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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부양하려면 얼마 벌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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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충북 청주시 금천동 조모(64)씨는 뇌출혈로 후유증을 겪고 있는 4급 장애인이다. 2003년 이혼 후 10만원짜리 단칸방에서 혼자 살았다. 정부에서 매달 나오는 생계비(43만6000원)와 장애수당(3만원)으로 생활했다. 조씨는 지난달 초 ‘수급자 탈락 예정’ 통보를 받았다. 수원에 사는 아들(40)의 재산이 기준보다 많다는 이유에서였다. 지난달 23일 동사무소를 방문해 “오래전부터 아들과 연락을 끊고 살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는 당국이 구제절차를 밟던 지난 12일 연탄불을 피워놓고 세상을 떴다.

 13일에는 경남 남해군의 윤모(74)씨가 수급자 탈락 소식을 듣고 목숨을 끊었다. 딸 3명의 부양능력이 있는 것으로 판정되자 무료였던 요양시설 비용(월 80만원)을 딸들이 부담하게 된 상황이 짐스러웠던 것이다.

 이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이유는 뭘까. 청주시 조씨의 경우 아들의 소득(월 260만원)과 재산(1억4000만원, 주공아파트 60㎡)이 원인이다. 현행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자식(4인가구 기준)의 소득이 월 256만원을 넘거나 재산이 1억2836만원(중소도시 기준) 이상이면 부모를 국가가 보호하지 않는다. 이 선을 경계로 공적 부조가 자식 책임(사적 부양)으로 바뀐다. 조씨는 소득기준 초과는 적용 유예됐지만 재산에 걸려 탈락 대상이 된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6월부터 사회복지통합관리망을 활용해 부양의무자(자녀 등) 240만 가구의 소득·재산·복지혜택 이력 등 218가지를 확인해 10만3000명을 수급자 탈락 예정자로 통보했다. 지자체 확인이 끝나면 약 4만 명이 탈락할 것으로 추정된다. 또 수만 명은 지금보다 생계비가 깎일 전망이다.

 복지부는 이번에 자식의 부양의무 기준을 256만원에서 364만원으로 올리기로 했다. 364만원은 전국 가계 중위소득(일렬로 세울 때 정중앙)이다. 최소한 중산층은 돼야 부모 부양의무를 질 여력이 있다고 본 것이다. 이럴 경우 자식 때문에 보호를 못 받던 6만1000명이 수급자가 된다. 여기에는 2150억원(지방비는 550억원)이 든다.

 청주시 조씨의 아들은 자식을 둘 둔 가장이다. 월소득은 전국가계 평균의 67% 정도다. 통계청에 따르면 조씨 아들과 비슷한 소득을 올리는 가구의 월평균 지출은 약 240만원 이다. 부모 부양 여력이 없다는 뜻이다.

조씨의 아들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할 얘기가 없다”고 말했다. 청주시 금천동사무소 전형민씨는 “고인 아드님의 자녀들이 학교에 다니고 있고, 4인 가족이고, 우리가 봐도 현실적으로 (아버지를) 부양할 조건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현행 기초보장법은 출가한 딸은 부양의무 면제 기준소득 초과분의 15%(아들은 30%)를 친정 부모한테 부양하도록 강제한다. 이런 규정 때문에 자칫하다간 자식들도 부모처럼 빈곤해질 수 있다. 남해군 윤씨의 딸 3명은 매달 70만원 정도 아버지에게 생활비를 보조할 여력이 있다고 나왔다. 큰딸(51)은 “다들 벌어먹기 빠듯하다. 아버지는 자식들이 못사는 걸 늘 걱정하셨다. 자식들에게 폐 끼치기 싫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가족 사이에 부양을 둘러싼 소송도 늘어나는 추세다. 대법원의 사법연감에 따르면 2006년 152건에서 지난해 203건으로 늘었다. 일각에서는 자식의 부양의무 규정을 아예 없애자고 한다. 중산층이 줄고 있는 데다 그들의 지갑이 얇아지고 있다고 한다. 참여연대 손대규 간사는 “우리나라 최저생계비가 너무 낮다. 국가 지원도 적은데 관계가 단절된 자식을 찾아내면 생계비가 없어지거나 줄어든다. 부양의무 규정을 없애는 게 맞다”고 말했다. 하지만 복지부 관계자는 “효 정신을 감안할 때 폐지는 이르다”고 말한다.

 외국은 나라마다 다르다. 자녀 능력을 안 따지는 데가 많다. 스웨덴·핀란드 등 북유럽 국가들은 아동·노인·장애인의 돌봄을 국가가 전적으로 책임진다. 미국·영국도 마찬가지다. 독일·오스트리아 등은 자식의 능력을 따지지만 우리보다 훨씬 느슨하다.

신성식 선임기자, 박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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