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 꿈꾸던 혜민, 그는 왜 머리를 깎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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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혜민 스님이 16일 서울 중구 정동 배재빌딩 근처의 계단에 서 있다. 거울처럼 양쪽 벽에 비친 모습이 무엇이 실체이고, 무엇이 그림자인가를 묻는 듯하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처음에 꿈은 영화감독이었다. 영화를 찍고, 질문을 던지고, 찍고, 또 던졌다. 그렇게 질문의 끈을 따라가다 바닥에 닿았다. 그 바닥에서 마주친 건 종교적 물음이었다. 그래서 머리 깎고 스님이 됐다. 미국의 대학에서 교수가 된 첫 한국인 스님, 바로 혜민(慧敏) 스님이다. 두 달 전 리처드 기어가 한국을 찾았을 때 그는 통역을 도맡았다. 16일 서울 시내에서 혜민 스님을 만났다. 올해는 안식년이다.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으로 연말까지 국내에 머물 예정이다.

 -젊은 시절 왜 영화감독을 꿈꿨나.

 “사람과 삶에 대한 궁극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영화를 택했다. 고등학생 때 8㎜영화도 만들었다. 대학로 극단에 가서 연극 포스터를 붙이는 잔일을 하며 연기도 배웠다.”

 -어떻게 미국으로 갔나.

 “작은 아버지가 로스앤젤레스에 계셨다. 그래서 UC버클리에 갔다. 영화를 공부했다. 내겐 늘 두 가지 화두가 있었다. 하나는 예술이고, 또 하나는 종교였다.”

 -왜 영화를 접고 종교를 택했나.

 “사춘기 때 지나가는 스님을 붙들고 이것저것 묻기도 하고, 길에서 만난 몰몬교(예수그리스도 후기성도교회) 선교사에게 질문을 퍼붓기도 했다. 대학생 때는 요가 스승을 찾아 인도까지 찾아간 적도 있다. 그래도 풀리지 않았다. 그 물음을 풀지 않고선 내 삶을 풀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대학 3학년 때 전공을 종교학으로 정했다.”

 그는 UC버클리를 졸업하고 하버드대에서 비교종교학으로 석사를 했다. 박사 학위는 뉴저지의 프린스턴 대학에서 받았다. 혜민 스님은 치열한 경쟁을 뚫고 2006년 햄프셔 대학의 교수로 임용됐다. 학교에서 자동차로 반경 1시간30분 거리에 40개가 넘는 명상센터와 불교사원 등이 있다.

 -학생들의 반응이 좋았던 과목은.

 “선(禪)불교 개론 강의였다. 미국인은 티베트 불교에 익숙해 학생들이 수강 신청을 많이 할까 싶었다. 햄프셔 대학은 학비가 비싸다. 그래서 과목당 평균 수강인원은 15명, 최대 23명으로 제한한다. 선불교 개론에는 무려 35명이 왔다. 학점교류를 하는 이웃 대학의 학생들까지 몰려왔다. 수강신청을 다 받았다. 동료 교수들은 ‘왜 다 받느냐. 힘들지 않느냐’고 했다. 그런데 학생들은 존재적인 물음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었다.”

 -미국인이 명상이나 불교에 왜 관심을 갖나.

 “첫째, 미국인은 체험을 중시한다. 종교개혁 당시 가톨릭에서 개신교가 떨어져 나온 것도 신과 내가 직접 소통하기 위해서였다. 어찌 보면 같은 맥락이다. 명상이나 불교식 수행을 통해 자신이 직접 체험하기를 바란다. 그냥 믿는 것보다 깨달아서 아는 것을 원한다. 둘째, 미국 내 기존 종단이나 종교권력에 대한 실망감이다. 게다가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해 종교적 위계질서에 속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미국 기독교인에게 불교가 충돌의 대상이진 않나.

 “꼭 그렇진 않다. 미국 불교학자의 70%가 유대인이다. 날 때부터 유대교를 믿는 그들이 불교에 관심을 갖는 이유가 있다. ‘나 외에 다른 신(神)을 믿지 마라’는 계명과 충돌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독교도 마찬가지다. 불교에는 신이 없다고 본다. 저를 가르친 은사 교수님 두 분도 유대인이다. 학회에 가면 불교학자 10명 중 7명이 유대인이다. 미국에선 그들을 ‘주부(Jubu·Jewish Buddhist의 약자)’라고 부른다.”

 -그들은 불교를 어찌 보나.

 “가령 화가 난다. 그럼 화가 나는 걸 어떻게 풀까. 질투가 난다. 이 질투를 어떻게 풀 건가. 그건 마음의 문제다. 불교는 그걸 다룬다. 그래서 미국인은 불교가 매우 실질적인 종교라고 본다. 미국식 실용주의와 개인주의와도 코드가 맞다.”

 -미국 불자도 명상이나 수행을 하나.

 “물론이다. 미국 사람에게 ‘나는 부디스트다’고 하면 반드시 따라오는 질문이 있다. ‘하루에 몇 시간이나 명상을 하세요? (How many hours do you meditate per a day?)’ 그들에겐 ‘불자=수행하는 사람’이란 등식이 있다. 첫 물음에 답을 하면 어김없이 두 번째 질문이 날아온다. ‘어떤 종류의 명상(수행)을 하세요? 그 다음 수행은 어떤 겁니까?’ 그게 미국인이 생각하는 불교다. 어찌 보면 종교의 본질에 더 가깝다. 반면 우리는 ‘어느 절에 다니세요’라고 묻는다. 미국의 한인들도 나이·이름·고향·직업 묻고 나면 ‘어느 교회 다니세요’라고 묻는다.”

 -미국인은 한국 불교를 어찌 보나.

 “한국 사람이 기독교 믿을 때 덴마크 기독교냐, 네덜란드 기독교냐 따지지 않는다. 미국 사람도 마찬가지다. 한국 불교나 대만 불교나 일본 불교나 큰 차이가 없다. 미국에 불교가 들어왔던 1세대 때는 자기 나라의 정체성을 강조했다. 일본 스님은 일본식, 티베트 스님은 티베트식으로 하려고 했다. 그런데 2세대가 되자 취사선택을 한다. 한 동네에 수행센터가 여러 개가 있는데, 여기저기 가보고 좋은 점을 취합하는 거다. 그들 입장에선 꼭 한 전통을 고집할 이유가 없는 거다. 그러다 보니 미국에선 진짜 통(通)불교가 된다.”

 -미국 불교에서 우리가 배울 점이 있나.

 “서양인은 나와 다른 불교가 있어도 좋은 점은 인정한다. 나한테 아무리 좋아도, 이것만이 길이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불교 지도자 중에는 미국인도 있다. 가령 조셉 골드스틴(Joseph Goldstein)이나 잭 콘필드(Jack Kornfield)는 미국 불교의 5대 지도자에 꼽힌다. 영향력도 엄청나다. 20~30년 수행한 그들은 무척 솔직하다. 법문할 때 웃으면서 자기가 부족한 점을 얘기한다. 수행하면서 어느 지점까진 갔고, 어느 지점은 못 갔다고 솔직하게 말을 한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더 존경하더라.”

 혜민 스님은 트위터(@haeminsunim)를 즐겨 한다. 국내외 팔로워가 약 2만5000명에 달한다.

글=백성호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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