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 대여점에 가면 어김없이 목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비디오 군단이 있다. '젖소부인 바람났네' '용의 국물' '미소녀 자유학원' 등의 야릇한(?) 제목을 달고 있는 에로 비디오들. 왜 사람들은 이런 비디오를 빌려 보는 걸까. 더 이상 모르는 척 덮어둘 수 만은 없는 에로비디오의 세계를 살펴보았다.
촬영 현장에 관한 궁금증
에로비디오의 현장은 어떠할까? 최근 한 여배우가 촬영 현장에서 실제로 정사를 벌인 적이 있다는 폭탄 선언을 하여 더욱 화제가 되고 있는 에로비디오 촬영 현장.
널리 알려진 대로 공사(남녀의 성기 부분에 양말이나 생리대 등을 대고 테이프로 고정시키는 것)를 하고 찍는 것일까? 실제로 배우들은 흥분을 하기도 하는 것일까? 주위의 스태프들은 흥분되지 않을까? 그 쑥스러움을 어떻게들 모면할까?
우선 공사에 대한 얘기부터 하자. 요즘은 여배우의 경우 공사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이 늘고 있다. 보다 차별화되고, 감각적인 영상을 만들려다보니 배꼽 부위까지 청테이프가 침범한 여배우 가지고는 다양하고 파격적인 앵글이 나오지 않기 때문. 이전에도 샤워신 등의 경우는 공사를 안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요즘은 이런 작품성의 이유로 공사를 안하는 여배우가 늘고 있는 것이다. 남자의 경우는 아직도 중요한 부위를 양말로 감싸는 공사를 일반적으로 많이 한다. 그러나 아주 가끔씩 남자도 노골적인 섹스신 등의 경우 공사를 안하는 경우가 있기도 하다.
빡빡한 촬영 스케줄과 날카로운 현장 분위기, 반복되는 힘든 촬영 등으로 남자배우가 발기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보면 정답. 그러나 최근 한 프로덕션의 촬영에서 러시아 여배우가 하도 리얼한 연기를 해낸 탓에 남자배우가(베테랑 배우였음에도 불구하고) 발기하여 두 번이나 양말 공사를 다시 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화면을 통해서 보면 실제로 하지 않고는 저런 장면이 나올 수 있을까 의문을 품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는 촬영 기술이 발달한 덕일 뿐 실제로 행위를 하는 일은 없다고 보면 맞다. 다만 요즘은 거의 동시녹음이기 때문에 오디오는 리얼하게 해야 한다. 리얼한 오디오에 맞춰 액션만큼은 정말 실감나게들 하는데 오죽하면 '섹스신 연기는 진짜 섹스보다 열 배는 힘들다'는 말이 나오겠는가.
열악한 환경에서 몸을 던져 촬영에 임하는 스태프와 배우의 땀이 맺혀 있는 곳이 바로 에로비디오 촬영 현장이다. '컷' 소리와 함께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진지하게 다음 신을 의논하는 분위기, 성적 자극이나 흥분과는 거리가 멀고 그야말로 '연기'를 하는 배우와 촬영을 하는 스태프들이 각자의 주어진 '일'을 하는 곳인 것이다. 그나마 장소 대여가 잘 안돼 콘도나 한적한 여관방 등을 전전하는 이들의 모습에서 직업마다 애환이란 게 있긴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한 신을 찍어도 멀리서 찍는 풀샷, 남자배우의 바스트샷, 여배우의 바스트샷, 각각의 클로즈업을 찍어내고 그것도 평균 네댓 번은 반복하며 촬영을 하는 이들에게 작품당 주어진 날짜는 대개 3박 4일에서 일주일. 이렇게 강행군을 해대는 이들인 만큼 촬영 후 엉큼한 생각보다는 잠자기 바쁠 것이라는 건 상식. 힘든 스케줄인 만큼 스태프와 배우 간의 호흡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에로 비디오의 어제와 오늘
16mm 에로비디오의 초기는 '뻔 시리즈'로 문을 열었다. 허나희, 곽진경 등의 배우가 활약하던 시대로 이웃집 여자, 사장과 여비서, 고전 해학 시리즈 등의 한정된 소재 속에서 과장된 연기로 일관하던 시기. 별장에서 '어머 이러면 안되는데' 하고 넘어가 얼굴과 등, 어깨로 주로 하던(?) 시기라 정리할 수 있다.
다음으로 '젖소부인 시대'가 온다. 진도희라는 스타를 탄생시킨 이 시기는 가슴이 큰 여자가 작품 전체의 흥행을 좌우하던 시대. 그도 그럴 것이 가슴은 자유롭게 노출해도 심의에 지장을 주지 않았기 때문. 여성을 상품화한다는 비난 속에서도 남성들 사이에 젖소부인 붐을 일으켰고, 업계에선 '…부인…했네' 등의 패러디가 끊이지 않았다.
3기는 몰카 시리즈 시대. 사회적으로 크게 이슈가 되었던 몰래 카메라의 영향으로 이 형식을 빌려온 작품들이 대거 등장했다. 찍기도 쉽고, 자극도 커서 한동안 16mm 에로비디오의 주류를 이루었다. 4기는 다큐멘터리 시리즈. 역시 TV 프로 '그것이 알고 싶다' 'PD 수첩' 등의 영향으로 다큐멘터리 형식이나 르포 형식을 빌린 작품이 대거 등장했다. 이 시기부터 얼굴이 안 알려진 여배우가 대거 기용되기 시작했는데, 그 이유는 진짜 다큐멘터리 같은 효과를 내기 위한 것이었다.
5기는 소녀 시대. '자유학원'이라는 작품이 대박을 터뜨리면서 시작되었다. 작년 1월 독특한 앵글로 언더 스커트 포착 등 에로비디오계의 혁신을 일으킨 이강림 감독의 영향인데 참신한 소녀 느낌의 여배우가 대거 기용되는 계기가 되었다. 작년 한 해 이 업계의 큰 힘이 되었던 게 바로 학원 시리즈였다.
2000년을 열면서 또 다른 시대가 열리고 있는데 그건 바로 '감각멜로물 시대'. 클릭이나 언타이틀 등의 프로덕션이 그 선두에 서 있는데 뮤직비디오나 CF를 보는 듯한 감각적인 영상에 멜로물 스타일의 탄탄한 시나리오로 젊은 대학생 마니아들을 사로잡고 있다.
최근 에로비디오 경향
유호프로덕션의 '주재소 습격사건'의 경우 특수효과비만 2천만원이 들었다. 보통 1천만원 이하의 제작비로 3일 만에 촬영을 마치던 이전의 시스템과는 이제 분명 달라진 것이다. 제대로 만들지 않으면 통하지 않는 시대가 온 것이다.
만드는 사람들도 많이 달라졌다. 이전엔 충무로에서 밀려난 제작진에, 충무로에서 통하지 않는 여배우들이 주로 만들었다면, 요즘은 CF, 뮤직비디오, 방송 프로덕션 출신의 젊은 감각을 지닌 제작진에 여배우도 전문직이나 대학생 출신 등이 많이 유입되었다. 보는 사람도 그 폭이 넓어졌다. 일부 남성층에 국한되었던 시청층이 요즘 에로비디오 수준의 향상을 입소문으로 전해들은 대학생과 30대 초반의 젊은 직장 남성들, 그리고 일부 30대 아줌마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성에 대한 인식 전환도 그 배경이 되고 있다. 감추는 성, 숨어서 보는 성이 아니라 드러내는 성, 당당히 즐기는 성 쪽으로 바뀌는 세태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인터넷의 영향도 있다. 24시간 에로비디오를 틀어주는 전용 사이트만도 야시시, 마구리 등 20여 개에 달한다.
자서전을 내고 TV토크쇼에 나가 당당히 자신의 일을 이야기하는 여배우도 있다. 90년대 초의 열기에 버금가는 에로 영화전성 시대가 향상된 수준으로 오고 있는 것이고 머지않아 에로 배우 출신 인기 배우가 등장할 날이 올 것이다.
하나의 장르로, 하나의 문화로
이번 취재를 통해 느낀 점은 이 업계 사람들에게 뿌리깊이 박혀 있는 언론 기피증. 늘 좋은 말로 취재를 해가서는 자기들 본위로, 흥미거리나 선정 기사 위주로 변질시키는 취재진에 대한 불신이 그 이유였다.
그만큼 이들은 피해의식 속에 살고 있다. 배우의 경우 엄연히 작품을 통한 연기를 하는 것이지, 생활을 무분별하게 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제작진의 경우 노출이 많은 에로 영화라는 한 장르를 만드는 것이지 무슨 나쁜 짓거리를 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최근 출연료를 떼먹고 윤락을 강요했다는 여배우 L양 사건으로 다시 한 번 에로비디오 업계에 따가운 눈총이 몰리고 있다. 그러나 이 역시 구속영장이 무혐의로 기각되었고 캐스팅이 잘 안되어 불만을 품은 L양의 고소 내용이 일방적으로 전해진 것일 뿐으로 언론중재위원회에 중재 신청을 준비 중이다.
한편 업계 일각에서는 최근 급상승한 인기 제작사에 대한 음모설도 대두되고 있다. 다음주 초 제작사에서 기자 회견을 한다고 하니 좀더 지켜볼 일인 것이다.
일천한 역사에서 나름대로 발전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에로비디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프로덕션들은 쉽게 뚝딱 만들고 유치한 패러디 제목이나 달려고 하지 말고 보다 분발해 색깔있는 자신들만의 영화를 만들어야 하며 보는 이들은 쓰레기로 매도하지 말고 관심과 애정으로 보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할 때가 온 것이다. 포르노가 금지된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법적으로 가능한 탈출구라는 인식 아래 그 사회적 정화 기능도 인정하면서 말이다.
음지에서 양지로, 눈요기가 아닌 작품으로, 이제 에로비디오가 하나의 당당한 문화로 자리잡는 이천년이 되었으면 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최고의 작품이라는 '이천년'을 빌려보자. 보고 나서 다시 한 번 느껴보자. 피상적으로 욕하고, 선입견으로 외면한다면 그건 올바른 소비자의 태도가 아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