요. 젊은 사람들이 구태 정치의 판을 바꿔야 하는데 기존 판에 물들어가는 거죠.”

물통 걷어차며 당협 사무실 들어가는 이유
한국여성정치연맹 부총재인 양경숙(49). 81학번인 양씨는 대학 시절 학생운동을 거쳐 졸업한 후엔 재야단체인 민청련에서 조직 부장을 지냈다. 1989년 말 민주당이 재야인사를 당에 영입할 때 중앙 당직자로 정당 활동을 시작해 중앙당에서 5년간 당직생활을 했다. 양씨는 선거의 성공과 실패를 모두 경험한 여성이다. 두 번의 서울시 의원 당선에 이어 2002년과 2006년, 지난해 종로구청장 선거에 도전했지만 세 번 모두 뜻을 못 이뤘다. 이에 굴하지 않고 내년에 또다시 총선 도전을 목표로 뛴다.

“시댁이 오랫동안 종로에 터를 잡고 살아 출마를 결심했어요. 2002년 처음 구청장 선거에 도전할 때 1차 경선에선 44% 지지로 나머지 네 명의 남자 후보를 제치고 일등을 했는데 과반수를 넘지 못해 2차 투표를 해야 했어요. 그때 남자 후보들이 단합하는 바람에 3표 차로 떨어진 건 지금도 아쉽습니다.”

24년 근속 여성 보좌관도 19대 총선에 도전
2006년과 지난해에도 공천 신청을 했지만 지역위원장의 추천을 받지 못해 공천에서 떨어지고 다음 총선을 꿈꾼다. 종로는 정치 일번지로 여야 거물들이 대거 몰리는 곳이다. 내년에 정세균 전 민주당 대표가 종로에 출마한다는 설이 나돌아 양씨는 다른 지역구나 비례대표로 공천을 받겠다는 생각으로 뛴다.

‘한국 예산 결정의 정치과정 분석’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재정·예산 전문가로 통한다. 지난해 지자체 선거 이후 서울시 의회를 비롯해 전북 도의회, 기초 자치단체 등 50여 군데 강연을 뛰었다. 자신의 전공 분야를 살려 보폭을 넓혀왔다.

“대학 시절부터 포함하면 30년 넘게 정치에 발을 담그고 산 거죠. 인생의 가치와 의미를 정치에서 찾았는데 지금 정치를 모르는 척하는 건 제 삶 자체를 부정하는 꼴입니다. 끝까지 정치판을 못 떠날 것 같아요.”

정치권 입성에 대한 여성들의 꿈은 국회 안에서도 이뤄진다. 수년 전부터 여성 보좌관의 국회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여성 보좌관들도 ‘자기 정치’를 꿈꾸는 시대가 왔다. 유시민·서석제·김학용·권택기·차명진 등 그동안 의원직을 역임한 보좌관 출신 남자 의원은 있었지만 여성 보좌관이 국회의원에 당선된 경우는 없었다.

한나라당 고흥길 의원실의 장석영(45) 씨는 올해로 보좌관 근무 24년을 맞았다. 남녀를 통틀어 국회 최장수 보좌관이다. 1988년 정선호 의원실에서 보좌관 생활을 시작해 세풍 사건을 겪은 서상목 의원실을 거쳐 지금 고 의원까지 세 명의 국회의원을 보필했다. 전문대학에서 전자계산학을 전공하고 IBM 딜러 회사에 근무하다 국회에 IT 전문인력으로 영입됐다. 지역구 전산 관리를 통한 유권자 관리, ARS 여론 조사 등 국회의 전반적인 컴퓨터 운영을 정착시키는 데 역할을 담당했다. 올 1월에는 교섭단체 보좌진으로는 처음으로 ‘근정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3선의 고 의원을 보좌하며 국회보다 지역구에 있는 날이 더 많다 보니 이젠 지역에서도 “한번 출마해보라”는 얘기를 심심치 않게 듣는다. 9급 공무원으로 시작해 지금의 4급 지위까지 올라오는 동안 뼈를 깎는 노력이 뒤따랐다고 한다.

“모시는 의원님의 지역구 선거가 있을 땐 새벽 1시까지 지역에서 뛰다 집에 잠깐 들어가고 다음날 새벽 4~5시에 나와 또 뛰는 일이 비일비재했죠. 집에서 나올 땐 아이들 밥상을 다 차려놓고 왔습니다. 차라리 결혼 안 하고 미혼으로 정치 활동을 했던 여성들은 저보다 사정이 나았을 겁니다. 평생 시부모 모시고 애 둘 다 키워 대학 보내고 제 일과 가정일 모두를 소홀함 없이 하려고 애써왔어요. 그 와중에 4년제 대학 편입도 했고 지금은 대학원 4학기째입니다. 대한민국 아줌마의 힘이죠.”(웃음)

지난 7월 한나라당 보좌진의 권익을 도모하는 한보협(한나라당보좌진협의회)의 회장 선거에도 출마했지만 심재철 의원실의 안일근 보좌관에게 져서 고배를 마셔야 했다. 장 보좌관도 내년 19대 총선을 앞두고 처음으로 국회의원에 도전하겠다는 욕심을 낸다.

“주변에선 보좌관 역할은 이제 할 만큼 했으니 지역구에 도전해보라는 제안을 많이 하세요. 솔직히 말해 오랫동안 정치권에 머물다 보니 이제 내 정치를 하고 싶다는 욕심도 나죠. 하지만 지역구에 나가는 건 의원님을 모시는 보좌진으로는 좀 버거운 일이고 한나라당 비례대표 공천을 받으려고 합니다. 그동안 당 최고위원들이 ‘이제 보좌관들에게도 기회를 주겠다’고 말했지만 아직까지 지켜진 적이 없었거든요. 제가 걸어온 경력과 노하우만으로도 도전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국회에는 여야 합쳐 전체 598명의 보좌관이 있으며 이 중 여성 보좌관은 36명이다.
이정현 의원실의 이현진 보좌관은 “불과 10년 전만 해도 국회에 여성 보좌관 자체가 드물었기 때문에 아직 토양이 안 쌓였을 뿐”이라며 “내색은 안 하지만 지금도 장 보좌관같이 자기 정치를 꿈꾸는 여성 보좌관이 다수 있고 출사표를 던지는 여성 보좌관도 더 많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야 4당 여성 국장들 왜 모였나
각 정당의 여성 국장들도 국회 입성을 꿈꾸는 예비 정치 지망생들이다. 이들은 국회에서 열리는 여성 정책 토론회에 빠짐없이 참가하고 여성의 권익 향상 모임에 참가하면서 당 안팎에서 정치적 입지를 쌓아간다. 민주당의 김유정 의원, 유승희 전 의원과 한나라당 김금래 의원도 여성 국장 출신이다.

민주당 정춘생(42) 여성 국장.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여성 정책 관련 논문을 준비하다 1997년 대선 캠프 일을 도우면서 정당과 인연을 맺었다. 1998년 당직자 채용 공모를 통해 당직 생활을 시작했으니 올해로 13년째다. 새천년민주당 창당과 2002년 노무현 정부 출범, 열린우리당 창당 과정에 모두 참여한 그에게도 ‘자기 정치’는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다.

">“대학원 논문을 준비하다 보니 여성들의 불이익과 부당한 차별이 실감나더라고요. 여성 정책 관련 일을 해보고 싶었는데 마침 길이 열려 정당 활동을 하게 된 거죠. 이젠 저도 지역이든 비례든 나가 제 정치를 하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민주당 안에도 계파정치의 잔재가 남아 있어 누군가의 도움 없이 공천을 받고 정치권에 진입한다는 게 쉽지만은 않습니다.”

평균 4.5년 수준으로 정당의 이름이 수차례 바뀐 민주당의 역사도 여성이 정당에서 꾸준히 성장하기 힘들게 만든 걸림돌 가운데 하나다. 정당 활동 24년 차를 맞은 권향엽 민주당 의사국장도 내년 총선에 도전장을 내밀 생각이지만 상황은 그다지 녹록하지 않다. 권 국장은 1987년 대선 때 선거 자원봉사부터 시작해 지구당과 중앙당 경험을 순차적으로 밟으면서 정당에서 커온 인물이다. 그 기반을 바탕으로 2002년과 2006년 지방선거에서 비례대표로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모두 당내 경선에서 고배를 마셨다.

“새롭게 당이 만들어질 때마다 새 인물을 영입하다 보니 내부 당직자들은 늘 뒷전으로 밀리죠. 변호사 10년 하다 들어온 사람이 당무 10년 본 사람보다 더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경우가 많거든요. 정당의 국장급 여성 당직자들은 사명감으로라도 선거를 향해 도전 의사를 꾸준히 밝혀야 한다고 생각해요.”

‘여(女)권 연대’ 물밑작업 활발
진보신당의 김수경(43) 여성위원회 운영팀장. 독립영화운동과 노동운동을 하면서 여성 진보단체인 민우회에서 활동했다. 김 팀장은 결혼 후 육아 문제로 집에 머물며 지역사회에 관심을 기울이며 정치 활동을 이어나갔다.

“아이를 키우다 보니 자연스럽게 학교 운영위원장도 맡게 됐고, 지역 여성단체와 연계해 ‘우리 동네 시립 보육시설 만들기’ 같은 지역활성화운동을 하면서 지역사회운동을 하게 되더라고요. 당내 경선이 치열한 거대 여·야당과 달리 민노당과 진보신당은 남녀 구분 없이 철저한 실력으로 경쟁하는 구도라서 여성이 정치 기반을 잡기는 상대적으로 쉽습니다. 지역에서 역할을 활발하게 하다 보면 실력을 인정받고 당의 추천을 받죠. 하지만 아직까지 저희 당도 울산이나 당선 가능한 지역에는 여성의 진입이 어려워요.”

그는 이런 활동을 기반으로 2006년 지방선거에서 공천받아 시의원으로 출마했지만 아쉽게 낙선했다. 김 국장은 “여성들의 정계 진출은 오히려 직장 여성보다 가정 내 육아와 결혼을 통해 실물경제에 부딪치며 이뤄지는 경우가 더 많다”며 “앞으로도 생활정치에 단련된 주부들이 지방선거에서 기초의원으로 나가는 경우가 부쩍 늘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 아줌마들이 칼과 도마 들고 남성 후보자들 따라다니며 밥해 먹이던 시대는 끝났다는 얘기다.

실제로 여성들이 정치권에 진입하기는 낙타가 바늘귀 들어가듯 어렵지만 기초나 광역의회 같은 지방선거에서는 꾸준히 약진해왔다. 1995년 광역의회 의원 여성 당선인 수가 56명(5.8%)에서 2006년은 88명(11.9%)으로 늘었으며 기초의회 의원 수도 1995년 71명(1.56%)에서 2006년 436명(15.1%)으로 15배 가까이 성장했다. 지난해 지방선거에서는 여성 당선자 수가 18.7%까지 늘었다.

7월 26일 국회에서는 ‘여성의 정치적 대표성 제고를 통한 초청토론회’가 열렸다. 여성단체, 각 정당의 여성 국장을 비롯한 여성계 인사 100여 명이 한자리에 모여 여성의 정치참여 확산을 위한 토론회를 가졌다. 이에 앞서 6월엔 야 4당 공동으로 여성 공천 확대와 관련한 회의와 세미나도 열렸다. 요즘 여의도에선 가치와 정체성이 다른 각 정당, 여성단체 소속의 여성들이 수시로 이런 모임을 연다. 그들이 뭉치는 단 하나의 공통된 목표는 ‘국회 진출’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야권 통합’에 버금가는 ‘여(女)권 연대’의 물밑작업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매거진 기사 더 많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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