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희망의 인문학 - 정재승이 만난 사람들] (6) 미술사학자 유홍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2면

서울 종로 YMCA 인근 카페 민들레영토에서 만난 유홍준 명지대 교수(왼쪽)와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 유 교수에게 우리 땅과 문화재는 세상을 바라보는 창문과 같다. 베스트셀러 작가로도 유명한 그는 “한국 문화가 성숙해지려면 인간에 대한 관심을 가장 잘 반영하고 역사를 증언하는 전기(傳記)가 더 활발하게 쓰여야 한다”고 말했다. 사람은 결국 시대의 거울이기 때문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미술사학자 유홍준(62·명지대)교수는 탁월한 이야기꾼이다. 주변의 흔한 것, 무미건조한 것이 그의 입과 손을 거치면 소중한 ‘국보’가 되고 반짝이는 ‘문화유산’이 된다. 그는 무엇보다 연구실을 뛰쳐나온 학자다. 삶과 역사의 현장인 전 국토를 발품을 팔며 누볐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그의 모토는 우리 땅과 문화유산을 살아있는 지식창고로 끌어올렸다. 한국미술사의 대중화에 그만큼 큰 기여를 한 사람도 드물 것이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6권에 이어 신간 『국보순례』를 낸 유 교수를 서울 종로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유 교수는 미술사 연구와 집필을 ‘인문학의 실천’이라 잘라 말했다.

 ▶정재승=어떻게 미술사를 공부하게 됐는지요.

 ▶유홍준= 고등학교 때 국어 선생님 권유로 미학과에 들어갔으나 기대와 달라 바로 흥미를 잃었어요. 어느 날 김윤수 선생님이 “자네는 왜 미학을 포기했는가”라고 물었어요. “취미에 맞지 않습니다” 했더니 “대학에서 선생님이 가르친다고 공부하고, 안 가르친다고 안 하는 건 잘못된 거지”하고 하셨죠. 그리고 조르지오 바사리(1511~74)의 『이탈리아 미술가 열전』 다이제스트 판을 추천해주셨어요. 그걸 보고 미술사를 맛보게 됐죠. 군대에서 한국미술을 공부하자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정=처음 시작은 기자였죠.

 ▶유=중앙일보에서 냈던 ‘계간미술’ 기자로 들어갔습니다. 잡지사에 있을 때 ‘젊은이를 위한 한국 미술사’ 공개강좌를 시작했어요. 『서양 미술사』로 유명한 H W 젠슨의 영향을 많이 받앗는데, 그의 『젊은이를 위한 미술 이야기』를 정말 재미있게 읽었죠.

 ▶정=‘젊은이를 위한...’ 제목에 그런 배경이 있었군요.

 ▶유=‘미술이야기’도 주목할 만한 표현입니다. ‘개론을 읽을 땐 히스토리를 읽지 말고 스토리를 읽으라’는 말이 있는데, 정말 공감합니다. 스토리는 대중적 접근을 말하는 거니까요. 예전엔 대중성이 높다는 것은 전문성이 없다는 뜻으로 통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잖아요. 대중성이란 전문적 얘기를 알아듣기 쉬운 언어로 풀어낸다는 겁니다. 이게 더 어려워요. 이게 안되니 대중이 인문학과 멀어진 거죠.

 ▶정= 기자 경험이 도움이 됐나요.

 ▶유=어렵게 쓰는 글은 문제가 있다는 걸 절실하게 느꼈어요. 정말 많은 필자들의 글을 고쳤던 것 같아요. 글은 쉬워야 한다, 소통이 돼야 한다는 걸 깨달았죠.

 ▶정=글 쓰는 법을 그때 익히셨군요.

 ▶유=당시 중앙일보 ‘분수대’를 쓰시던 홍사중 계간미술 주간이 칼럼을 모아 국방부 정훈 장교용으로 책을 내자는 제안을 받았어요. 제가 원고 정리를 맡았죠. 200자 원고지로 그 분의 글을 옮겨 적었는데, 그 문장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게 됐어요. 원고지 6매에 기승전결을 넣는 법, 이미지를 축적·묘사하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정=책을 활발하게 냈습니다. 가장 의미 있는 것을 꼽는다면요.

 ▶유=『화인열전』과 『완당평전』입니다. 두 책 모두 한국 화가의 전기(傳記)에요. 죽기 전까지 한국화가 20명의 전기를 쓸 겁니다. 예술비평가 어윈 파놉스키(1892~1968)가 “인문학자는 필연적으로 역사학자 일 수밖에 없다”고 했는데, 인문학 실천으로서의 미술사를 이야기한 거죠. 앞으로 15명은 더 쓰겠죠. 저와 동시대 작가들의 전기도 쓰고 싶어요.

 ▶정=누가 후보일까요.

 ▶유=안 들어간 사람들이 서운해할 텐데요. (웃음) 정 꼽아야 한다면 신학철·임옥상·오윤은 들어가야겠죠.

 ▶정=파놉스키 말, 그대로네요.

 ▶유=인문학 위기라고 하는데, 왜 멀어졌을까요. ‘전기(傳記)의 전통’이 끊어진 것에 대해 반성해야 합니다. 인간에 대한 관심을 가장 잘 반영하는 건 전기에요. 온라인 서점에 있는 ‘인물’이라는 분류법도 ‘전기’로 바꾸어야죠. 서양에서는 전기의 전통이 막강하죠. 자기 증언을 위해서 스스로 자서전도 많이 쓰죠. 심지어 르윈스키도 썼잖아요. (웃음)

 ▶정= 그런 사람 때문에 국내에서는 전기가 아닌 인물로 분류하는가 봅니다. (웃음)

 ▶유=우리에겐 전기가 너무 없어요. 세종대왕, 원효대사, 율곡(栗谷), 다산(茶山) 아무도 없어요. 추사(秋史)에 대한 전기조차 없잖아요. 차·실학·고증학·경학 등 모든 분야의 전문가인데, 부분부분 관심만 있을 뿐, 총체적 전기는 없어요. 다들 논문을 쓰기 위한 분석만 하다가 그칩니다. 『역사란 무엇인가』의 E H 카의 첫 번째 저작이 『도스토옙스키 평전』이었어요. 인문학자는 전기를 쓰며 시대의 모델을 제공해왔죠.

 ▶정=아무래도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빼놓을 수 없죠. 얻은 것과 잃은 것은 무엇일까요.

 ▶유=미술사로 봤던 유물을 문화유산 관점으로 시각을 바꾼 게 가장 큰 소득이죠. 폭이 넓어진 거죠. 『한국 미술사 강의』가 피겨 스케이팅의 쇼트, 프리 스케이팅처럼 지정종목이었다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아이스쇼입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먼저 나와 아이스쇼만 하는 사람처럼 보인 측면도 있어요.

 ▶정=전통에 대한 고민이 많았겠죠.

 ▶유=전통은 바뀝니다. 예컨대 여성 한복은 계속 변화됐어요. 그런데, 남자 한복은 결혼식 에서나 입지만요. (웃음) 문화재청장 할 때 한복협회 회장이 찾아와 “총장님이라도 한복을 입어주세요”해서 맞춘 적이 있어요. 그때 조건을 세웠죠. 첫째, 데님은 안 맨다, 허리띠를 해줘야 한다. 화장실에 갈 수 있게 지퍼를 해달라. 두루마기에서 옷고름 대신 단추를 달아줘라. 그랬더니 지퍼는 못해준대서 그건 포기했죠. 그걸 입고 국회에도 나갔어요. 생활하기 편리했다면 계속 입었을 거에요.

 ▶정=전통에 대해 열린 입장이시군요

 ▶유=현대인의 삶에 불편이 없으면서도 전통 분위기가 나면 좋겠다는 거죠. 조선적인 것이 최고의 미감이라고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직 우리에 대해 자신감이 없어서 그래요.

 ▶정= 광화문 현판(懸板) 논란이 있었지요.

 ▶유=문화재청장 시절 현판을 교체하려 했을 때, 과거 정권에 대한 부정으로 몰아가 힘들었습니다. 이 시대의 정신이 들어있는 글씨를 받으려고 했어요. 최고의 서예가거나 온 국민이 동의할 수 있는 인품을 가진 분의 글씨여야겠지요. 여초(如初) 김응현의 글씨라면 반대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수전증으로 끝내 쓰지 못하고 돌아가셨죠. 현재 현판은 감동 없는 문패일 뿐입니다.

 ▶정=앞으로도 할 일이 많겠죠.

 ▶유=『화인열전』 못 쓴 것, 『한국 미술사 강의』 남은 시리즈 등을 마무리해야죠.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도 9권까지 써야 하고요. 일본·중국에 있는 우리문화유산을도 다룰 겁니다. 은퇴 후에는 부여에서 살 준비를 하고 있어요. 백당나무·미선나무·산딸나무 등 우리 정원에 잘 맞는 나무를 많이 심고 싶어요.

정리=이은주 기자, 김민영 프리랜서 작가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유홍준=1949년 서울생. 서울대 미학과(학사), 홍익대 미술사학과(석사), 성균관대 동양철학과(박사). 미술평론가로 활동하며 민족미술협의회 공동대표와 제1회 광주비엔날레 커미셔너 등을 지냈다. 85년부터 2000년까지 서울·대구에서 ‘젊은이를 위한 한국미술사’ 공개강좌를 열었다. 영남대 교수 및 박물관장, 명지대 문화예술대학원장, 문화재청장을 역임하고, 현재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유홍준의 책책책]

◆나의 문화유산답사기1~6(창비)=우리 국토와 문화유산 이야기를 현장 중심으로 풀었다. 1993년 5월 1권이 출간됐으며 2001년 북한 문화유산을 해설한5권이 나온 지 10년 만에 지난 5월 6권이 나왔다. 답사 신드롬을 불러일으키며 인문서 최초의 밀리언셀러를 기록.

◆한국미술사 강의 1(눌와, 2010)= 고대부터 삼국시대까지의 한국 미술사를 조망. 1권은 ‘선사, 삼국, 발해’편이며 앞으로 3권까지 펴낼 예정이다.

◆국보순례(눌와, 2011)=회화·공예·조각·자기 등 한국 문화재 중 뛰어나다고 여기는 것을 저자 나름의 기준으로 ‘국보’로 선정해 소개했다.

◆화인 열전1, 2(역사비평, 2001)=한국미술사의 대표적인 화가 여덟 명의 예술적 성취를 인생역정 속에서 살핀 평전. 김명국, 윤두서, 조영석, 정선, 심사정, 이인상, 최북, 김홍도 등을 다뤘다.

◆완당 평전(학고재, 전3권, 2002)= 서예가, 문장가, 금석학·고증학의 석학, 문인화가 등 다양한 역량을 보여준 추사(秋史) 김정희에 대한 평전.

[알림]

◆유홍준 교수 강연 초대=중앙일보와 온라인서점 예스24가 공동 기획한 ‘희망의 인문학’ 캠페인이 오프 라인에서도 진행됩니다. 국내 주요 인문학자들의 강연에 독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그 첫 행사로 유홍준 교수의 ‘국보순례, 고려시대 미술을 중심으로’ 강연이 다음 달 8일 오후 7~9시 서울 종로구 견지동 불교역사문화기념관 공연장에서 열립니다. ‘희망의 인문학’ 캠페인 홈페이지(http://inmun.yes24.com)에서 댓글을 신청하면 참여할 수 있습니다. 다음 달 1일까지 총 250명의 독자들을 모십니다. 많은 관심 바랍니다.

 또한 유홍준·정재승 교수의 대담 동영상과 내용 전문을 ‘희망의 인문학’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습니다. QR코드로도 볼 수 있습니다.

사진

이름

소속기관

생년

[現] 명지대학교 인문대학 미술사학과 교수
[前] 문화재청 청장(제3대)

1949년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