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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피 ‘폭락 뒤 반등의 추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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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나락의 깊이를 짐작할 수 없을 때 공포감은 더욱 커진다. 시장이 공황 조짐까지 보이며 요동치는 것도 바닥을 가늠할 수 없는 탓이다. 하지만 공포가 지배한 시장은 언제나 있었다. 메가톤급 패닉을 몰고 왔던 외환위기와 ‘블랙 먼데이’, 리먼브러더스 사태는 주식 시장을 암흑으로 몰아넣었다. 하지만 공포의 광풍을 견딘 시장은 반등으로 화답했다. ‘포스트 패닉’의 시간을 되짚어 봤다.

 국내 주식 시장을 집어삼킨 첫 번째 공포는 1997년 외환위기다. 그해 6월 792를 찍은 코스피 지수는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기 직전인 12월 24일까지 6개월 동안 53.8%나 떨어졌다. 이종우 솔로몬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달러 부족 사태에 빠질 것이란 전망에 그해 11월 초 500포인트였던 코스피가 하향곡선을 그리며 열흘 만에 30% 가까이 하락했다”고 말했다.

 정점을 찍은 것은 크리스마스이브인 12월 24일이었다. 전날 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와 피치가 한국의 국가 신용등급을 ‘투자 부적격’으로 강등하면서 하루 동안 코스피가 7.5% 미끄러졌다. 거기까지였다. 그날 밤 IMF가 100억 달러의 지원을 결정했고, 주식 시장의 악몽도 끝났다. 크리스마스이브에 바닥을 친 코스피 지수는 한 달 만에 54.4%나 오르며 6개월 동안 까먹었던 지수를 회복했다.

 방심하고 있을 때 위기와 공포는 다시 찾아왔다. 미국의 정보기술(IT) 거품이 붕괴하며 뉴욕 증시가 급락한 ‘블랙 먼데이’였다. 국내 증시는 직격탄을 맞았다. 시장이 패닉에 휩싸이면서 2000년 4월 17일 코스피는 93.17포인트(11.63%) 하락했다. 국내 증시 사상 처음으로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됐다. 장중 한때 100포인트 급락하는 기록도 세웠다. 총선에서 집권당이 패배하고 외국인이 주식을 내던지며 시장의 공포는 극에 달했다. 이후 지수는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하면서 주가는 한 달여 만에 30% 가까이 반등했다.

 최근의 급락 장세와 오버랩되는 공포는 세계 금융위기의 방아쇠를 당긴 2008년의 리먼브러더스 파산이다. 2008년 9월 15일 리먼브러더스가 파산을 신청한 사실이 알려지자 세계 금융시장엔 공포가 엄습했다. 이튿날인 9월 16일 코스피는 6.10% 미끄러져 내렸다. 리먼이 부도 처리되고 미국 은행이 지급 불능 상태에 빠진 10월 중순까지 시장은 끝없이 추락했다. 하락의 막바지였던 10월 24일의 하락폭은 10.57%나 됐다. 지수 하락세에 로스컷에 걸린 펀드가 주식을 내다 팔면서 시장이 무너졌던 것이다. 박희찬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리먼 때는 코스피가 1500에서 900까지 600포인트 넘게 빠졌다”며 “그전에 고점이 2000포인트를 넘었지만 한 달 동안 40% 빠졌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고통은 오래가지 않았다. 글로벌 공조와 미국의 1차 양적완화 정책 등 각국 정부의 재정부양책이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지면서 반등했다. 급락 이후 열흘 만에 코스피는 21.8% 올랐다. 김형렬 교보증권 투자전략팀장은 “리먼 때는 유동성 수축으로 금융시장에 문제가 발생했지만 정책이 나오면서 단기간 내에 회복했다”고 밝혔다. 지수의 하락을 가장 크게 야기한 공포는 2001년 9·11테러였다. 다음 날인 12일 코스피가 12.02% 급락했지만 단발로 끝났다.

 오현석 삼성증권 연구원은 “1995년 이후 최근처럼 5거래일 연속 12% 이상 하락한 사례는 아홉 번 정도 된다”며 “추세 전환 여부를 떠나 공포 심리가 진정되면 주가가 급등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말했다.

하현옥·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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