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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북한 문창극 칼럼

가면극을 걷어치워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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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문창극
대기자

가면극을 보는 것 같다. 진짜 얼굴을 감춘 배우들은 가면을 쓰고 무대에 나타난다. 다시 벌어지고 있는 북핵협상이 그렇다. 10년 가까이 6자회담을 하면서 지난 세월 북한에 시간만 주었다. 북한은 그 사이 플루토늄은 물론 우라늄 방식의 핵원료까지 만들었다. 이런 식은 안 된다며 이 정부 들어 북한과의 교류를 끊었다. 경제적 압박에 못 이겨 핵을 포기할 것이라는 가정에서였다. 그러나 유엔제재도 소용없었다. 북한은 더 도발적으로 나왔다.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이다. 답답해진 것은 미국이다. 북한을 이렇게 두는 한 핵물질 생산은 더 커져만 간다. 그러니 다시 협상을 하려 한다. 우리는 무언가? 얻어터져 부은 눈덩이로 다시 테이블에 나가는 꼴이다. 무엇이 그리 좋은지 외교장관은 활짝 웃는 낯으로 북한측을 만났다. 미국은 명분이 생겼다. 남북 간에 만났으니 이제는 미국이 북한을 만나겠다고 한다. 6자회담 복귀를 재촉하고 있다.

 북핵 해결의 핵심은 무엇인가? 중국이다. 중국이 진정으로 협조를 한다면 북핵은 해결될 수 있다. 지난주 한·중 간 반관반민 성격의 학술모임에 참석했다. 양측이 속내를 털어놓고 말해 보자는 소위 ‘전략대화’ 모임이었다. 거기에서 우리 측은 “6자회담 동안 북한은 핵과 미사일을 다 개발했다. 중국이 단 3개월만 원유 공급을 중단해도 북핵 문제는 단번에 풀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중국 측은 “북한 핵은 안보위협에서 나온 것이므로 미국에 책임이 있고, 이를 풀자면 6자회담밖에는 방법이 없다”고 했다. 이러니 미·중 간에 협력 없이는 북한 핵이 해결될 수 없다. 점점 힘이 세지는 중국은 이 지역에서 팽창정책으로 나가고 있다. 남중국해에서도, 서해에서도 그것이 증명되고 있다. 미·중의 대결은 더 거세지고 있다. 중국은 미국을 상대로 오히려 북한 카드를 사용할 것이다. 그러니 다시 6자회담을 열어도 지지부진할 것이 뻔하다. 한국과 미국 간에도 목표가 달라지고 있다. 우리는 ‘핵무기를 가진 북한은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인 데 반해 미국은 ‘앞으로 더 이상 핵물질을 만들지 말라’는 것이다. 이미 만든 것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태도다. 북핵은 우리의 숙명적인 짐이 되고 있다. 이러니 가면극이다. 해결의 핵심에는 접근 못하고 서로 가면을 쓰고 무대만 어슬렁거린다.

 그날, 중국 인사들은 한결같이 한·미 동맹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드러냈다. 천안함 사건 후 미 항공모함을 동원한 서해훈련은 중국의 이익을 해치는 행동이었다고 주장했다. 북한의 천안함·연평도 도발에 대해 중국은 왜 입을 닫고 있느냐는 우리 측 질문에는 “우리는 한반도의 평화를 바란다”는 답변뿐이었다. 이제 우리 영해에서 훈련도 할 수 없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통일도 요원하다. 미국과 중국이 대결구도로 간다면 중국은 결코 북한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이 용인하는 통일은 미국 없는 통일이다. 그럴 경우 한반도는 어떻게 될까? 지난 몇천 년의 우리 역사는 그것이 ‘속국의 길’로 가는 것임을 가르쳤다. 중국이 한·미 동맹을 비난할수록 우리는 이를 붙들고 가야 한다. 그것이 중국으로서는 가장 아픈 것이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가장 강한 것이 되는 것이다.

  이번 ‘대화’ 가운데 나의 마음을 찌르는 말이 있었다. 우리 측이 중국의 역할을 계속 촉구하자 “너희 민족끼리의 문제에 왜 자꾸 중국을 끌어들이느냐”고 역정을 냈다. 우리 측은 “중국이 유엔 안보리 상임국이고 G2의 국가이니 세계 평화유지에 책임이 있기 때문”이라고 답변했다. 그러나 내심은 부끄러웠다. ‘이것이 제3자가 우리를 보는 시각이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며칠 전 북한 어린아이들의 턱이 삼각형처럼 뾰족해진 사진이 보도됐다. 이런 사진을 보면서 외국인들은 한국을 어떻게 볼 것인가. 세계 10위권이니, 기적을 일으킨 나라니 칭찬을 받지만 이런 점이 부끄러운 것이다.

 상황을 쫓아가면 존재조차 잃어버린다. 원칙을 지키면 명예라도 남는다. 사과를 받기로 했으면 사과를 받는 것이다. 얼버무리지 말라. 남북이 마주 앉는 것에 조급해하지 말라. 다음 정부에 넘겨도 늦지 않다. 그리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하는 것이다. 굶주리는 북한 주민을 먹이는 일을 돕는 것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중국의 팽창을 뻔히 보면서 친북세력 몇십 명이 시위한다고 제주도 강정의 해군기지 공사를 못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역사적인 일은 힘의 계산으로, 이해득실을 따진다고 이루어지지 않는다. 역사적인 사건은 옳고 그름에서 판가름이 났다. 동구나 소련의 붕괴처럼 말이다. 통일 역시 그렇다. 자유와 인권과 민주주의가 옳은 방향이기 때문에 통일은 결국 우리에게로 온다. 미래 어느 시점에 그 통일은 이루어진다. 아직 그 시간이 오지 않았을 뿐이다. 그때를 기다릴 줄 아는 것도 용기다.

문창극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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