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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끝없이 돈 쏟아붓는 하드웨어 구조서 벗어나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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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내우외환’의 고민에 빠진 삼성.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18일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으로 출근하고 있는 이건희 회장의 눈매가 비장해 보인다. 이 회장은 이날 기자들을 향해 인사만 하고 바로 집무실로 올라갔다. [김태성 기자]


삼성이 깊은 고민에 빠졌다. 세계 경제위기로 반도체·LCD 같은 주력 사업이 흔들리는 와중에 애플 등 글로벌 기업들의 집중 견제를 받는, ‘튀어나온 못’ 상황까지 내몰렸다. 게다가 그룹 내에는 도려내야 할 부정부패도 적지 않다. 올해 초 100만원 넘던 삼성전자 주가는 70만원대로 곤두박질쳤다. 기업의 미래 가치가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글로벌 선두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마지막 ‘성장통’일까. 삼성이 어떻게 위기를 돌파해야 할지 시장 고수들의 의견을 들어봤다.

한은화 기자

강방천 “디자인이 전세계 화두인데 카메라 화소 집착”

“세상이 바뀌고 있는데 삼성은 엊그제까지 옛날 얘기(하드웨어 집착)만 했던 게 문제였다.”

 강방천(51) 에셋플러스자산운용 회장의 말이다. 그는 현장에서 기업의 미래가치를 확인해 펀드를 운용하기로 유명하다. 중국 상하이에 있는 마트 진열대에서 신라면이 쌓여 있는 걸 보고 투자를 결정하는 식이다. 그런 그가 “이대로라면 삼성의 경쟁력은 의미가 없다”고 단언했다. 기존 산업이 완전히 새로운 구도로 바뀌고 있어 옛 삼성전자의 아성은 의미가 없다는 주장이다.

 “예전에는 도자기 만들 때 뼛가루가 몇g 들어갔는지 주목했다. 하지만 이젠 뼛가루보다 도자기 디자인에 관심을 갖는다. 이런 시대에서 삼성은 뼛가루 몇g, 즉 스마트폰으로 따지면 카메라 화소 이야기만 하고 있었다.”

 강 회장은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기 위해 3단계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했다. 새 시대에 대해 정의를 내리고, 사업 디자인을 하고, 회사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바탕으로 소프트웨어 가치를 끌어내고, 전 세계에 있는 인재를 끌어들여 네트워크를 만드는 식으로 사업 디자인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애플의 앱스토어처럼 애플이 아닌 제3자가 함께 제품을 완성해 나가는 네트워크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업 부문을 재편하기 위해 강 회장은 “큰 조직을 쪼개 새 화두에 맞게 끌고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신수종 사업으로는 ‘전기차’에 주목하라고 조언했다. 전자업종에 강한 한국에는 강한 ‘전기차 DNA’가 있는 만큼 세계가 이 시장을 선점하기 전에 삼성이 발 빠르게 나서라는 주문이다.

이채원 “10년 뒤 중국 따라올 수 없는 창조 제품 있어야”

이채원(47)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부사장은 저평가된 가치주를 찾아 투자하는 가치투자자다. 그는 2006년 10년을 보고 투자하자며 ‘한국밸류 10년투자펀드’를 만들었고, 여기에 삼성전자 주식을 넣지 않았다. 이 부사장은 “삼성전자가 늘 제 가치만큼의 값을 받고 있는 주식이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그 사이 삼성전자의 주가는 확 빠졌다. 그에게 투자여부를 다시 물었다. 이 부사장은 “지금은 판단하기 어렵고 내년쯤 가능하겠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세계 경제가 어려운 올해에도 삼성전자가 14조~15조원의 영업이익을 올리고 주가가 이 상태라면 사야 할 테지만 유지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이 부사장은 “지금 삼성에 매보다 격려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잘할 때 경고를 주지 않고, 어려울 때 질책하는 건 옳지 않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면서 반도체·자동차 처럼 경기에 민감한 국내 기업 특성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세계 경기가 꺾이는데 (삼성) 혼자만 좋을 수 있겠느냐. 이걸 푸는 게 가장 큰 숙제”라고 말했다.

 중국의 등장으로 ‘누구보다 싸고 빠르게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삼성전자의 경쟁력이 없어진 점도 지적했다. 그는 “삼성전자가 매년 십수조원의 영업이익을 내며 경쟁력을 갖추고 있지만 10년이 지나면 중국이 많은 것을 하고 있을 것”이라며 “시장을 이끌어 갈 창조적인 제품군이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 끊임없이 설비투자를 해야 하는 하드웨어 중심의 사업 구조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애플이 큰 설비투자 없이 매출을 높이는 것을 눈여겨봐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김영일 “경기 안 좋을 뿐 하드웨어 경쟁력 막강하다”

김영일(48) 한국투자신탁운용 주식운용본부장은 “경기가 안 좋은 탓이지 삼성전자의 경쟁력이 떨어진 게 아니다”고 진단했다. 또 “구글의 모토로라 인수로 하드웨어 위주의 IT 환경이 소프트웨어와 결합하는 것에 대한 시장의 우려를 삼성전자 전체의 위기라고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LCD·반도체사업의 경기가 좋지 않고 휴대전화 사업부문에 제기되는 구조적인 변화를 두고 삼성의 경쟁력이 떨어졌다고 얘기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김 본부장은 “반도체·LCD 사업부문은 오히려 변화를 선도해 나가고 있고 경쟁력이 강화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D램 제품과 LCD TV용 패널 가격이 사상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지만, 그에 맞서는 삼성전자의 카드가 있다는 것이다. 디스플레이 사업 부문의 경우 능동형유기발광다이오드(AMOLED)를, 반도체 부문은 시스템반도체에 집중 투자하는 것을 근거로 들었다. 김 본부장은 “경기가 좋아지면 이들 사업부문은 오히려 강해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소프트웨어 시대’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직면한 휴대전화 부문에 대해서도 지나치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휴대전화 시장이 소프트웨어 쪽으로만 재편될 가능성은 작다는 게 그의 전망이다. 그는 “삼성전자가 가진 하드웨어의 강점을 다른 업체들이 쉽게 따라올 수 없고, 휴대전화 산업이 소프트웨어 위주로만 재편될 가능성도 작다”며 “설령 그런 쪽으로 가더라도 자체적으로 개발한 운영체제(OS) ‘바다’라는 대안이 있으니 큰 문제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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