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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8명이 질펀하게 풀어낸 성에 관한 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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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남성 작가 여덟 명이 성을 소재로 한 단편집 『남의 속도 모르면서』를 냈다. ‘개그 콘서트’의 인기 코너 ‘발레리노’처럼 색동 우산으로 허리를 가린 야릇한 포즈를 취했다. 왼쪽부터 권정현·조헌용·김도언·김태용·박상·은승완씨. 김종광씨와 김종은씨는 개인 사정으로 불참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인기 개그 프로그램 ‘개그 콘서트’의 화제 코너 ‘발레리노’는 말하자면 노출증과 관음증이 교차하는 현장이다. 연기자의 노출증과 시청자의 관음증 말이다. 타인의 은밀한 곳을 엿보는 쾌감은 물론 시청자의 몫이다. 타이트한 옷을 입고 나와 주요 부위를 아슬아슬하게 가릴 때 남성 연기자들은 일종의 노출 쾌감을 느끼는 것은 아닐까.

 이런 형식을 소설로 가져오면 어떨까. 독자와 평단의 눈치를 보며 찔끔찔끔 성(性) 얘기를 하는 게 아니라 과감하고 노골적으로 정면도전하는 것 말이다.

 그런 소설집이 나왔다. 30대 후반부터 40대 중반까지 나름 입지를 구축한 젊은 남성소설가 여덟 명이 ‘성’이라는 하나의 주제를 다룬 단편을 모은 『남의 속도 모르면서』(문학사상)다. 속 시원히 까발기고 싶은 욕망, 금기 를 넘어보고 싶은 욕구를 쏟아낸 것이다. 당신이 과연 우리 속을 어떻게 알겠느냐면서.

 전남 고흥 출신 1973년생 소설가 조헌용씨는 새만금방조제 부근에 사는 노부부의 서글프면서도 짠한 성욕을 구수한 남도 사투리 섞어가며 묵직하게 그린다. 작품명 ‘꼴랑’이다. 남성 기능을 상실했지만 욕구는 강한 늘그막 남편을 위해 아내는 꼴랑 몸뚱아리가 대수냐며 이른바 오럴섹스를 해준다.

 70년 충북 청원 출신 소설가 권정현씨는 “소설 ‘풀코스’를 쓰기 위해 실제로 유흥업계에 종사하는 친구의 도움을 받아 속칭 ‘키스방’을 취재했다”고 했다.

 묘사 수위가 가장 높은 작품은 72년 부산 출신 소설가 박상씨의 ‘모르겠고’. 일본의 유명 성인영화 여배우를 그리스 아테네에서 만난 한국인 남성이 산토리니 섬으로 장소를 옮겨 환상적인 섹스를 나누는 이야기다. 박씨는 “소설의 실감을 높이기 위해 ‘야동’을 몰래 감상하다 여자친구에게 들켜 봉변을 당했다”고 했다.

 72년 충남 금산 출신의 김도언씨는 남성 애인과 여성 애인 사이에서 갈등하다 결국 무생물인 의자를 사랑하게 된 도착적인 화가를 주인공으로 한 ‘의자야 넌 어디를 만져주면 좋으니’를, 68년 전북 정읍 출신 은승완씨는 성기 없이 배설기관만 있는 여성을 사랑하다 미쳐버린 남성을 그린 ‘배롱나무 아래에서’를 썼다.

 가장 모던한 작품은 74년 서울 내기 김태용씨의 ‘육체 혹은 다가오는 것은 수학인가’다. “마녀의 숲. 숲. 습. 씁. 쯥. 쭈압. 손바닥에 침을 뱉어 냄새를 맡으면 그랬다”(150쪽) 같은 시적인 문체로 섹스와 글쓰기 사이의 공통점을 탐색한다. 김씨는 “반복적이고 무엇가를 벗기는 게(글쓰기의 경우 문장을) 공통점”이라고 했다.

이밖에 74년 서울생 김종은씨는 ‘흡혈귀’를, 71년 충남 보령 출신 김종광씨는 ‘섹스 낙서장-낙서나라 탐방기 4’를 보탰다.

 소설집을 기획한 출판사의 신승철 기획위원은 “작가 섭외에 어려움이 없었다”고 했다. “대부분 써보고 싶은 생각을 품고 있었다”는 것이다. 은승완씨는 “성은 문학의 영원한 주제”라는 입장이다. 조헌용씨는 “섹스는 사람이 죽기 전까지 끊임이 없는 테마인데 우리는 너무 감춰온 거 아니냐”고 말했다.

  작품들은 문학적 완성도 보다는 콩트 성격이 강하다. 그렇더라도 우리 안의 금기를 볼아보게 하는 효과는 있다. 출판사는 여성작가들의 성 소설집도 조만간 낼 계획이다.

글=신준봉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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