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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청 “우면산 산사태 위험” 하루 전 경고 했는데 … 서초구청 무시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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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우면산 산사태로 파손된 서울 방배동 래미안 아파트에서 29일 복구작업이 펼쳐지고 있다. [김도훈 기자]

서울 서초구(구청장 진익철)가 산사태 예보를 발령하라는 산림청의 경고를 받고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산림청은 지난 25일부터 폭우가 쏟아지자 산사태가 우려되는 시·도·구청에 실시간으로 산사태 예보를 권고하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SMS)를 보냈다. SMS 발송을 담당하는 산림청 치산복원과 관계자는 “연속 강우량, 일(日) 강우량, 시(時) 강우량을 모두 따져 발송했다”며 “‘귀 관할 구역은 산사태 위험지구 발령 대상’이라는 내용으로 통보했다”고 말했다. 서초구에는 사고 발생 15시간 전인 26일 오후 5시 산사태 주의보 발령을 요청하는 SMS가 처음 발송됐다. 이 메시지는 이어 10차례나 보내졌고 27일 오전 8시엔 산사태 예보를 발령하라는 내용의 산림청장 명의의 공문도 발송됐다. 그러나 서초구는 산림청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같은 날 중랑·금천 등 다른 구청들이 산사태주의보나 경보를 발령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에 대해 서초구 관계자는 “산림청 문자메시지를 받아본 기억이 없다”며 “폭우 때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휴대전화 배터리까지 떨어져 문자함을 열어보지 않아 잘 기억이 안 난다”고 말했다. 하지만 산림청에 확인한 결과 ‘산사태 위험지 관리시스템’에 의해 서초구엔 이 담당자를 포함해 모두 4명에게 문자메시지가 전달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우면산 산사태로 피해를 본 주민들과 정부·지방자치단체 간에 피해 보상을 둘러싸고 치열한 법정 다툼이 전개될 가능성이 커졌다. 지난 27일 산사태로 3명이 목숨을 잃고 밀려든 토사로 아파트 4개 층이 피해를 본 서울 방배동 래미안아트힐 아파트 103동 주민들이 받을 수 있는 지원금액은 융자까지 포함해 최대 3000만~4000만원에 불과하다. 현행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 따라 정부는 사망자에 대해선 세대주의 경우 1000만원, 세대원은 500만원의 지원금을 지급한다. 장애가 생겼을 때는 세대주 500만원, 세대원 250만원의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재산 피해에 대한 지원금도 많지 않다. 주택이 완파된 것으로 인정되면 최대 3000만원을 지원받지만 이중 무상 지원되는 돈은 900만원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저리로 금융지원을 받는 것이다. 반파된 경우 무상 지원금 450만원에 금융지원을 더해 1500만원까지 지원된다. 침수 피해 지원금은 세대당 100만원에 불과하다. 그러나 해당 아파트는 가구당 152㎡(46평형)로 실거래가는 11억원 안팎에 달한다. 주민들 사이에서 “엄청난 피해를 입었는데 몇백만원만 지원받고 나머지는 융자받으라는 게 말이 되느냐”는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더 큰 피해를 본 서울 방배동 전원마을도 마찬가지다. 신축 건물을 제외하고 평(坪)당 1500만원 안팎에 거래되는 이 마을 주택들은 상당수가 주거 기능을 잃었다. 수리가 불가능한 주택은 신축에만 수억원 이상이 소요되지만 완파 판정을 받더라도 지원금은 아파트와 마찬가지로 금융지원을 포함해 3000만원에 불과하다. 물론 민간 보험가입 여부에 따라 보상받을 수 있는 길은 있다. 래미안 아파트의 경우 공동주택보험에 가입해 있고 풍수재담보특약도 들어 있어 보험사정 결과에 따라 피해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 전원마을의 경우 개별적으로 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는 한 배상받을 길이 없다.

 주민들과 정부·지방자치단체 사이의 소송 중 가장 큰 쟁점은 국가와 지자체 등의 과실이 얼마나 큰지 여부다. 서초구청 측이 “이번 산사태는 자연재해”라고 밝힌 데 대해 주민들은 “구청이 지난해 비 피해 복구 공사에서 늑장을 피워 사고가 난 것으로 인재(人災)”라고 맞서고 있다. 박홍기 변호사는 “국가와 지자체 등의 구조물 관리 과정에서 과실이 있었는지 여부와 자연재해가 얼마나 이례적이었는지 등을 따져야 한다”고 말했다. 대법원 서동칠 홍보심의관은 “최근 대법원 판례는 공무원이 법령에 정해진 의무를 위반한 경우 외에도 국민이 중대한 위험상태에 있을 때 얼마나 적극적으로 위험 배제에 나섰는지를 따져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하는 추세”라고 전했다.

글=이동현·채윤경 기자
사진=김도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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