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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뉴욕 맨해튼에 또 하나의 명물이 탄생했다. 솔로몬 R 구겐하임 재단과 BMW그룹이 손을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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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호 08면

1, 3 BMW Guggenheim Lab New York City 내부 전경, the interactive installation Urbanology 시연, Photo Roger Kisby ⓒ Solomon R. Guggenheim Foundation

3일 뉴욕 맨해튼에 또 하나의 명물이 탄생했다. 솔로몬 R 구겐하임 재단과 BMW그룹이 손을 잡고 만들어 낸 ‘BMW 구겐하임 랩(이하 연구소)’이다. 건축·예술·디자인·교육·과학·기술 분야 전문가와 시민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머리를 모아 미래의 도시는 어때야 하는지 밑그림을 그리는 곳이다. 미래 도시생활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거시적 실험을 미술관과 자동차 기업이 함께 시작했다는 자체가 통섭이고 융복합이다.

2 East First Street에서 바라본 BMW Guggenheim Lab 외관, 아틀리에 바우와우가 설계 ⓒ Solomon R. Guggenheim Foundation

새 연구소는 이스트빌리지에 차려졌다. 이스트빌리지가 어디인가. 1960년대 이후 뉴욕 젊은 예술가들의 아지트로 통하던 곳 아닌가. 장 미셸 바스키아와 키스 해링이 담벼락에 그라피티를 그리며 당대 미술운동을 주도하고, 중국의 아이웨이웨이와 한국의 오치균이 예술혼을 불태우던 바로 그곳.

그 창조적 기운을 다 빨아들이고야 말겠다는 듯 이곳에 둥지를 튼 새 연구소 역시 크리에이티브한 기운이 넘쳐났다. 건물 사이 비워진 작은 돌밭에 마련된 연구소는 모양새부터 상식을 뛰어넘었다. 반짝이는 반투명 메시에 싸인 2200평방피트의 복층 구조. 극경량 소재의 탄소섬유 골조공법으로 설계된 최초의 건물이다. 탄소섬유의 강도는 강철의 다섯 배다. 뉴욕(3일~10월 16일)에 이어 베를린(2012년 봄)과 뭄바이(2012~2013년 겨울)로 이동할 것을 감안해 건물의 이름도 ‘여행도구상자’다. 설계는 일본의 아틀리에 바우와우가 했다. 건물 아래층에는 카페가 마련되고 모임이나 무대 공간으로도 쓸 수 있다. 위층은 밧줄 시스템을 통해 필요에 따라 올리고 내릴 수 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도시의 문제점을 탐색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안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무료로 체험하게 된다. 가장 중요한 프로그램은 그룹 게임인 어버놀로지(Urbanology). 도시에서 서로 상충하는 요소들에 대한 해결책을 묻는 게임이었다. “시립박물관 경비가 성전환한 여성에게 ‘미스터’라고 불러 이 여성이 화를 냈다. 이 경비는 해고당해야 하는가?” “거리에서 구걸하는 것을 허용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등의 질문이 나왔다. 참가자들은 이 질문에 각자 예스(Yes)나 노(No)로 답하고 어느 것이 많은지 그 결과에 따라 5개 토큰박스 중 하나를 앞으로 옮기는 게임을 했다. 미디어 체스 역할을 하는 5개의 토큰박스가 상징하는 주제는 각각 이동성(교통), 거주 문제, 지속성, 경제, 삶의 질. 도시에서 서로 상충하는 요소들이다.

게임 참가자들은 도시 변혁을 위한 시나리오로 역할극을 하면서 각자의 필요에 맞는 도시를 구축해 갔다. 그 과정에서 5가지 요소에 대해 옹호하거나 반박한 결과는 인터랙티브하게 전광판으로도 디스플레이됐다. 게임이 계속되는 만큼 결과는 축적되는 셈이다. 10주간 100여개의 공공실험이 진행되는 이 프로그램은 트위터나 페이스북, 유튜브 등을 통해 참가할 수 있다.

BMW는 왜 이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일까. 이날 만난 BMW 문화담당 임원인 토머스 거스트 박사는 “자동차를 팔기 위해 이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은 결코 아니다. 굳이 연관 짓자면 미래 도시의 교통에 대한 주제는 다룰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주민의 소리를 경청하고 도시민의 삶을 생각하는 회사로 인식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얼마를 들였느냐고 묻자 “밝힐 수 없다. 몇천만 유로 수준이다. 이 프로젝트의 가치는 값으로 평가할 수 없다. 경매에서 1억 달러에 팔린 피카소의 그림은 왜 1억 달러인가. 미술사적 이유가 그 값을 매기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아니면 아무도 생각하지 못하는 프로젝트를 하고자 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개인적으로는 BMW의 전기차 프로젝트도 한몫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은 대중화에 어려움이 있지만 독일에 전기차 생산라인을 갖췄다는 소식은 BMW가 미래 메가시티 조성이라는 거시적 목표를 향해 실행전략을 차근차근 진행하고 있다는 인상을 줬다.
구겐하임 미술관의 건축 및 도시연구 담당 큐레이터 데이비드 반 데 리어는 “연구소를 통해 무엇을 얻기를 바라는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모두 도시에 살고 있다. 매일매일 살면서도 알아채지 못하는 삶에 대한 자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다. 주민들의 생각이 어떻게 나올지 아직 아무도 모르지만 이 프로젝트를 통해 미래를 설계하는 데 많은 아이디어를 얻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이번 프로젝트에는 세계적 지휘자인 다니엘 바렌보임, 뉴욕의 하이라인파크를 설계한 건축디자이너 엘리자베스 딜러 등 저명인사들이 자문위원으로 참가하고 있다. 한국의 젊은 디자이너 슬기와 민은 연구소의 그래픽디자인을 맡았다.

이 프로젝트는 6년간 세계 9개 도시를 순회하며 계속된다. 2년간 뉴욕·베를린·뭄바이에서 진행되는 1기 프로젝트는 2013년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그간의 결과물을 전시하며 막을 내린다. 2기 프로젝트에는 새로 세 도시가 선정되며 역시 새롭게 설계된 모바일 랩 건물이 순회전을 하게 된다. 이번 3일간의 뉴욕 론칭 기간 중 BMW코리아의 미래재단 사무국은 2기 프로젝트가 될 아시아 순회계획에 서울이 낙점될 수 있도록 다방면으로 서울 알리기에 나섰다.


박혜경씨는 서울옥션 창립 멤버로 2010년 에이트 인스티튜트를 설립, 다양한 문화예술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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