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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잠겼던 차 8000대 중고차 시장 쏟아진다는데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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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지난 5월 결혼한 회사원 이인영(28)씨는 최근 부부가 타고 다닐 중고차를 물색해 왔다. 하지만 지난달 말 폭우로 침수피해를 본 차량이 중고차 시장에 늘어날 것이라는 얘기를 듣고 생각을 바꿨다. 이씨는 “중고차 시장에 가서 직접 매물을 봤는데 전혀 구별을 못하겠더라. 딜러는 ‘침수차가 매물로 나온 건 아직 없다’고 했지만 솔직히 어떻게 알겠느냐”고 말했다.

 최근 기록적인 폭우로 침수피해를 당한 차량이 1만여 대에 육박하면서 중고차를 사려는 소비자들이 피해를 볼 가능성이 커졌다. 5일 서울시와 손해보험업계에 따르면 현재 침수피해 차량 중 8000대가량이 중고차 시장으로 쏟아져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2000여 대는 폐차 처리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주요 포털사이트 게시판에는 ‘침수차 매입합니다’라는 광고 글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서울 용답동 장안평중고차시장에서 일하는 매매업자 박모(35)씨는 “보험회사에서 소비자에게 차값을 보상한 뒤 경매시장에 내놓는 침수차량을 전문적으로 매입하는 업자들이 있다”고 귀띔했다. 침수지역에 직접 찾아가 침수차량에 명함을 꽂아놓고 물량을 확보하거나 심지어 폐차장에서 침수차량을 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업자들은 이렇게 매입한 침수차량을 무허가 정비업체나 안면이 있는 공업사에서 일괄 수리한다. 이 경우 정비업체에서 성능 및 상태점검기록부를 제대로 작성하지 않기 때문에 침수사실이 기록에 남지 않는다. 이처럼 침수사실을 감춘 ‘무빵(무사고) 차량’은 정상가보다 조금 낮은 가격에 인터넷에서 판매되거나 중고차 매매상에게 다시 흘러들어가기도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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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수차량을 구별하기 위해서는 꼼꼼한 준비가 필요하다. 한국소비자원은 “중고차를 살 때는 보험개발원의 사고이력(카 히스토리) 조회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5000원만 내면 침수사고 여부를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으로 바로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침수사실을 감춘 차들을 이 방법으로 모두 가려내긴 힘들다는 점에서 공인된 성능 점검업체에서 재점검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 엔진과 배선 등 차량 내부까지 꼼꼼히 점검해야 한다.

 경기도 일산에서 정비센터를 운영하는 김용(57)씨는 현장에서 침수 여부를 손쉽게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다. ▶연식에 비해 퓨즈·배선·시트·안전벨트 등이 너무 새것일 경우 ▶독한 방향제를 사용한 경우 ▶전조등·후미등·실내등에 습기가 찬 경우 등은 침수 가능성을 의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씨는 “방향제 냄새를 뺀 뒤 곰팡이가 슬었는지를 체크하고 내부에 습기가 찬 정도도 잘 살펴야 한다”고 조언했다.

 특히 외제차가 ‘중고차 세탁’의 주요 타깃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번 침수피해가 ‘부촌’으로 알려진 방배동·대치동 일대에 집중되면서 수입차들이 적잖이 피해를 본 데다 낮은 가격에 수입차를 사려는 수요가 있어서다. 정비업체 관계자들은 “외제차의 경우 서울 장안평이나 부산에서 재생부품을 구입해 수리하면 수리비가 저렴하다”며 “수입차를 고쳐 팔면 이익이 많이 남는다”고 말했다.

 자동차10년타기시민연합 임기상 대표는 “올해 말까지 침수차량이 중고차 시장에 꾸준히 나올 것 같다”며 “피해를 줄이려면 보험개발원이 사고이력을 등록하는 데 걸리는 기간을 현재 1~2개월에서 대폭 단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원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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