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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중 아빠 8명 ‘진로교육 품앗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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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대청중 학부모인 김영호 삼성서울병원 치과진료부 교정과장(왼쪽)이 지난달 26일 병원에서 학생들에게 의료 시설을 소개하고 있다. 의사를 꿈꾸는 중학생 8명이 방문했다. [조문규 기자]

“돈을 잘 벌기 위해 의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버리세요. 의사는 환자를 지켜주는 수호자란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지난달 26일 오전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회의실. 이 병원 치과진료부 김영호(47·성균관대 의대 교수) 교정과장은 중학생들에게 의사가 되기 위해 필요한 마음가짐을 소개했다. 김 교수는 “공부하기 싫은 사람은 의사가 돼서는 안 된다”며 “숨을 쉬듯 항상 책을 봐야 뒤처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날 김 교수의 현장 직업 특강에는 서울 대청중 학생 8명이 참가했다. 모두 의사의 꿈을 꾸고 있다. 이들은 암센터, 임상의학연구센터 등을 둘러본 뒤 의사가 되기 위해 필요한 교육과정과 시험에 대해서도 설명을 들었다. 학생들은 “그동안 너무 막연했는데 이제 어떤 사람이 의사가 돼야 하는지, 무슨 준비가 필요한지 알게 됐다”고 말했다.

 아빠들이 직접 교실을 찾거나 직장으로 학생들을 초청해 생생한 직업의 세계를 가르쳐 주는 ‘아빠들의 진로교육 품앗이’가 확산되고 있다. 재능 기부 움직임이 사회적으로 활발해진 데다 진로교육을 체계적으로 시켜야 한다는 인식이 학부모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는 것이다.

 

 이번 삼성서울병원 견학도 대청중 학부모인 김 교수가 먼저 제안했다. 중학교 3학년인 그의 막내딸은 법조인이 장래 꿈이다. 부인의 직업도 의사다. 딸을 도와줄 방법이 없었다. 그는 “딸의 학교 친구들에게 내 직업을 소개시켜 주면 다른 학부모가 도와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올 초 학교 문을 두드렸다. 학교장은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아버지회에 도움을 요청했더니 변호사, 미술품 판매가, 자연사박물관 직원, 시의회 공무원 등 다양한 직업의 학부모 8명이 손을 들었다. 중1, 중3 자녀를 둔 이학준 서울옥션 대표이사는 “자식 같은 또래 친구들에게 풍요로운 경험을 주고 싶어 참여했다”고 말했다.

 학교에서 아빠들의 직장을 둘러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고 하자 학생 100여 명이 몰렸다. 학생들은 여름방학을 이용해 경희대 자연사박물관, 서울시의회, 서울옥션, 서울중앙지방법원, 희림건축사 사무소 등을 방문할 예정이다. 대청중 신춘희 교장은 “자녀의 진로지도를 위해 아버지들의 직장 품앗이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직장 품앗이는 다른 학교에서도 확산되고 있다. 강남구 신사중은 지난 5월 아버지들이 학생들에게 직업을 소개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국제회의 전문가, 디자이너, 사진가 등 갖가지 일을 하는 아버지 15명이 학교를 방문해 진로수업을 했다. 신사중 김현태 교무부장은 “내년에는 아버지 직장에 찾아가는 프로그램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아버지 직장에 방문한 학생들은 목표를 보다 현실적으로 정할 수 있다. 삼성서울병원을 방문했던 전재민(14·대청중1)군은 “의사가 돈만 많이 버는 직업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힘든 직업이란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박소연(16·중3)양은 “미국에서 의사가 되고 싶어 알아봤더니 쉽지 않다는 답을 들어 더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 강성봉 진로교육과장은 “중학교 때 진로교육을 강화해야 고교와 대학에 가서도 학업을 꾸준히 이어갈 수 있다”며 “직장 품앗이를 적극 권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글=김민상 기자
사진=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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