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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나눠 들여오다 걸리면 부부간에도 “모르는 사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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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호 04면

인천공항 세관 직원들이 지난 3일 전수조사 대상으로 분류된 항공 편 승객들의 가방을 열어 신고하지 않은 고가품이 있는지 확인하고 있다. 조용철 기자

“기이이잉….”
3일 낮 12시20분쯤 인천공항 입국장 내 A세관구역. 맨 가장자리에 설치된 1번 캐로셀(수하물 컨베이어벨트)이 육중한 기계음을 내며 돌아가기 시작했다. 체코 프라하를 출발, 10여 분 전에 착륙한 대한항공 936 편에 실린 짐을 막 쏟아내려던 참이었다. 승객은 270명가량.

해외여행객 사상 최대 … 인천공항 세관 검색대 르포

캐로셀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A구역 세관 직원들이 분주해졌다. 이날 오전 이 비행 편이 전수조사 대상이라는 통보를 받은 터였다. 세관신고서 제출대와 입국장 출구 사이의 좌·우측에 설치된 대형 X선 검색기도 가동 준비를 마쳤다.

5분쯤 뒤 법무부 출입국심사대에서 입국심사를 마친 승객들이 하나 둘씩 세관구역으로 걸어 나왔다. 자신의 짐을 찾은 승객들이 세관신고서를 내밀자 세관 직원들이 오른편의 X선 검색대로 안내했다. 세관 휴대품 8검사관실의 류기석 계장은 “전수조사 대상이 되면 원칙적으로는 모든 승객의 가방을 전부 열어 봐야 한다”며 “하지만 시간이 너무 걸리기 때문에 일단 X선 검색을 거친 뒤 이상이 있는 경우만 정밀검색한다”고 설명했다.

“휴대한 짐을 모두 검색대에 올려 달라”는 요청에 승객들이 손가방과 작은 짐가방을 검색기 안으로 넣었다. 그러자 맞은편 판독실 안의 모니터에 가방 내부가 비쳤다. X선 판독요원은 대부분 여성으로 경력 10~20년의 베테랑들이다. 핸드백 윤곽만 대략 봐도 명품 여부를 구별할 수 있다.

인천공항 1층의 세관 유치품 창고엔 여행객들이 가져오다 적발된 루이뷔통·샤넬 등 명품 핸드백이 즐비하다.

승객들이 점차 늘어나자 왼쪽의 X선 검색기도 가동을 시작했고 세관 직원들이 추가 배치됐다. 승객들의 대기줄은 순식간에 6~7열까지 늘어났다. “빨리 좀 해 달라”는 요구는 있었지만 이렇다 할 항의는 없었다.

한 여성 승객의 짐에서 이상이 발견됐다. 옆으로 옮겨 짐가방을 열자 명품 핸드백이 들어 있었다. 이탈리아산으로 구매가만 150만원을 넘었다. 처음엔 “신고할 물품이 없다”고 잡아떼던 이 여성은 결국 사실을 인정하고 20여만원의 관세를 물었다. 또 다른 40대 여성도 X선 검색에서 적발됐다. 가방을 열어 보니 100만원을 호가하는 시계와 고급 양주가 들어 있었다. 이 여성은 “면세점에서는 3000달러(약 320만원)까지 사도 괜찮다고 하던데 왜 문제냐”고 따졌다. 세관 직원이 “구매는 3000달러까지 가능해도 입국 시에는 400달러(약 43만원)까지만 면세가 인정된다”고 설명하자 그제야 수긍하는 모습이었다.

류 계장은 “명백하게 면세 범위를 초과한 물품이 발견됐는데도 무조건 아니라고 우기는 사람이 적지 않다”며 “물건을 나눠 가져오다 적발되면 심지어 부부간에도 서로 모르는 사람이라고 발뺌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가방에 고급 와인 4병을 넣어 왔던 50대 여성도 X선 검색을 무사히 넘기지는 못했다.

이 전수조사는 오후 1시가 넘어서면서 마무리됐다. 평소 10~15분 정도면 끝나던 통관시간이 2~3배가량 걸렸다. 세관의 강관구 반장은 “한번 전수조사를 하면 비행기 한 편에서 평균 5~6건의 위반사항이 적발된다”고 밝혔다.

검사 대상 비행기 당일 아침 결정
이날 전수조사는 본격적인 휴가철을 맞아 관세청이 지난달 18일부터 정한 ‘여행자 휴대품 통관 특별단속기간’에 따라 진행됐다. 특별단속은 이달 말까지다. 이 기간 동안에는 하루 평균 5~6편이 전수조사 대상으로 분류된다. 평상시에는 밀수나 검역 등의 특이사항이 있을 경우 전수조사가 이뤄진다. 건수도 통상 2편 내외다.

관세청이 특별단속에 나선 이유는 올여름 휴가철 해외여행객이 사상 최대 수준이기 때문이다. 인천공항에 따르면 7월 마지막 주의 출국자는 49만여 명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항공사들의 예약률과 탑승률도 과거 기록을 훨씬 웃돈다.

올 상반기 해외여행객의 고가 물품 반입이 크게 늘어난 것도 한 이유다. 관세청에 따르면 올 상반기 세관에 적발된 명품 핸드백은 3만21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2만1152건)보다 42%나 증가했다. 고가 화장품도 12%나 늘었고, 귀금속 적발률도 5%포인트 높아졌다. 관세청 특수통관과 관계자는 “술·골프채 등 남성용품 반입은 줄어드는 반면 여성용품은 지속적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국내 시판가격이 400만~500만원대인 샤넬 가방은 해외에서 들여올 경우 국내에 비해 100만원 이상 이익을 얻을 수 있어 ‘샤테크(샤넬+재테크)’란 말이 나올 정도다. 실제로 지난달 3일엔 스페인에서 입국한 장모(54)씨가 샤넬 핸드백과 지갑·의류 등 90여 점을 부인과 아들 등의 가방에 분산한 뒤 서로 모르는 사람인 것처럼 세관을 빠져나오려다 적발됐다. 이들이 들여오려던 물품은 시가가 무려 4500만원을 넘어섰다. 또 지난달 11일 필리핀에서 입국한 최모(39)씨는 국내 면세점에서 산 샤넬 핸드백(시가 490만원)을 몰래 다시 가져오려다 걸리기도 했다. 최씨는 동행에게 핸드백 운송을 맡기는 수법을 썼다.

인천공항의 경우 특별검사 기간에 따른 전수검사 대상 비행 편은 당일 아침에 결정된다. 세관의 담당 부서에서 사치품, 마약 밀반입 등 다양한 가능성을 조합해 대상을 선별해 검사부서에 통보한다. 현장 검사관실은 조사 대상 비행 편의 도착시간에 맞춰 준비를 한다. 요즘은 명품 핸드백, 고급 시계 등 고가품 유입이 많은 홍콩이나 유럽 노선에 대해 많이 실시하고 있다.

평소 세관신고서만 제출하면 대부분 통관되던 때에 비하면 절차도 복잡하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 이 때문에 현장 직원들의 고충도 적지 않다. 세관 최재석 과장은 “적은 인원으로 전수조사를 소화해 내려면 상당히 힘들다”며 “그래도 예외 없이 모든 승객을 조사하기 때문에 승객들의 항의는 적은 편”이라고 전했다.

특별단속의 효과는 제법 크다. 인천공항세관에 따르면 조사가 강화된 지난달 18일부터 31일까지 적발된 명품 핸드백은 1558건으로 전달 같은 기간(6월 18~30일)보다 33.5%나 늘었다. 수백만원대의 고급 시계도 30.3% 증가했다. 고급 양주를 한 병 넘게 가지고 들어오다 걸린 경우도 16.3% 많아졌다. 명품 핸드백의 경우는 주로 홍콩·싱가포르·프랑스·이탈리아 등에서 오는 비행 편에서 많이 발견된다. 고급 시계는 태국·핀란드·일본발 비행 편에 많다.

전수 검사 후 명품 적발 33% 늘어
고가품을 밀반입하는 수법도 다양하고 치밀해 세관 직원들을 애먹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지난달 24일 인천공항 세관은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에서 입국한 박모씨를 검사 대상자로 미리 선별해 놓았다. 국내 면세점에서 200만원이 넘는 고급 시계를 구입한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씨는 조사에서 “신고할 물품도 없고 동행도 없다”며 “시계는 현지에서 선물로 주고 왔다”고 주장했다. 실제 가방을 열어 봐도 문제의 시계는 찾을 수 없었다. 박씨는 유유히 입국장을 빠져나갔다.

그러나 다른 세관 직원이 입국장 밖에서 박씨가 함께 귀국한 부인과 자녀를 만나는 것을 확인하고는 다시 세관검사대로 불러 부인과 자녀의 가방을 열었다. 시계는 찾지 못했지만 대신 180만원짜리 명품 핸드백을 발견해 세금을 부과했다. 최근엔 국내에서 산 고가품을 여행지에서 선물로 주고 왔다고 우기며 현지 지인까지 전화로 연결해 준 경우도 있다. 하지만 세관 직원이 신고절차와 처분 규정 등을 여러 차례 설명해 주자 결국 거짓을 시인했다고 한다. 최재석 과장은 “승객이 계속 부인하는 경우에는 밀반입 사실을 확인하는 데 하루 종일 걸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세관 검사 과정에서 적발된 물품은 일단 인천공항 여객터미널 1층 세관구역 내에 있는 유치품 보관창고로 옮겨진다. 이날 창고 선반에는 샤넬·구찌·프라다·루이뷔통 같은 수백만원대의 명품 가방이 즐비하게 놓여 있었다. 한 검은색 샤넬 가방은 가격이 400만원을 넘는다고 했다. 한 달 전에는 1000만원이 넘는 에르메스 가방이 유치되기도 했다.

또 다른 선반에는 고급 양주와 정력제, 헤어오일, 정체불명의 알약에서 담배까지 다양한 유치품이 쌓여 있었다. 세관 안정수 반장은 “검사 강화기간 중 유치품이 많이 늘었다”고 말했다.

전수조사 현장에서 세관 직원들은 한결같이 ‘승객들의 솔직한 답변’을 강조했다. 증거가 있는데도 계속 우기면 결국 세금도 더 많이 내고 ‘세관 블랙리스트’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세관의 여행자 정보 사전확인 시스템(APIS:Advance Passenger Information System)에 따라 해외여행 때마다 주요 검색 대상으로 지목되는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 이날 오전 11시20분쯤 태국에서 도착한 비즈니스에어 868 편에 APIS에 의해 조사 대상자로 지정된 20대 여성이 있었다. 이 여성은 과거 적발 사실을 우려했기 때문인지 짐을 찾은 뒤에도 한참 동안이나 세관신고서 제출대 쪽으로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세관에서는 이미 입국신고 때부터 이 여성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었다.

그사이 또 다른 20대 여성이 손목에 남성용 고급 시계를 차고 나오다 조사를 받았다. 이 여성은 “동행이 없고 시계는 아버지가 사 준 것”이라고 계속 주장했다. 20여 분 뒤 APIS에 오른 여성이 세관검사대에 나타나자 모든 사실이 확인됐다. 두 여성은 자매였다. 하지만 서로 모른 척 따로 나오려다 문제의 여성이 조사 대상으로 분류돼 있는 탓에 걸리고 만 것이다.

세관 김규진 공보담당관은 “국내의 면세 통관 기준이 외국에 비해 더 엄격한 수준은 아니다”며 “여행객들이 관세를 ‘당연히 내야 하는 것’이 아닌 ‘걸리면 운이 없는 것’으로 보는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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