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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사각지대’에 놓인 탈북 청소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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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탈북 학생 중도 탈락률, 일반 학생의 9배…
서울시 유일의 탈북 청소년 학교는 재정난에 허덕여

월간중앙 전국 초·중·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탈북 청소년은 모두 1417명(2010년 기준)이다. 그러나 탈북 과정에서 공부할 시기를 놓쳤거나, 정규 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퉁겨져나온 ‘학생’도 많다. 20대 초·중반의 이들은 대안학교 등 비정규 학교에서 꿈을 키워간다. 포기하기엔 너무 이른 이들의 학교생활을 들여다봤다.

학교 옥상에서 서울시내 전경을 바라보는 여명학교 학생들. 이들 대부분은 한국 사회에 빨리 적응하기 위해 일반 학교에 진학하고 싶어 하지만 학령기를 놓쳐 대안학교를 선택했다.

봉철(21)이는 중학교 때 소위 ‘학교 짱’이었다. 힘이 있으면 친구들이 건드리지 않기 때문이었다. 불량한 친구들과 무리 지어 다니며 ‘강한 척’을 했다. 처음부터 그럴 생각은 아니었다.

열네 살이 되던 2003년 봄, 봉철이는 엄마와 함께 한국에 왔다. 1998년 고향인 함경북도 온성을 떠난 지 5년여 만이었다. 중국에서 보낸 시간은 끔찍했다. 중국 공안의 감시를 피해온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살았다. 잡혔을 때 다 같이 죽느니 떨어져 살아야 안전할 거란 판단에서였다. 하지만 발 한번 편히 뻗고 잔 적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세 살 터울의 봉철이 누나가 가족들에게 ‘한국행’을 선언했다. 처음엔 말리던 엄마도 “여기서 굶어 죽으나 가다 잡혀 죽으나 무슨 차이가 있갔니”라며 더 붙잡지 못했단다.

누나가 한국으로 떠난 지 1년여 뒤, 봉철이 가족은 다시 중국 공안에게 잡혀 강제 북송됐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다시 탈북해 중국으로 왔다. 어떻게 해서든 살아야 했다. 다행히 한국에 있던 누나와 연락이 닿았고, 엄마와 함께 지난한 도망자 삶을 끝냈다.
이제 행복할 일만 남은 줄 알았다. 하지만 ‘학교’라는 또 다른 벽에 부딪혔다. 14세인 봉철이는 자신보다 두 살 어린 친구들과 함께 초등학교 5학년에 배정됐다. 하지만 학력 수준은 초등학교 1학년도 되지 않았다. 기초학력을 쌓을 시기에 피난생활을 했던 봉철이는 알파벳은커녕 한글도 잘 몰랐다.

“학교에서 처음으로 중간고사를 치는데 아는 게 하나도 없었어요. 공부를 안 했으니 당연했죠. 하지만 기말고사는 잘 치고 싶어서 정말 열심히 공부했거든요. 자신 있게 시험지를 받았는데 보니까 또 전혀 모르는 내용만 있는 거예요. 저는 중간고사에 나온 내용만 공부했으니까요. 그만큼 시험의 개념 자체가 없었어요.”

하지만 누구 하나 봉철이를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다. 재학생 1000명이 넘는 제법 큰 규모의 학교였지만 북한에서 온 봉철이의 학습 공백을 메워줄 만한 프로그램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나마 동네 복지관에서 영어 수업을 받은 게 유일한 ‘보충 수업’이었다.

10명 중 8명은 학교 수업 이해 못 해

동아리 활동으로 드럼을 배우는 정봉철 군. 7년여 동안 일반 학교에 다닌 봉철 군은 여명학교로 전학 와서 표정이 더 밝아졌단다.

한국교육개발원이 2009년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학교 수업(국어·영어·수학 기준)을 대부분 이해한다’는 탈북 청소년 학생은 18.9%에 불과했다. 특히 수학 과목의 경우 남한에 입국해 거주한 기간이 길수록 ‘수업을 이해한다’고 답한 비율이 오히려 감소했다. 탈북 청소년의 학습 공백은 시간이 지난다고 자연히 좁혀지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간신히 초등학교를 졸업한 봉철이지만 중학생이 돼서는 한번 잘해보고 싶었다. 이북 사투리를 어느 정도 고친 터라 북한에서 온 사실도 숨겼다. 그래서 중학교 1학년 때는 수업 한 번 빠지지 않았다. 하지만 학교 수업을 따라가긴 점점 더 어려웠다.

“열심히 해도 안 되니까 공부도 점점 재미없어지더라고요. 초등학교 때는 그래도 엄마나 아는 형들한테 물어가며 공부했는데 중학교는 그걸로 안 됐어요. 그렇다고 학원 보내달라고 할 형편도 아니고…. 원래 공부 잘하는 애들은 잘하는 애들끼리 놀고, 못하는 애들은 그런 애들끼리 놀잖아요. 제가 공부를 못하다 보니 불량한 애들이랑 휩쓸려 사고도 많이 치고 다녔어요.”

대학 갈 엄두가 나지 않아 실업계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자동차과에 들어간 봉철이는 ‘일단 고등학교만 졸업하자’는 생각뿐이었다. 공부가 될 리 없었다. 지각을 밥 먹듯이 하고 마지못해 학교에 나갔다. 보다 못한 고향 친구가 봉철이를 타일렀다. 봉철이와 비슷한 시기에 남한에 와 탈북 청소년을 가르치는 대안학교에 들어간 친구였다.

“제가 일반 학교에 들어가서 이제 겨우 고등학생이 됐을 무렵 대안학교를 선택한 그 친구는 일찌감치 대학생이 됐어요. 2년 만에 검정고시로 중·고등학교 과정을 끝내고 대학교에 들어간 친구를 보니 마음이 조급해지더라고요. 나만 허송세월 보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지난해 3월, 봉철이는 탈북 청소년 대안학교인 여명학교로 전학 왔다. 이처럼 일반 정규 학교를 도중에 그만두는 탈북 학생 비율은 고등학교 과정의 경우 9.1%(2009년 기준)에 이른다. 그나마 2007년 28.1%에서 크게 줄었지만 전체 1.4%만이 중도 탈락하는 일반 학생과 비교하면 9배 가까이 높다.

전문가들은 사회체제에서 오는 교육제도의 차이, 오랜 교육 공백과 입시 위주의 교육환경을 그 원인으로 꼽았다. 그나마 봉철이처럼 대안학교로 전학하는 경우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지난 10년간 국내에 입국한 20세 이하 탈북 청소년 2538명(2010년 기준) 중 17.2%에 달하는 294명은 학교(대안학교 포함)에 전혀 다니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여명학교에 전학 온 봉철이는 또다시 ‘짱’이 됐다. 이번엔 싸움을 잘해서가 아니다. 전학 온 지 1년 만인 올해 초, 전교생의 투표를 거쳐 당당히 전교회장으로 선출됐다.

“일반 학교에서의 경험이 다른 친구들에겐 신선하게 느껴졌나 봐요. 여기 애들 대부분은 남한 사회를 전혀 체험하지 못하고 바로 이 학교로 와서 뭐든 서툴거든요. 남한 애들이 초등학교 졸업만 해도 아는 걸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지하철 타기부터 은행에서 돈 찾는 일까지 다 도움이 필요해요. 그럴 때 제가 도와줘 회장으로 뽑힌 게 아닐까요? 하하.”

일반 학교에서는 문제아 취급을 받던 봉철이는 점차 학교생활에 자신감을 되찾았다. 조명숙 여명학교 교감은 “처음 왔을 때보다 얼굴 표정도 훨씬 밝아지고 명랑해졌다”고 봉철이의 변화를 즐거워했다. 변한 건 이뿐만이 아니다. 봉철이에게는 이제 이루고 싶은 꿈이 생겼다.
“대학 졸업 후에 요리사가 되고 싶어요. 그래서 학교 수업 끝나면 요리학원에 다녀요. 조리 자격증을 따야 하거든요. 기말고사도 다가오고, 숙제도 많아서 힘들지만 너무 재미있어요. 요즘은 원서 쓰느라고 더 바빠요. 일반 학교 다닐 때는 제가 대학에 갈 거라곤 생각도 못 했는데…. 방황하던 때를 생각하면 지금 대학 입시 준비로 바쁜 게 꿈만 같아요.”

인기학과는 간호학과·경영학과
봉철이는 대학교의 재외국민특별전형을 통한 입학을 준비 중이다. 대부분의 탈북 학생들은 이 전형을 거쳐 대학에 입학한다. 학교마다 차이는 있지만 수학능력시험을 따로 치르지 않고, 자기소개서와 면접 등만 치르면 돼 탈북 학생들이 비교적 쉽게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거의 모든 탈북 청소년이 대학 입학을 원하고, 실제로 그 가운데 90% 이상이 들어간다”고 말했다.

하지만 들어가긴 쉬워도 졸업하긴 쉽지 않다고 한다. 탈북 청소년의 대학 진학을 돕는 심용창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 교육지원부장은 “탈북 학생 3명 중 1명은 자퇴를 하고, 40% 이상이 휴학한다”면서 “통계치로 잡힌 건 장학금 지원을 받는 학생뿐이니 실제로 중도 탈락한 학생은 더 많을 거라 예상한다”고 말했다. 이유는 또다시 학력 격차다. 일반 학생들이 학점·어학연수·인턴십 등 몇 마리 토끼를 잡을 동안 탈북 학생들은 대학 시스템 자체도 이해하기 어렵다. 게다가 한국어 능력이 떨어지는 이들에게 전공 과목 공부는 더 어렵다.

탈북 학생들이 많이 입학하기로 유명한 서울의 한 사립대 입학처 관계자는 “탈북 학생들에게 기회를 제공하려고 많은 입학생을 받아왔지만 중도에 자퇴하는 사례가 속출해 당황스럽다”면서도 “어려서부터 영어를 배우고, 경쟁구도에 익숙한 일반 학생들과 모든 게 처음인 탈북 학생이 학점이나 영어성적을 놓고 경쟁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학교에 입학한 탈북 학생은 지난해부터 눈에 띄게 줄었다.

탈북 학생들에게 인기가 높은 학과로 간호학과나 경영학과 등이 꼽힌다. 조명숙 여명학교 교감은 “남한과 북한의 가장 큰 차이점이 경제 제도니까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막연한 이유를 들어 경영·경제학과에 진학하려는 학생이 많다”면서 “경제 용어나 원서 교재를 이해하는 능력이 떨어져 학과 수업을 따라가기 힘들지 모른다는 점을 충분히 숙지시키고 있다”고 귀띔했다. 지난 15년간 탈북 학생을 지도해온 조 교감은 인문학 계열에 입학한 학생의 중도 탈락률이 더 높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란다.

탈북 과정에서 중국에 체류한 기간이 긴 학생들은 그간 익힌 중국어 실력을 바탕으로 중국어학과에 들어가는 경우도 많다. 여명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지희(가명·21)도 중국어과를 지망한다. 2008년 2월, 한국에 온 지희는 7년간 중국에서 살았다. 소학교(초등학교)까지 마치고 탈북했지만 중국에서는 나이를 세 살 아래로 속여 초등학교 3학년 과정에 편입했다. 조선족 학교를 다녀 한국어를 쓰기도 했지만 대화의 70% 이상은 중국어를 썼다.

“중국에서 살 때 조선족과 말투가 다르면 공안들에게 잡힐 가능성이 많거든요. 제가 북한에서 왔다는 걸 숨기려고 일부러 더 중국어를 썼어요. 엄마는 중국어를 잘 못하셨는데 제가 하나하나 가르쳐주면서 집에서도 중국어로 말했어요.”
2006년, 어머니가 먼저 자리를 잡겠다며 한국으로 떠나자 지희는 혼자 남겨졌다. 2년 뒤 어머니의 초청으로 한국에 왔을 땐 한국말을 거의 잊었다고 한다.

“조선족이 쓰는 말과 남한 말은 전혀 달라요. 어느 정도 의미는 통하는데 그래도 못 알아듣는 게 많았어요. 예를 들면 옌볜에서는 ‘자신감’이라는 말 대신 ‘신심(信心)’이라고 말해요. 똑같은 뜻인데 한자를 직역한 거죠. 남한에서 ‘신심’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잖아요.”
지희는 여명학교에 진학해서 “한국어를 처음부터 새로 배운 거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지희처럼 중국 체류 기간이 긴 탈북 청소년의 경우 수업뿐만 아니라 한국어 소통부터 어려움을 겪는다. 탈북자와 다문화 가족을 돕는 재단법인 ‘무지개청소년센터’가 2009년 15~24세 탈북자 89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북한을 탈출해 남한에 들어올 때까지 평균 21개월을 중국 등 제3국에서 생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 관계자는 “짧게는 1년, 길게는 7~8년을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떠돌다 온다”고 말했다.

한국어보다 중국어가 익숙해
지난해 한국연구재단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탈북 중고생의 평균 국어 성적이 다문화 가정 청소년보다 20점 가까이 낮았다. 특히 국어 문제 중 읽기 영역의 점수도 탈북 청소년이 가장 낮은 점수를 받았다. 탈북 청소년들의 평균 점수는 12.45점(100점 만점)이었고, 다문화 가정 학생은 15.34점이었다. 일반 청소년은 21.06점으로 나타났다. 한국어가 모국어라 일상적인 대화에는 큰 어려움이 없지만 학습에 필요한 읽기·쓰기능력은 현저히 떨어졌다. 이 연구를 진행한 신동희 이화여자대학교 과학교육과 교수는 “학년 구분 없이 같은 수준의 문제로 평가해 전체 평균 성적이 떨어졌지만 탈북 청소년 성적이 유독 낮았다”고 평가했다.

이들과 마찬가지로 학력 수준이 낮지만 일반 학교에 편입하기는 어려운 19세 이상 탈북 학생들의 사정은 더 심각하다. 서울시내 탈북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대안학교 중 유일하게 학력 인정을 받는 여명학교의 정원은 70명이다. 중·고등학교 과정으로 나뉘는데 고등학교 과정만 학력이 인정돼 학생들에게 인기가 높다. 현재 인원이 65명이라 아직 5명이 더 입학할 수 있지만 고등학교 과정은 이미 자리가 꽉 찼다. 재학생들의 평균 나이는 22세다. 조명숙 교감은 “나이가 차서 일반 학교에 가기 힘든 아이들이 주로 온다”고 말했다. 정부에서 170억원의 예산을 들여 지은 한겨레중고등학교도 만 19세까지만 재학이 가능해 나이가 더 많은 아이들은 갈 곳이 없다.

“얘네라고 왜 일반 학교 안 가고 싶겠어요. 우리도 미국에 이민 가면 미국인들이랑 학교 다니고 싶지, 한인학교 다니고 싶겠어요? 얘네도 남한 사회에 빨리 적응하기 위해 일반 학교에 가고 싶은데 학력 격차가 너무 나니까 못 가는 거죠. 그렇다고 20세가 넘었는데 초등학교에 들어갈 수도 없고…. 안 되는 건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힘들잖아요.”

이곳 학생들은 오자마자 반편성고사를 치러야 한다. 나이보다는 자신의 학력 수준에 따라 중학교와 고등학교 과정으로 나뉜다. 초등학교 검정고시부터 치러야 하는 학생도 있다. 이런 학생은 중학교 과정에 편성돼 방과후 수업으로 보충하며 진도를 나간단다. 학생들의 나이가 많은 편이라 3~4개월만 공부하면 대부분 초·중등학교 검정고시에 합격한단다. 여명학교 맏형 격인 정우(가명·24)도 4월 중학교 검정고시를 치렀다. 시험을 무사히 통과한 그는 지금 고등학교 2학년이다.

함경북도 청진이 고향인 정우는 12세 이후 학교를 다닌 적이 없다. 공부보다 어머니의 장사 일을 돕는 게 우선이었다. 북한에선 다른 친구들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단다.

‘탈북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아이들
“먹고사는 일이 우선이죠. 학교를 다닌다고 해도 별로 공부하는 게 없어요. 수업시간에 호미 들고 산에 가서 나물 캐거나 농사일 도우러 가는 친구들도 많았어요. 학교 수업을 빼먹어도 졸업장은 주니까요.”

그런 정우가 탈북을 결심한 이유도 순전히 공부가 하고 싶어서였다. 한국에 가면 공짜로 공부한다는 소리를 지인에게 들었다. 식량난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늘 입버릇처럼 “배워야 한다”고 말씀하시던 모습도 생각났다. 결국 지난해 3월 함경북도 회령을 거쳐 홀로 두만강을 건넜다. 막상 한국에 오자 막막하기만 했다. 일단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셔터 수리점에서 조수로 일했다. 또래 친구들 중에 남한 와서 다시 공부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제와 무슨 공부냐’는 분위기였단다. 하지만 고등학교 졸업장은 있어야 기술이라도 배울 것 같아 인터넷 사이트를 뒤졌다. 결국 남한에 온 지 6개월 만에 여명학교에 들어왔다. 여기 학생 가운데 정우는 두 번째로 나이가 많다. 어린 친구들과 생활하는 데 어려움이 없느냐고 물으니 정우는 단호하게 “없다”고 말했다.

“서로 처지를 다 알잖아요. 북에서 공부를 잘 못해서가 아니라 할 수 없어 못 배운 거니까…. 어차피 내 공부 하는 거고 다들 같은 마음으로 여기 있는 건데 힘들게 뭐 있겠어요. 이보다 더한 죽을 고비도 넘겼는데….”

정우처럼 탈북 청소년들은 북한 생활과 탈북 과정에서 극단적으로 열악한 환경에 놓인 경우가 많다. 한국에 와서 가족을 만나도 오래 떨어져 있던 터라 마음을 붙이지 못하는가 하면 재혼가정일 경우엔 더 많은 어려움이 생긴다. 이러한 적응 과정에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생긴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그래서 여명학교 학생들은 일주일에 세 번씩 정신과 상담과 함께 미술 치료를 받는다. 여명학교 학생들의 심리 치료를 돕는 한 전문가는 “학생 65명 중 20%는 정신과 진료를 받아야 하는 수준이며 30%도 가벼운 심리 치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결국 이들 중 절반이 정신적 충격으로 인한 병이 있는 셈이다.

조명숙 교감은 “아이들이 처음엔 정신과 진료를 거부한다”면서 “어렵게 설득해 치료받은 아이들의 얼굴이 나날이 밝아지니까 너도나도 따라 받는다”고 말했다.
“우리들은 상상도 못 할 어려움을 겪은 애들인데 상처가 없는 게 도리어 이상하죠. 이 상처를 먼저 보듬어줘야 공부도 머리에 들어오고, 적응도 하는 건데…. 가끔 애들이 북에 두고 온 가족을 생각하며 목 놓아 울거나, 악몽을 꾸고 완전히 뻗어버리는 걸 보면 가슴이 찢어질 지경이에요. 그런데 정부는 탈북자라고 무조건 빨리 적응해라, 기술 배워서 취직하라는 식으로 말해요. 탈북자이기 전에 같은 사람이잖아요.”

남산 중턱에 위치한 여명학교에는 운동장이 없다. 조 교감은 “공이라도 뻥뻥 차면서 뛰놀면 스트레스도 풀릴 텐데 그런 시설을 제공해주지 못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여명학교는 지난해 말 서울실용음악학교·TLBU글로벌학교와 함께 전국에 세 곳뿐인 학령 인정 대안학교가 됐다. 학생들이 검정고시를 치르지 않아도 됐지만 학교 운영은 오히려 어렵게 됐다.

학력 인정 전까지만 해도 교육과학기술부와 통일부에서 각각 미인가 교육시설 지원금 1억5000만원과 특별교부금 기획사업 부문으로 4300만원을 받았다. 그런데 인가를 받고 난 뒤 교과부 지원금이 뚝 끊겼다. 통일부도 특별교부금 지원을 3000만원대로 줄였다. 학력 인정 학교라도 초·중등 교육법상 대안학교는 교육청 급식비 지원 대상도 아니었다. 교육급여 지원을 받아보려 했지만 보건복지부와 통일부는 서로 떠넘기기 바빴다. 결국 하루 세 끼 급식 지원을 전부 후원에만 의지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민간 지원마저 줄었다. 한 해 수천만원을 지원하던 민간기업 대여섯 곳과 재단이 더는 지원할 수 없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미인가 교육시설이 우선 지원 대상이라는 이유였다. 인가를 받은 후 학교 운영비 지원은 인가 전과 비교해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우리 연간 운영비가 11억원 정도 들어가요. 학생들이 워낙 어렵다 보니 학교 다닐 차비가 없어서 못 오기도 하거든요. 시설비나 선생님 인건비도 필요하고요. 어려운 학생들 장학금도 줘야 하고, 무연고 학생 기숙사도 4곳(불광동·논현동·삼성동·명동 위치)이나 있으니 운영비가 만만치 않게 들어가요.”

학력 인정 후 지원 ‘뚝’ 끊겨
다행히 올해 초 통일부에서 특정대상 지원사업에 선정돼 1억7000만원을 받았지만 전체 운영비의 약 20%에 불과하다. 게다가 학교 건물을 무료로 임대해주던 교회도 올해 사정이 어려워져 지금은 여명학교 측 예산으로 감당한다. 서울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이 건물에 들어간 보증금은 총 5억원, 그마저도 임대료 명목으로 1년에 1억원씩 내야 한다. 학교 운영이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교과부의 한 관계자는 “재작년까진 미인가 학교여서 우리가 일부 지원했지만 지난해 서울시교육청이 설립 인가를 한 뒤에는 모든 행정·재정적 지원이 교육청 소관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 대안학교 담당 공무원은 “원칙적으로 사설 대안학교는 지원 대상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조명숙 교감은 “우리 같은 탈북 청소년 학교는 사설 대안학교로 볼 게 아니라 하나의 국가 사업 차원에서 봐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요즘 다문화 인구가 100만 명을 넘으면서 그 아이들을 보살피는 대책은 많이 이야기하죠. 그런데 다문화 인구는 어느 날 갑자기 200만 명, 300만 명으로 느는 게 아니잖아요. 오히려 탈북자는 지금은 2만 명 정도지만 어느 날 갑자기 1000만 명, 2000만 명이 될 수도 있어요. 꼭 통일이 아니더라도 폭발적으로 늘어난다고 봅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준비해야 하는데 국가적인 대책은커녕 민간에서 하는 일도 도와주지 않으니 답답한 노릇입니다.”

7월 8일 오후 3시가 되자 학생들이 하나둘 건물 지하에 있는 기도실로 모여들었다. 매주 금요일은 동아리 활동이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15평 남짓한 기도실에서 드럼과 기타 동아리 학생들이 함께 연습한다. 12월에 있을 ‘후원의 밤’ 행사 공연 때문이다. 학생 20여 명이 빽빽이 둘러앉았다. 안 그래도 좁은데 기타까지 하나씩 둘러멨으니 빈틈이 없다.
“다들 연습 많이 했니?”
강사 이정경 씨의 물음에 아이들은 그저 배시시 웃기만 한다. 합주가 시작되자 그 웃음의 의미가 드러났다.
“연습을 전혀 안 했구나, 이 에미나이들이! 내가 너희들 여자친구 생기면 데이트할 때 어떻게 걸어야 한다고 했지? 같이 맞춰가면서 걸으랬지? 혼자 가면 여자친구 화낸다. 합주도 마찬가지야. 옆 사람이랑 박자를 맞춰야지 따로 놀면 어떡해.”

장난스레 야단치는 선생님을 향해 아이들도 지지 않고 “집에 가면 악기가 없단 말이에요”를 외쳤다. 잠시 소란스러워진 분위기를 잠재우고 다시 합주가 시작됐다. 이씨의 학습 방법이 효과가 있었는지 이번에는 제법 소리가 어우러진다. 남은 몇 달간 수십 번의 연습을 거치면 연말 즈음엔 훌륭한 합주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 음씩 어렵게 맞춘 이 소리가 학교 담장 너머 울려 퍼지길 바라며 여명학교 아이들은 오늘도 합주 연습에 열을 올린다.

허정연 기자 jypow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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