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더 북한 문창극 칼럼

살아있는 수정주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문창극
대기자

우리 사회가 어수선해졌다. 특히 여름으로 접어들면서 그렇다. 부산 한진중공업의 크레인 농성장에 희망버스가 몇 차례 다녀가면서 한 사람의 시위가 전국을 시끄럽게 만들었다. 제주도 강정마을 해군기지 시위 역시 비슷하다. 몇십 명이 항만공사 진행을 막아 몇 개월째 공사가 중단되고 있고 이것이 전국적인 이슈로 등장하고 있다. 이번 홍수에 물난리가 안 났기에 망정이지 혹시 4대 강 유역에서 둑이라도 터졌다면 거기도 대단했을 것이다.

 이런 사건들은 공통점이 있다. 처음에는 소수가 운동을 시작하고 점차 외곽 단체들이 가세하다가 마침내는 관련 정당까지 등장한다. 희망버스가 그렇고 강정마을이 그렇다. 부산 크레인 시위는 야당이 직접 가세했고, 강정마을에 대해서도 야 5당이 진상조사단을 구성하고 국회 특위를 구성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모두가 불법적인 시위인데도 말이다. 해군기지 공사는 주민들이 찬성한 사안이고 국회에서 여야가 예산까지 승인해주지 않았는가? 한진도 노사 간에 협약으로 농성을 풀기로 합의했는데 엉뚱한 사람이 시위를 주도하고 있다. 시기적으로도 그렇다. 크레인 농성은 올해 초부터, 강정마을은 지난봄부터 시위를 시작했다. 소수가 시위를 몇 개월 지속하고 있다가 어느 시점에 이르면 불꽃이 번지고 커지는 것이다. 별개의 현장인데도 거의 같은 시기에 불이 붙는다.

 어떤 사건을 두고 자연발생적인지, 의도된 것인지를 판별해내기란 참으로 어렵다. 자연발생적인 것을 이용해 의도된 목표를 추구하는 경우도 있고, 처음부터 의도된 목표를 가진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런 사안이 정치문제로 비화되면 그 구분이 의미가 없어진다. 이미 정치 운동화되었기 때문이다. 그 운동에 찬성하는 측은 자연발생을 강조하여 순수성을 주장할 것이고, 반대쪽은 의도성을 비난할 것이다. 순수한 운동을 색깔을 씌워 매도할 수도 있고, 미리 계획된 일인 줄도 모르고 순수한 마음에서 동조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 6·25의 발발 원인과 관련된 기사가 났다. 홍콩의 추이 박사는 “6·25는 북한과 중국, 소련의 합작품”이라는 논문을 발표해 11년 옥살이를 하다 최근 풀려났다. 중국군 기밀을 인용했다는 혐의였다. 그는 이 진실을 위해 계속 투쟁하겠다고 했다. 한국에서 강의를 위해 최근 내한한 캐스린 웨더스비(미 존스홉킨스 대학) 교수는 냉전사 연구 학자다. 그녀는 소련의 비밀문서를 연구해 6·25는 분명한 남침이었다는 사실을 밝혀내 수정주의 역사관을 깨뜨린 장본인이다. 수정주의란 브루스 커밍스의 “당시 남쪽에는 공산주의를 바라는 사람들의 수가 이미 충분했기 때문에 자연발생적인 내전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녀는 “남침을 명료한 사실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한국 사람들이 아직 있다니 안타깝다”고 말했다.

 6·25가 터진 지 60년이 지난 지금에도 수정주의는 살아있다. 수정주의의 본질은 ‘자연발생적인 내전’이다. 최근에 ‘민족21 사건’ ‘왕재산 간첩단’ 사건이 터졌다. 현직 구청장 2명이 연루된 정황이 나오고 있는데, 웬 공안탄압이냐고 주장하는 정당이 있는가 하면, 법정에서 ‘김정일 만세’를 외치는데 방치한 판사도 있다. 내 걱정은 최근의 일련의 소요가 혹시 자연발생적인 외형을 띤 의도적인 사건들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지금의 소요가 바로 자연발생적 내전의 단초를 노리는 것은 아닐까? 그럼에도 순수한 사람들이 그들의 입술만 보고 동조한다든가, 체제를 함께 지켜내야 할 정당들이 정략적 유리함만을 보고 이를 이용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우리는 민주체제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법을 지키는 시위는 당연히 보장해야 한다. 그러나 불법에 대해서는 단호해야 한다. 그들은 어떻게 하든 자유의 틈을 이용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공안 당국의 책임이 크다. 옥석을 구별해야 하기 때문이다. 곰팡이는 온도와 습도 등 그 조건이 맞았을 때 왕성하게 번진다. 어느 사회든 곰팡이는 있게 마련이지만 특히 우리는 북쪽에서 그 균이 날아오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까지는 비교적 평온하다가 왜 지금 이 시기에 어수선할까? 내년 대선을 겨냥한 것일까? 물론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걱정인 것은 우리 사회의 토양이 곰팡이가 번식하기 좋은 조건으로 변해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점이다. 그게 바로 자연발생론을 부추길 수 있는 것이다. 6·25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리 사회에 햇볕이 쨍 하게 들면 곰팡이는 번식하지 못할 것이다. 이 나라를 지키고자 한다면 가장 큰 혜택을 받고 있는 계층이 먼저 눈을 떠야 한다. 그늘진 곳을 배려하는 마음씨, 나의 이익에 앞서 전체를 생각하는 자세, 이를 위해 자기를 희생할 수 있는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 보수정당 정치인들, 재벌들, 이 사회의 지도층들, 귀 있는 사람은 들으시오!!

문창극 대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