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J 스페셜 - 목요문화산책] 키츠의 그녀, 아름답지만 무자비한 환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8면

그림 ① 무자비한 미녀(1926), 프랭크 캐도건 카우퍼(1877~1958) 작, 캔버스에 유채, 102x97㎝, 개인 소장.


여름방학이 시작되면서 인터넷게임 중독 예방 교실이 속속 열리고 있다. 게임 중독의 배경에는 현실도피 욕망이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게임 속에서 강력한 전사나 마법사로 활약하다가 상대적으로 초라한 현실로 돌아오면 게임 속으로 되돌아가고 싶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게임에 침잠하면 할수록 현실상황은 더 우울해져 악순환이 계속된다. 중독자에게 있어서 게임은 존 키츠(John Keats, 1795~1821)의 시(詩)에 나오는 ‘무자비한 미녀’를 닮은 존재다. 이 아름다운 요정(妖精)과 사랑에 빠진 인간은 현실에서는 맛볼 수 없는 황홀한 행복을 잠시 누리게 되지만, 그만큼 현실과 심하게 괴리된다. 그리고 요정이 사라진 후에는 현실로 돌아오지 못하고 방황하며 시들어간다.

한 편의 잔혹동화 같은 ‘무자비한 미녀 (La Belle Dame Sans Merci)’(1819)는 총 12연 48행의 시다. 영국 낭만주의 시인 키츠의 다른 대표작에 비해 길이가 꽤 짧고, 또 민요풍으로 돼 있어 단숨에 읽힌다. 그러나 시를 다 읽고 나면 묘한 여운이 오래 남아서 다시 의미심장한 단어 하나 하나와 행간을 더듬게 되는 작품이다.

 그러니 문학적인 소재를 애호한 영국 라파엘전파(Pre-Raphaelite) 화가들이 이 시를 특히 많이 그린 것도 당연하겠다. ‘최후의 라파엘전파’라 불리는 프랭크 C 카우퍼의 작품(그림 ①도 그중 하나다. 이 그림에서 요정은 진홍 양귀비가 대담하게 그려진 옷을 입고 길게 물결치는 금빛 머리를 매만지며 화면을 압도한다. ‘아편꽃’이라고도 불리는, 매혹적이고 위험한 꽃 양귀비가 그녀 둘레에도 가득 피어 있다. 저녁놀을 받아 요정의 옷과 꽃은 더욱 붉게 타오르고 그녀 발치에 누워 있는 기사의 갑옷에는 금빛 광택이 흐른다. 죽은 듯이 잠든 기사의 얼굴 위로는 거미줄이 처져 있다! 대체 얼마나 오래 잠들어 있었기에?

 키츠의 시 ‘무자비한 미녀’는 이 기사가 마침내 잠에서 깨어 방황하고 있을 때 시인이 기사에게 말을 건네는 것으로 시작한다.

오 무엇이 그대를 괴롭히오, 갑옷의 기사여,

 홀로 창백하게 헤매고 있으니?

 사초(莎草)는 호숫가에서 시들고

 새들도 노래하지 않는데.

시인의 질문이 두 연 더 계속된 후에야 기사는 입을 연다. 잠에서 깬 후에도 한동안 넋이 나가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초원에서 한 아가씨를 만났소,

 아름다움으로 충만한 - 요정의 아이를.

 그녀의 머리칼은 길고, 발은 가볍고,

 그녀의 눈은 야성적이었소.

(중략)

나는 그녀를 천천히 걷는 내 말에 태웠고,

 온종일 다른 것은 보질 못했소,

 비스듬히 그녀가 몸을 기울여,

 요정의 노래를 불렀기 때문에.

 그녀는 나에게 달콤한 풀뿌리와

 야생꿀과 감로(甘露)를 찾아주며,

 이상한 언어로 틀림없이 말했소 -

 “나는 당신을 정말 사랑해요.”

카우퍼보다 한 세대 앞선 영국 화가 프랭크 딕시도 이 시를 묘사했다(그림 ②). 이 그림에서 기사는 “다른 것은 보지 못했다”는 그의 말처럼 요정에게 눈길을 고정하고 넋을 잃고 있다. 요정은 아름다운 얼굴뿐만 아니라 감미롭고 마술적인 노래로 기사를 완전히 사로잡는다. 그 다음 연은 이렇다.

그녀는 나를 요정 동굴로 데리고 가서,

 거기서 울며 비탄에 찬 한숨을 쉬었소,

 거기서 나는 그녀의 야성적이고 야성적인 눈을 감겨줬소,

 네 번의 입맞춤으로.

그 뒤 기사는 요정의 품에서 잠이 들고, 곧 무서운 꿈을 꾼다. 또 다른 라파엘전파 화가 헨리 메이널 림의 작품(그림 ③)에 묘사된 대로 푸르스름할 정도로 창백한 왕자들과 기사들의 환영이 나타난다. 요정의 희생자인 그들은 주인공 기사 또한 희생자가 되리라고 예언한다. “무자비한 미녀가 그대를 노예로 삼았구나!”라고.

나는 보았소 그들의 굶주린 입술이 어스름 속에서,

 섬뜩한 경고로 크게 벌어진 것을,

 그리고 나는 잠에서 깨어 내가 여기,

 이 싸늘한 산허리에 있음을 알았소.

 이것이 내가 여기 머물며

 홀로 창백하게 헤매는 이유라오.

 비록 사초는 호숫가에서 시들고

 새들도 노래하지 않지만.

그림 ② 무자비한 미녀(1902부분), 프랭크 딕시(1853~1928) 작, 캔버스에 유채, 137x188㎝ 브리스틀 시립미술관, 영국 브리스틀

그림 ③ 무자비한 미녀(1901), 헨리 메이널 림(1859~1920) 작, 종이에 수채, 24x57㎝, 개인 소장.

이렇게 시는 맨 마지막 연이 처음 연과 대구를 이루며 갑작스럽게 끝이 난다. 하지만 시가 끝난 뒤에도 주인공 기사가 왜 폐인처럼 되어 방황하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을 한 요괴가 남자를 홀려 죽이는 전설이 많지만, 이 기사는 그런 남자들처럼 잡아먹히지도 피를 빨리지도 않았다. 단지 아늑한 동굴 속 요정의 품에서 잠들었다가 싸늘한 산허리에서 홀로 깨어났을 뿐이다.

 미국의 문학평론가 해럴드 블룸은 요정의 예전 희생자들이 “굶주린 입술”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 즉 달콤하고 신비로운 요정의 음식을 맛본 뒤에는 도저히 평범한 인간의 음식을 먹을 수 없기에 죽어 간다는 것이다. 한국의 이정호 평론가는 요정이 “아름다움으로 충만한” 이상세계의 환영이기 때문에 그에 깊이 빠진 인간은 환영이 사라진 후에도 끝없이 그리워하며 현실로 제대로 복귀하지 못한다고 했다.

 어쩌면 요정도 이것을 경고했는데 기사가 못 알아들은 것인지 모른다. 동굴에서 요정은 눈물을 흘리며 한숨을 쉬지 않았던가. 기사는 요정이 “이상한 언어로” 말했다고 했다. 즉 그녀는 인간의 언어가 아니라 요정어(語)를 쓰고 있었다. 그렇다면 기사는 요정이 “당신을 정말 사랑해요”라고 했는지 어떻게 알까? 기사는 처음부터 착각에 빠졌던 것인지도 모른다. 요정의 의도는 끝내 모호하게 남는다. 그녀가 환상 자체이기 때문일 것이다. 환상은 아름답지만 무자비하다. 우리를 매혹하지만 오래 함께 있어 주지 않고 아무 것도 책임져 주지 않는다.

 어떤 평론가들은 이 기사가 현실과 예술의 환상 사이에서 방황하는 키츠 자신이라고 본다. 이런 예술가의 방황과 앞서 말한 게임 중독은 완전히 동떨어진 이야기로 보이지만, 불만족스러운 현실에서 도피하고 환상을 추구하고 싶은 욕구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하기도 한다. 그 때문에 게임중독 문제는 그저 한심하게 볼 것이 아니라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는 것인지 모른다.

문소영 기자

26세 요절 시인 키츠, 영원히 세상 사로잡다

키츠(1795~1821·그림)의 생몰년을 보다가 그 생애가 너무 짧은 것에 놀란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이토록 짧은 기간에, 또 바이런이나 셸리 같은 귀족 시인들에 비해 빈약한 집안 배경과 교육 기회에도 불구하고 키츠는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영국의 대표적인 낭만주의 시인으로 남았다. 그의 타고난 천재성과 도서관에서 엄청난 양의 책을 섭렵하는 지독한 노력 때문일 것이다. 1817년에 첫 시집을 출간했고 1819년에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예감했는지 수많은 수작을 쏟아냈다. ‘그리스 항아리에 부치는 송가’ ‘나이팅게일에게 부치는 송가’ 등의 대표작이 이때 나왔다. 곧 폐결핵으로 로마로 요양을 떠났고 거기서 세상을 떠났다. 만 26세가 되기도 전이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