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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라민 파동 때 바로 사죄하고 국악 공연 열어 고객과 소통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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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9호 24면

Q.고객을 각종 공연에 초대하는 것도 AQ(Artistic Quotient) 경영의 일환인가요? 어떤 효과가 있나요? 구체적인 성과가 있습니까? 국악 공연을 주로 하는데 왜 하필 국악인가요?

경영 구루와의 대화<8> 윤영달 크라운해태 회장④

A.2008년 가을 중국발 멜라민 파동 때의 일입니다. 우리 회사의 한 제품에서도 멜라민이 나왔습니다. 실은 우리가 먼저 발견했어요. 당시만 해도 국내엔 멜라민 검출의 기준치가 없었습니다. 검출 기준이 필요하다 싶어 당국에 그런 의견을 전달했습니다. 그랬더니 당국에서 우리 제품에서도 멜라민이 검출됐다고 발표했습니다.

우리는 멜라민 검출 사실을 시인하고 사죄했습니다. 주가가 급락하는 등 이 사건으로 타격이 컸습니다. 그런 일로 신문이 일주일만 대서특필하면 회사가 망할 수도 있습니다. 그때 ‘이러다 정말 우리 회사가 문을 닫을 수도 있겠구나’하는 위기감이 들었어요. 의례적인 사과광고 같은 거 말고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느 날 국회에서 답변을 하고 나와 회사 관계자들을 소집했습니다. 그리고 전국적으로 최대한 많은 공연장을 빌리라고 했습니다.

이 공연장에서 사과 공연을 했습니다. 공연 전 멜라민 파동을 다룬 신문기사를 화면에 띄워 보여주고 나서 우리 회사 임원이 무대에 올라가 정중하게 사과를 했습니다. 다시는 이런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겠다고 약속했죠. 공연은 우리 회사 락음국악단이 맡았습니다. 2007년 봄 창단된 국내 최초의 민간 국악단이죠. 고객에게 즐거운 우리 음악을 제공하겠다는 취지로 ‘락음’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국립이나 시립 국악단 말고는 규모가 가장 큽니다. 이 사과 공연은 국악이라는 예술 콘텐트를 고객과의 가교로 활용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해설이 있는 소극장용 오페라인 톡페라(Talk Opera)도 무대에 올렸습니다. 어려운 오페라를 일반인이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재미있는 해설을 곁들였습니다. 당시 3주 동안 무려 약 160회의 공연을 했습니다.

그런데 공연을 관람한 일부 고객이 오히려 우리를 격려했습니다. 말하자면 고객과 교감이 이루어진 것이죠. “다른 회사 제품에서도 나왔는데 뭘 그러느냐. 괜찮다”고 했습니다. 당시 마음의 상처를 입은 우리 직원들도 고객의 이런 반응을 접하고서 위로를 받았습니다. 사건이 잊히기를 기다리는 회사도 있는데 역으로 고객을 공연에 초대해 멜라민 파동의 전말을 설명하고 사죄하다 보니 TV 뉴스에까지 소개가 됐습니다. 결과적으로 리스크 관리를 잘한 셈이죠. 나중엔 한국PR협회에서 위기관리부문 대상을 주더군요.

사과 공연은 일종의 역발상이었습니다. 내부적으로는 조직의 기동성을 검증하는 기회가 됐습니다. 우리는 일주일도 채 안 되는 기간에 공연장을 최대한 대관했습니다. 전국적으로 더 광범한 규모로 대관을 했다면 폭발적인 반응이 일어났을지도 모릅니다. 지금 같으면 대관이 안 되면 우리 회사 로봇극장을 투입해 길거리 공연도 할 수 있습니다만. 로봇 인형이 출연하는 이 인형극은 전국을 무대로 이동공연을 합니다.

국악에 눈을 돌린 건 1998년 1월 중순 크라운제과가 부도났을 때입니다. 이자가 싸다고 단기자금을 끌어 쓴 것이 화근이었죠.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 후 골프를 그만두고 등산을 시작했습니다. 중역들의 권유로 직원들과 함께 다녔습니다. 이렇게 해서 이른바 등산 경영을 하게 됐죠. 그런데 어느 날 어디선가 아련하게 피리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그 소리에 시쳇말로 필이 꽂혔습니다. 알고 보니 그게 대금이었습니다. 그래서 대금을 배우게 됐어요. 그때 대금 선생이 김진성 락음국악단 대표입니다.

이분이 저에게 자꾸 국악 음악회를 열어 보자고 했습니다. 그것도 국악계의 대표적인 극장인 국악당에서. 하도 열정적으로 권해 마침내 우리 직원들을 대상으로 국악 공연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러자 영업 하는 직원 하나가 ‘왜 그런 공연에 회사 돈을 쓰느냐’고 반발했습니다.

영업에 활용해 보라고 영업 사원들에게는 공연표를 몇 장씩 나눠줬습니다. 별로 기대도 안 했지만 효과가 없다는 반응을 접했습니다. 그래서 직원들로 객석을 채우기로 했죠. 그런데 공연 시간이 임박하자 여기저기서 노인들이 나타났습니다. 우리는 노인들에게 표를 준 적도, 판 적도 없는데 말이죠. 노인들에게 직접 경위를 물어봤더니 수퍼마켓을 하는 아들이 표를 주더라는 겁니다. 고객 점주가 우리 영업사원에게서 받은 표를 자기 부모에게 갖다 드린 것이죠. 그래서 과장 이하 직원들로 하여금 노인들에게 좌석을 내드리게 했습니다. 그러고도 노인들이 계속 오시는 바람에 부장급도 밖으로 나왔고, 결국 임원들까지 자리를 양보해야 했습니다. 나중엔 보조의자까지 깔았어요.

그런데 이 어르신들이 창을 따라 하시는 거예요. 그때 우리 국악도 매니어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다음 날 영업 사원들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용건은 국악 공연을 지속적으로 하자는 것이었죠. 그래서 “회장이 국악 공연에 왜 회사 돈을 쓰느냐고 한 사람들 맞느냐”고 했습니다. 점주들이 그러더라는 겁니다. “대체 무슨 공연을 어떻게 했기에 부모님이 크라운해태를 잘 봐주라고 합니까.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주면 되나요.”

이 공연을 정기공연으로 업그레이드한 것이 매년 봄 세종문화회관 등에서 열리는 ‘창신제’입니다. 창신이라는 말은 법고창신(法古創新)이라는 옛말에서 따온 것으로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옛것에 토대를 두지만 그것을 변화시키고, 새것을 만들어 가되 근본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이 점에서 창신은 요즘 성행하는 리바이벌이나 리메이크와 다릅니다. 이렇게 시작된 창신제가 지금은 국악 인구의 저변 확대에 이바지하고 있습니다.

왜 국악이냐. 사실 저는 음치에, 춤을 따로 배운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 국악을 듣다 보면 어깨춤이 절로 나와요. 한국인이면 누구나 국악을 조금 접해 보면 직접 느낄 수 있어요. 그 가락이 안겨주는 즐거움을 몸으로 알게 됩니다. 서양 음악에서 날카로운 아름다움을 맛볼 수 있다면 국악의 아름다움은 뭉글뭉글합니다. 자진모리 같은 장단은 사실 재즈보다도 빠릅니다. 빨라졌다가는 꼭 느려지고 다시 빨라지죠. 이런 형식미를 뭉글뭉글하다고 표현해 본 겁니다. 우리 민족의 DNA에는 국악을 즐길 줄 아는 형질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피에는 국악의 가락이 흐릅니다. 우리가 시도하는 국악 공연이 고객에게 먹히는 이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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