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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년 전 나를 버리고 재혼한 어머니 … 이제 와 부양하라니 … 정부가 상처 들쑤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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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경기도에 사는 이철수(가명)씨가 47년 전 헤어진 어머니(81)가 자신의 소득·재산 때문에 기초수급자 대상에서 탈락할 것이라는 통보를 받고 착잡해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경기도에 사는 이철수(59·가명) 목사는 지난달 초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 어릴 때 자신을 떠난 어머니(81)가 기초수급자에서 탈락할 예정이라는 통보였다. 자신의 소득과 재산이 기준을 초과해 어머니를 더 이상 정부에서 보호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 목사는 47년 전 초등학교 6학년 시절의 기억을 더듬었다. 이혼이 드문 시절에 어머니는 이혼 후 재혼했다.

  “큰아들로서 상처가 깊었습니다. 사춘기 때도 무척 괴로웠어요.”

 그는 군 제대 후 신학교에 들어갔다. 어렵게 연락처를 수소문해 어머니를 만났다. 그걸로 용서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만나지 않았다. 어머니에게 몇 통의 전화를 짧게 받았을 뿐이다.

 그러던 차에 지난달 충남의 한 시골 읍사무소에서 전화를 받았다. 그제야 어머니의 새 남편이 2007년 사망했고, 그 집 자녀들이 부양을 거부해 기초수급자가 된 사실을 알았다. 주민센터는 어머니의 호적상 아들(이 목사)을 새로 찾아내 부양의무를 부과하려는 것이다. 현행 규정은 1촌 관계(부모-자녀)이면 무조건 부양의무를 지운다. 이혼한 부모도 예외가 없다.

 이 목사는 “신앙인이 아닌가요(어머니를 부양해야 한다는 뜻)”라고 공무원이 묻자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그리 말하지 마세요. 내 입장이라면 쉽게 (어머니를) 도울 수 있겠어요.”

 그는 고뇌를 거듭했지만 끝내 부양하겠다고 말하지 않았다. “정부 조사는 이해가 됩니다. 보호받지 않아야 할 사람을 걸러야 하니까요. 하지만 신앙인이고 평생을 용서하려 노력한 저도 이렇게 힘든데, 많은 사람이 무척 괴로울 것입니다. 상처를 들쑤신 거예요.”

글=박유미 기자, 윤지원 인턴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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