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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깊이 읽기] 발자크의 해학 30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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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발자크의 해학 30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김창석 옮김, 범우, 684쪽, 2만원

언젠가 단원(檀園)이 그렸다는 춘화집을 본 적이 있다. 버젓이 펼쳐놓고 보기 어려울 만큼 화면은 망측했다. 허나 단원의 작품이라는 사실에 위안(혹은 용기)을 얻어 책장을 넘길 수 있었다.

발자크(1799~1850)라는 프랑스 작가가 있다. 프랑스혁명 와중의 혼란기, 다시 말해 근대 자본주의 형성기의 사회상과 초기 부르조아의 생활상을 말할 때 꼭 인용되는 작가다. 세계문학전집마다 그 작품이 빠지지 않기도 한다. 부르조아를 사실주의에 입각해 묘사한 대표 작가라서다.

작가 소개가 거창한 이유는 이 소설집이 단원의 춘화집 같은 인상을 줬기 때문이다. 서른편의 개별 이야기는 사실 몇 개의 단어만으로도 개요가 파악된다. 수녀원.금욕.숫처녀.하룻밤, 이런 단어들이 상황에 따라 새로이 조합되고 배열되면서 각기 다른 사건을 만들어낸다. 남편을 전쟁터에 보낸 아내와 친구를 전쟁터에 보내고 친구 아내를 지켜주려는 남편 친구 간의 사건(문경지교), 수녀원에 배달된 남성용 하의 속옷이 불러온 일화(푸아시 수녀들의 재미나는 이야기) 등 다 이런 식이다.

언뜻 음담패설이나 모아놓은 것 같지만, 작가의 내공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사건의 말미마다 꼭 반전이 숨어 있다. 대가의 태작(怠作)은 더욱 아니다. 작가는 이 책에 큰 애정을 표현했다. 작가는 10여 년의 사랑 끝에 죽기 직전 결혼에 성공한 폴란드의 귀족 부인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만약 나의 작품 중에 후세에 유일하게 남을 것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이 책일 것이오.'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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