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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신용등급 사상 첫 강등 ‘국채=절대 안전’ 신화 깨졌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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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호 01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5일(현지시간) 워싱턴 네이비야드에서 “지난달 11만7000개의 일자리가 창출됐다”며 “미국 국민과 전 세계 우방에 강조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있고 상황이 더 개선될 것이라는 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미국 신용등급을 한 단계 강등하면서 오바마 정부는 어려운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다. [워싱턴=블룸버그]

완벽하게 안전한 자산이라는 미국 국채의 신화에 금이 갔다.

신용평가회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5일(현지시간)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을 한 단계 낮췄다. 최고등급인 ‘AAA’에서 ‘AA+’로 강등한 것이다. S&P는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미국 행정부와 의회가 부채한도 상향에 합의했지만 충분한 재정적자 축소대책을 내놓지 못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앞으로 10년간 재정적자를 4조 달러 이상 줄이지 않으면 신용등급을 내리겠다”던 지난달 14일의 경고를 실행에 옮긴 것이다.
미국의 신용등급이 하락한 것은 1941년 S&P가 신용등급을 매긴 이래 처음이다. 세계 최대 경제대국인 미국의 신용등급은 영국·독일·프랑스·캐나다보다 낮아지게 됐다. S&P는 신용등급 전망도 ‘부정적’으로 유지했다. 앞으로 12~18개월 안에 신용등급을 더 낮출 수 있다는 의미다.

미국 정부는 바로 반박에 나섰다. 익명을 요청한 재무부 당국자는 “S&P가 정부 지출액을 산정하는 데 2조 달러 이상 오류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하원 재무위원장을 지낸 바니 프랭크(민주당) 의원은 “2008년 금융위기를 사전에 예측하지 못한 S&P가 명성을 되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 벌어진 일”이라며 “국민에게 S&P의 결정을 무시하라고 얘기하겠다”고 말했다.

무디스와 피치는 신용등급 조정에 당장 동참하지는 않을 전망이다. 무디스는 부채한도 협상이 타결되자 “AAA 등급을 유지한다”고 발표했다. 피치는 올 6월 시작한 미국 신용등급 재검토작업이 이달 말 끝날 것이라며 AAA 등급을 유지했다.
신용등급 하락의 여파는 적지 않을 전망이다. 신환종 우리투자증권 연구위원은 “AA- 이상이면 위험 가중치가 같은 데다 미국 국채를 대신할 투자 수단이 마땅치 않아 당장 팔아 치우는 움직임이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완벽한 안전자산이라는 신화가 깨진 만큼 장기적으로는 중국 시장이나 금 등으로 자금이 이동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실물경제 침체로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됐다. JP모건체이스의 글로벌 채권투자책임자인 테리 벨튼은 “신용등급 강등으로 미국 국채 수요가 위축되면 금리가 상승하고, 여기에 연동된 주택 모기지와 신용카드·학자금·자동차 대출의 이자율도 오를 것”이라며 “가뜩이나 소비 침체로 고전하는 미국 경제가 더블딥에 빠지는 악순환이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S&P의 발표는 뉴욕 증권시장이 문을 닫은 뒤 나와 시장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4일 500포인트 넘게 급락했던 다우지수는 이날 고용지표 호전에 힘입어 60.93포인트(0.54%) 반등했다. 미 노동부는 지난달 새로 생긴 일자리가 11만7000개라고 발표했다. 예상치(8만5000개)보다 많다. 실업률도 9.1%로 한 달 새 0.1%포인트 하락했다.

정부는 임종룡 기획재정부 1차관 주재로 7일 오후 4시 긴급 경제금융상황 점검회의를 연다. 윤종원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장은 “미국 신용등급 하락은 한국 경제에 좋은 소식이 아니다”며 “시장 상황을 폭넓게 점검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9일로 예정된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와 주요 7개국(G7) 긴급 재무장관회의가 미국 신용등급 강등의 여파를 가늠하는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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