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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에 온 가족 파산 … 내 인생도 멈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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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아무런 진전 없이 재판이 계속 늘어지기만 하니…. 지금껏 내가 쌓아온 커리어(경력)도, 내 인생도 함께 멈춰 섰어요.”

 19일 오전(현지시간) 워싱턴DC 법원을 나서며 스티븐 김(44·한국명 김진우·사진)은 허탈하게 말했다. 미국 내 손꼽히는 북핵 문제 전문가인 그는 정보 누설과 관련한 간첩죄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19일 공판은 지난해 8월 기소 이후 다섯 번째였다. 그러나 유·무죄를 다투는 본안 심리에는 착수조차 하지 못했다. 검찰 측이 “이 사건 자료에 공개해선 안 될 기밀 정보가 포함돼 있어 중앙정보국(CIA) 등 16개 미 정보기관의 사전 허가를 받는 데 시간이 걸린다”며 아직까지 법정에 자료 제출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김씨 측 애비 로웰 변호사는 재판 뒤 “검찰이 판사가 이 소송을 판단하는 데 필요한 자료조차 제공하기를 거부하고 있다”며 “이 때문에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고 말했다.

 - 지금 상태는.

 “재판이 끝날 때까지 워싱턴DC에서 25마일 밖으로 나갈 수 없어 여행도 할 수 없고, 가까운 사람들과의 모임에도 참석할 수가 없다. 정신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 경제적인 상황은 어떤가.

 “(재판 비용 마련을 위해) 한국에 계신 부모님이 집을 처분하는 등 온 가족이 사실상 파산했다. 지인들의 도움으로 근근이 버티고 있다.”

 (※이번 소송의 변호사 비용은 종결될 때까지 약 150만 달러(약 16억원)가 소요될 것으로 전해졌다. 스티븐 김을 후원하는 지인들은 지난해 연말 인터넷 웹사이트(www.stephenkim.org)를 개설해 기소의 부당성과 소송 비용을 모금하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 재판 전망은.

 “재판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조심스럽다. 언급할 수 없다.”

 (※그러나 최근 들어 김씨에 대한 간첩죄 적용이 오바마 행정부의 무리한 법 적용이라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미 연방법원은 지난 15일 국가안보국(NSA) 고위 간부 출신 토머스 드레이크에 대한 재판에서 허가범위를 넘어선 정부 컴퓨터 사용 혐의를 적용해 보호관찰 1년의 가벼운 형량을 선고했다. 당초 검찰은 드레이크에 대해 기밀누설 혐의로 간첩죄를 적용했다가 재판 과정에서 철회했다. 재판부는 이를 두고 “각종 수사로 드레이크를 수년 동안 괴롭혔으며, 적절하지 않은 행위였다”고 검찰을 비판했다. 김씨 사례는 드레이크의 경우보다도 훨씬 경미하다는 게 미국 내 평가다.)

워싱턴=김정욱 특파원

◆스티븐 김 사건=2009년 6월 11일 폭스TV뉴스 제임스 로젠 기자는 “북한이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 이후 추가 핵실험 등으로 대응할 것이며, 이는 CIA가 취득한 정보”라고 보도했다. 이미 북한은 같은 해 5월 2차 핵실험을 했고, 또 성명을 통해 추가 실험을 공언한 상태여서 그의 발언은 기밀 누설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 정보 관리에 민감했던 오바마 행정부는 수사에 착수했고, 스티븐 김을 정보 제공자로 지목해 2010년 8월 간첩죄로 기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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