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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클립] Special Knowledge <338> 부처의 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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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4면

관조(觀照·1943~2006) 스님은 한국의 대표적인 불교 사진작가입니다. 생전에 스님은 “사진은 불교의 진수를 전하기에 더없이 좋은 수단”이라고 말했습니다. 다음 달 13일까지 강원도 춘천의 국립춘천박물관(관장 이내옥)에서 특별기획전 ‘부처님의 손’이 열리고 있습니다. 불상의 수인(手印)을 찍은 작품들이죠. 사찰의 불상은 이런저런 손 모양을 하고 있지만 그 의미를 아는 사람은 드뭅니다. 과연 수인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요.

백성호 기자

참 궁금하다. 사찰에 가면 불상이 있다. 그런데 불상마다 포즈가 다르다. 특히 손 모양이 그렇다. 어떤 부처는 오른손을 들고, 또 어떤 부처는 왼손을 든다. 손가락을 이리저리 구부려 묘한 스타일을 빚는다. 그런 불상의 손 모양을 ‘수인(手印)’이라고 부른다. 수인은 부처와 보살의 공덕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본래 불전도(佛傳圖·부처에 관한 그림)에 나오는 석가모니 부처의 손 모양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런 수인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깊은 아름다움이 있다. 불상이든, 조각상이든 그들이 세상을 향해 피워 올리는 지혜의 메시지, 선정(禪定)의 메시지, 깨달음의 메시지가 우러나기 때문이다.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에 걸친 한국 불상의 수인을 향해 관조 스님이 카메라를 들이댔다. 관조 스님은 평소 “사소하고 작은 것을 통해 전체를 보고자 한 화엄세계의 정신”을 자주 읊었다. 불교에선 청정 법신불이 천백억 화신불로 화한다고 본다. 왜 천백억 화신불일까. 들녘의 꽃도, 한여름의 소나기도, 부처를 조각한 바위도 이미 하나의 부처이기 때문이다. 그게 화신불이다. 그런 수도 없이 많은 화신불로 가득한 곳이 우리 눈앞에 펼쳐진 세상이다. 그게 바로 화엄세계다.

역설적이지만 바위에 부처를 새긴 조각상은 부처에다 부처를 새긴 셈이다. 그곳을 향해 관조 스님이 카메라 앵글을 맞췄다. 그것도 부처의 손 끝, 파르르 떨리는 깨달음의 메시지, 그 여운을 향해 셔터를 눌렀다. 그래서 기획특별전 ‘부처님의 손’은 각별하다.

관조 스님의 사진 작품에 조계종 전 총무원장 지관 스님이 특별 법어를 내렸다. 그외에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쟁쟁한 시인들이 한 줄씩 시를 썼다. 강은교·김광규·김명인·김용택·도종환·안도현·오세영·유안진·정현종 등 19명의 문인들이 ‘짧은 탄성’을 시적인 감성으로 버무려 글로 붙였다.

지관 스님은 군위 삼존석굴 석조비로자나여래좌상(사진4)의 수인을 찍은 작품에 ‘중생사랑으로 나투신/불보살의 자재한 손짓’이란 법어를 내렸다. 수인에 담긴 부처의 자비가 읽힌다. 경주 남산 약수골의 마애여래입상(사진2)의 수인을 찍은 사진에는 안도현 시인이 ‘내 손 안에 연꽃 피면/그 향기로 너에게 건너가리’라고 썼다. 바위에 새긴 부처의 조각상과 시구(詩句)를 함께 곱씹을수록 감상의 농도가 짙어진다. 섬진강 시인 김용택은 경주 굴불사지 석조사면불 약사여래좌상(사진6)의 수인을 찍은 사진에 이렇게 썼다. ‘내 손이 가만히 있으니/세상이 다 고요하구나.’ 이 구절을 읽은 뒤 사진을 다시 보면 울림은 갑절이 된다.

관조 스님은 2006년 늦가을에 세수 64세, 법랍 47세로 입적했다. 스님은 ‘영상(映像) 시대의 도래’를 미리 예견했다. 이내옥 국립춘천박물관장은 “스님이 사진으로 표현해낸 모든 사물은 보는 이로 하여금 거기에 불성(佛性)이 담겨 있음을 느끼게 하고, 묘오(妙悟·오묘한 깨달음)를 감지하게 했다”고 평한다.

생전에 관조 스님은 사진 촬영을 ‘금강경’의 한 구절에 빗댔다.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應無所住 而生其心)’고 한 것처럼 깨달음의 순간을 낚아채 사진에 담는다.” 그래서 사진을 깊이 들여다보며 관조 스님의 깨달음을 포착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관조 스님은 열반 직전에 소회를 묻는 제자들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삼라만상이 천진불이니, 한 줄기 빛으로 담아보려고 했다. 내게 어디로 가느냐고 묻지 마라. 동서남북에 언제 바람이라도 일었더냐!” 그래서 스님의 사진은 ‘바람’이 된다. 동서남북 어디에도 일었던 적이 없는 바람이다. 그 바람 속에 부처의 손을 담았다. 그래서 작품에 담긴 부처의 손을 대할 때마다 ‘부는 적도 없이 부는 바람’이란 화두를 품게 된다. ‘머무는 바 없이 내는 마음’처럼 말이다.

관조 스님의 맏상좌인 승원 스님(가평 백련사 주지·전 조계종 총무원 기획실장)은 “1970년대만 해도 ‘스님이 무슨 사진을 찍느냐’며 욕도 많이 드셨다. 지금 와서 보면 부처님의 설법을 사진을 통해 전하고 있다. 시대를 앞섰던 분이시다”고 말했다.



1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경주 남산 열암곡 석조여래좌상

절의 법당에서 자주 보게 되는 수인이다. 이유가 있다. 항마촉지인은 부처가 깨달음에 이르는 순간을 상징하는 수인이기 때문이다. 결가부좌한 불상은 왼손바닥을 위로 한 채 배꼽 앞에 놓는 선정인(禪定印)을 취하고, 오른손은 무릎 밑으로 늘어뜨리면서 다섯 손가락을 펴 땅을 가리킨다. 2500년 전 인도의 네란자라 강가에서 석가모니 부처는 선정에 들었다. 그때 마왕의 세 딸이 미녀로 변해 수행을 방해했다고 한다. 이에 부처는 “천상천하에 이 보좌에 앉을 수 있는 사람은 나 하나뿐이다. 지신(地神)은 나와서 이를 증명하라”고 말하며, 오른손을 풀어 무릎 위에 놓고 손가락은 땅을 가리켰다. 그러자 지신이 땅에서 나와 이를 증명했다고 한다. 허만하 시인은 이 작품에 ‘손은 정신의 표정이다/정신의 깊이에서 피어난 우주의 꽃잎이다’고 시를 썼다.

2 설법인(設法印)

경주 약수골 마애여래입상

법의(法衣) 아래 신체는 굴곡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마치 바위 위에 옷을 걸쳐놓은 듯하다. 두 손 역시 평면적으로 처리됐다. 왼손은 가슴 위로 올리고, 오른손은 내려 허리 부분에 두었다. 왼손의 모양을 자세히 보자. 두 손 모두 엄지와 중지, 그리고 약지를 서로 맞댄 설법인(說法印)을 취하고 있다. 설법인은 부처가 깨달음을 얻고서 다섯 비구에게 처음 법을 설할 때 취한 손 모양이다. 부처의 설법은 ‘법의 바퀴를 굴린다’고 하여 법륜(法輪)이라고 부른다. 왼손바닥은 안으로, 오른 손바닥은 밖으로 향하면서 각각 엄지와 검지를 맞붙여 법륜 모양을 취한다. 그래서 설법인을 ‘전법륜인(轉法輪印)’이라고도 한다.

3 시무외인(施無畏印)

서산 용현리 마애삼존불 본존상

시무외인은 부처가 중생의 모든 두려움을 없애고 위안을 주는 수인이다. 가슴까지 올린 오른 손바닥이 밖을 향하는 것은 시무외인이다. 또 왼손은 밖을 향한 채 아래로 내리면서 네 번째, 다섯 번째 손가락을 구부린다. 이것은 ‘여원인(與願印)’이다. 여원인(與願印)에는 부처가 중생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들어준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시무외인과 여원인이 짝을 이루는 모습은 삼국시대 불상에서 흔히 나타난다.

2500년 전 인도에서 아사세왕이 석가모니 부처를 죽이려고 계략을 꾸몄다. 코끼리에게 술을 먹인 뒤 풀어놓았다. 술 취한 코끼리가 달려들 때 부처는 손을 들어 시무외인을 취했다고 한다. 그러자 코끼리가 엎드려 머리를 조아렸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4 지권인(智拳印)

군위 삼존석굴 석조비로자나여래좌상

작품 속의 수인이 던지는 메시지는 무척 깊다. 이(理)와 지(智), 중생과 부처, 미혹함과 깨달음이 하나라는 뜻이 담겨 있다. 그래서 두 손을 가슴 앞에 대고, 왼손 검지를 오른손으로 잡고 있다. 이때 오른손은 법계(法界)를, 왼손은 중생계(衆生界)를 상징한다. 둘로 쪼개져 있던 선과 악의 이분법적 시선이 이 수인을 통해 하나가 된다. 주로 법신불(法身佛)인 비로자나불이 이런 모습의 수인을 취한다. 색(色)과 공(空), 있음과 없음, 나와 세계, 선과 악, 번뇌와 지혜가 이 수인을 통해 하나가 된다.

5 아미타구품인(阿彌陀九品印)

양산 미타암 석조아미타여래입상

‘아미타’란 이름은 산스크리트어 ‘아미타유스’(무한한 수명을 가진 것) 혹은 ‘아미타브하’(무한한 광명을 가진 것)에서 유래했다. 그걸 중국에서 한자로 ‘아미타(阿彌陀)’로 음역했다. 대승불교에서 아미타여래는 서방정토인 극락세계에 머물면서 법을 설하는 부처다. 주로 사찰의 극락전, 극락보전, 무량수전, 아미타전에 봉안된다. 아미타여래는 9가지의 수인을 취한다. 상품, 중품, 하품이 있고 각각이 다시 상생, 중생, 하생으로 나뉜다. 작품 속의 수인은 엄지와 검지를 구부려 동그랗게 수인을 만들었다.

6 약기인(藥器印)

경주 굴불사지 석조사면불 약사여래 좌상

약사여래는 중생의 병마를 고쳐주는 부처다. 이 약사여래상은 결가부좌(結跏趺坐)를 하고서 왼손에는 약합을 들고 있다. 오른손은 약간 파손되었으나 시무외인(施無畏印)을 취하고 있던 것으로 추측된다. 왼손의 약합은 약을 담는 그릇이다. 언뜻 보면 여의주처럼 생겼다. 불교 조각에서 보살이 둥근 구슬을 들고 있으면 여의주 같은 보주(寶珠·보물 구슬)로 보고, 부처가 구슬을 들고 있으면 약사여래로 본다.

※전시 문의 033-260-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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