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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별 고전읽기] 선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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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마르셀 모스의 '증여론'(이상률 옮김, 한길사)은 '사회'의 존재를 환기시킬 때 사회학자들이 자주 인용하는 책이다. 모스에 따르면, 시장을 초역사적인 것으로 보는 주류 경제학자들이 상정하는 '생존을 위해 교환하는 자유로운 개인'은 원시경제의 주체가 아니다. 원시경제에서는 개인이 두드러지는 일이 없다. 교환도, 생존의 고민도 모두 공동체의 몫이다. 그래서 원시사회에서는 공동체 전체가 굶는 일은 있어도 어떤 개인만 굶는 일은 없다. 게다가 교환의 대부분은 경제적 필요보다는 사회적 유대를 위한 것이다. 경제적 관점에서는 무익한 교환들, 가령 똑같은 물건을 바꾸는 일 같은 게 일어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모스는 교환을 통해 원시인들이 지키고자 했던 것의 정체에 대해 우리가 고민해야 한다고 말한다. 증여를 모르고 독차지할 생각만 할 때, 공동체 유대는 생각치 않고 사적 이익만 탐할 때 어떤 중요한 것이 파괴된다. 모두의 존재 기반인 '사회'가 그것이다. 시장경제가 최고의 성취를 구가할 때 삶의 위기가 찾아오는 것은 바로 이 사실을 우리가 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모스의 훌륭한 책에 나는 딱 하나의 불만을 갖고 있다. 바로 선물(증여)을 교환의 하위범주로 이해했다는 것이다. 모스는 교환을 경제적 시각에서만 보는 것에 반대했지, 교환 자체에 대해서는 의문을 품지 않았다. 하지만 증여가 교환의 일종일까. 사실 모스의 사례들에서 우리가 보는 건 증여하는 장면뿐이다. 그런데 그는 두 번의 증여를 하나로 묶어서 '증여와 답례'라고, 즉 한 번의 '교환'이라고 말한다.

이를 보며 생긴 의문들은 이런 것이다. 왜 원시인들은 그 자리에서 교환하지 않고, 한참 후에 답례하는 형식을 취하는가. 왜 그들은 뭔가를 받을 때 갚겠다는 암시를 하지 않았는가. 물건을 줄 때는 왜 그것을 버리는 것처럼 하는가. 나는 여기서 모스와 생각을 달리한다. 원시인들은 교환을 피하고 싶어 한다고. 그래서 명백한 교환조차 교환이 아닌 것처럼 위장한다고.

실제로 원시인들은 자기 행동이 어떤 '대가'를 기대하는 걸로 비추어질까 경계한다. 대가를 주거나 받는 것은 이미 그 자체로 상업적이기 때문이다. 대가를 계산하는 것은 공동체 질서를 해친다. 그래서 많은 공동체들이 선물을 주고받는 데는 적극적이었지만 상거래는 엄격히 규제했다.

선물이란 주고받을 때조차 그냥 주는 것이지 교환하는 게 아니다. 지난 설에 나는 부모님께 10만원하는 한약재를 선물로 드렸는데, 공교롭게도 그날 어머니는 내 코트에 10만원을 넣어두셨다. 돈벌이 없는 자식을 걱정해서 찔러 넣은 돈이 약값에 대한 지불이 된 셈이다. 그러나 이는 경제적 거래도, 증여와 답례도 아니다. 두 개의 선물이 있을 뿐이다. 교환이 아닌, 증여 자체로 가치를 갖는 각각의 선물. 요즘 신문에 오르내리는 정치인과 공무원들은 자신이 받은 게 기부라고, 즉 선물이라고 우기는 모양이지만, 하나의 거래를 두 개의 선물로 착각한 건 아닌지.

고병권 ('연구공간 수유+너머'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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