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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30년] 팬과 함께 웃고 울고…600만 관중 가슴에 홈런 날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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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이 된 한국 프로야구가 사상 첫 관중 600만 명 시대를 앞두고 있다. 2009, 2010년 두 해 연속 최다 관중 기록을 갈아치운 프로야구는 올해 307경기 만에 400만 관중을 돌파했다. 사진은 5월 14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롯데-KIA전 모습. [중앙포토]

1982년 3월 27일 서울 동대문야구장. 이종도(MBC·이하 당시 소속)의 연장 끝내기 만루홈런으로 한국프로야구가 화려하고 웅장한 막을 올렸다. 2011년은 그로부터 30년째 되는 해다. 강산이 세 번 변하는 사이 프로야구는 성공과 위기를 오르내리고 수많은 팬들에게 기쁨과 탄식을 안겨주며 국내 최고 인기 스포츠로 자리잡았다. 서른 번째 시즌을 치르고 있는 프로야구의 발자취를 간략하게 되돌아본다.

신화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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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동기 1982~85

6개 구단으로 출발한 프로야구는 지역 연고제를 도입해 팬들의 관심을 끌어모았다. 일본과 미국에서 활약했던 백인천(MBC)과 박철순(OB) 등 스타 플레이어들이 원년부터 각각 4할 타율과 22연승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하며 인기에 불을 지폈다. 82년 OB가 초대 챔피언에 오른 이래 해태-롯데-삼성이 차례로 우승컵을 거머쥔 것도 전국적인 저변 확대에 기여했다.

성장기 1986~95

프로야구는 이제 어엿한 국민 스포츠로 자리를 잡았다. 86년 제7구단 빙그레가 창단한 데 이어 91년에는 쌍방울이 1군 리그에 참여해 8개 구단 체제가 완성됐다. 정규시즌 관중수는 95년 540만6374명(504경기)을 기록하며 500만 관중 시대를 열었다.

그라운드에서는 ‘해태 천하’가 활짝 열렸다. 김응용 감독이 이끈 해태는 86~89년 한국시리즈 4연패에 이어 91, 93년에도 챔피언에 오르는 등 절대 강자로 군림했다.

침체기 1996~2004

절정에 달했던 프로야구 인기는 뜻하지 않은 하강 곡선을 그리게 된다. 시즌 관중수는 96년 449만 명으로 줄어들기 시작해 98년 263만 명으로 급감했다. IMF 사태와 쌍방울의 재정난, 스타 선수들의 해외 진출 등 악재가 잇따른 결과였다.

위기 속에서도 그라운드의 열기는 뜨거웠다. 이승엽(삼성)은 99년 54개, 2003년에는 아시아 신기록인 56개의 홈런을 때려내며 ‘국민 타자’라는 애칭을 얻었다. 96년 태평양을 인수한 현대는 98, 2000, 2003, 2004년 네 차례나 한국시리즈를 제패했다. 쌍방울의 해체 뒤 2000년 SK가 창단해 8개 구단 체제가 유지됐다.

중흥기 2005~2011

프로야구 흥행은 2005년 관중수 300만 명을 회복하며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이후 2009년과 2010년(592만8626명) 잇따라 역대 한 시즌 최다 관중 신기록을 세우며 화려한 중흥기를 맞았다.

각종 국제대회에서 야구 대표팀이 좋은 성적을 거둔 것이 인기 회복의 원동력이었다. 대표팀은 2006년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4강을 시작으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2009년 제2회 WBC 준우승,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 등의 성과를 올리며 한국 야구의 위상을 세계에 떨쳤다. 올해는 제9구단 엔씨소프트의 창단이 확정되면서 프로야구가 또 한번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사상 첫 한 시즌 600만 관중 시대도 눈앞에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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