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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그리워 눈물 날 땐 함께 행복했던 사진 보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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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변혜정씨(왼쪽)와 아들 송재원(가운데)·승원 군. [사진=영진미디어 제공]

“아프고 난 후 해주고 싶은, 다른 이들에게 너무 쉽고 엄마에겐 너무 어려운 일들이 있단다. 음료수 병 뚜껑 열어주기, 손·발톱 깎아주기, 학교 급식 지도해주기… 다 해줄 수 없어 너무나 미안하구나.”

 두 아들을 둔 작가 변혜정(40)씨는 중증의 근무력증·천식, 양성뇌종양과 8년째 투병 중이다. 촉망받는 방송작가로 왕성하게 활동하며 1997년에는 시집도 낸 그녀에게 병마가 닥친 건 2003년. 전신 근육이 서서히 힘을 잃어가는 희귀병인 근무력증 때문에 아이들을 보살펴주지 못하는 엄마로서의 아픔은 그대로 눈물이 됐다. 변씨는 이런 안타까운 마음을 매일매일 병상에서 편지에 담았다. 그리고 50여 편을 추려 25일 수필집 『소원;해주고 싶은 것들』(영진미디어)을 펴냈다.

 변씨는 “언제가 될지 모를 ‘만일의 순간’을 대비해 엄마의 냄새가 묻어나는 글을 썼다”며 “이별을 준비하고 있는 엄마가 아들 재원·승원이를 위해 마련한 선물인 셈”이라고 말했다. 변씨는 마흔두 번째 편지 ‘엄마가 보고 싶을 때’에서 “문득 지독히 엄마가 그리워 눈물나는 날이 있을 거야. 부탁하건대 그런 날이 오면 울지말고 엄마와 웃고 찍은 사진들, 너희와 함께 한 행복한 모습의 사진을 한 번씩 봐주었으면 해”라고 당부했다. 또 “아기 때 뱃속에서, 그리고 엄마의 배 위에서 잠들 때 그랬던 것처럼 엄마는 항상 네 가슴 속에, 네 삶 속에 함께 하고 있을 거야”라고 약속했다.

 두 아들에게 “서점에서 책을 사서 읽는 것도 좋지만 매일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가장 좋은 글은 신문”이라며 “하루의 시작을 무엇으로 해야 할지 모른다면 신문을 매일 읽으렴”이라고 권한 대목도 눈길을 끈다.

 변씨는 자신의 병을 “한 달에 한 번씩 교통사고를 당하는 것과 같은 아픔을 겪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건강하게 지내다 교통사고로 다리를 못 쓰게 되고 얼마 뒤 또 사고로 팔을 잃고, 다시 사고가 이어져 호흡이 힘들어지고 온 몸이 한 곳씩 내 것이 아니게 되는 아픔이란 얘기다.

 통일부 국장을 지낸 변경섭씨의 딸인 그녀는 “엄마! 아빠! 하고 부르는 것만으로도 서글퍼지고 죄송해진다”며 어릴 적 유난히 잔병치레가 많았고 난치병을 앓게된 자신 때문에 마음고생을 하신 부모님께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그렇지만 변씨는 “글을 쓸 수 있을 정도의 힘이 손가락에 남아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하루 하루를 살고 있다”고 말했다.

 개그우먼 조혜련씨는 추천 글에서 “변혜정은 내가 알고 있는 사람 중 가장 강한 사람”이라며 “그녀가 자신에게 닥친 모든 고통을 뛰어넘으며 써낸 이 책이 모든 사람에게 삶의 자극제가 되어주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변씨는 지난 5월 SBS 프로그램 스타킹의 ‘나는 엄마다’ 코너에 출연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아이들을 위해 노래를 불러 눈물바다를 만들기도 했다. TV 출연과 책 출간은 모두 삶의 희망을 잃지 않고 당당하고 열심히 사는 엄마의 모습을 두 아들에게 남겨주려는 몸부림이었다고 한다. 변씨는 “살려달라는 것보다 더 간절한 소원은 엄마로서 머물고 싶은 마음”이라면서 “보이지 않아도 느껴지는 바람처럼 항상 아이들 곁에 있고 싶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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