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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의 향기

나도 관심사병이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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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주철환
jTBC 제작본부장

제품이름은 가물가물한데 광고 문구는 기억에 남는 경우가 더러 있다. “끌리면 오라.” 멋진 문장인데 그 잘생긴 모델이 어디로 오라고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돈 받고 써준 카피라이터는 흐뭇할 테지만 돈 낸 광고주로서는 서운할 일이다. 이럴 때 ‘상품은 짧고 작품은 길다’고 해야 하나.

 “시선을 즐겨라.” 아마도 노출의 계절에 방송을 탔음 직한데 그게 화장품인지 의상인지는 분명치 않다. 제품과 상관없이 이 광고카피를 현실에 적용하려면 두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시선을 받는 이에게는 자신감, 시선을 보내는 이에겐 신뢰감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때는 시비가 붙을 수 있다. 한번쯤은 내뱉거나 들은 말. “왜 자꾸 쳐다봐요?”

 회사 안에서 관심사원이 된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일까. 조건부로 답이 나올 듯하다. 따뜻한 관심은 환영, 뜨거운 관심은 사절. 회사에서도, 교실에서도, 심지어 가정에서도 관심에는 적정온도가 있다.

 군대라고 예외겠는가. 올여름을 달군 단어 중에 ‘관심사병’이란 게 있다. 남의 일 같지 않다, 바로 내 얘기인 것이다. 그때도 뙤약볕이었다. 키 1m70㎝에 몸무게 46.5㎏. 체중미달로 네 번씩이나 신체검사를 받고 스물여섯에 논산훈련소로 입대한 나는 모두에게 골칫덩어리였다. 적성에 맞지 않다기보다는 기본함량이 미흡했다. 남들은 다 되는데 왜 난 안 되는 걸까. “지금 춤추냐?” 총검술 조교의 음성과 표정이 쟁쟁하고 생생하다.

 나로 인해 애꿎은 동기들이 피해를 입는다는 게 괴롭고 서글펐다. 사회에선 안 그랬는데. 공포의 PRI가 끝나고 찾아온 영점사격(총의 가늠자와 가늠쇠를 조정) 장에서 나의 존재감은 극에 달했다. 내 앞의 훈련병은 가뿐하게 영점을 ‘맞히고’ 좋아하는데 나는 가엾게도 영점을 ‘맞고’ 구르는 신세가 됐다. 한 번에 3발을 쐈는데 목표에서 얼마나 벗어났는지 종적이 묘연했다.

 “끝까지 영점을 잡지 못한 몇몇 훈련병은 수십 번도 더 사격을 하며 혼자 실탄 한 통을 다 써버리기도 했다. 우리는 그 동기들에게 너희 부모님이 내신 세금을 너희가 다 낭비하는 것이다라며 조롱했다.” 일반병사 시절의 경험과 추억을 공유하는 ‘대한민국 국방부 대표블로그 동고동락’에 나와 있는 글이다. 웃으며 읽는 사람들에게는 동락(同樂)이겠지만 나 같은 관심사병 출신들에겐 동고(同苦)일 게 확실하다.

 국방장관까지 참석한 해병대병영문화혁신토론회가 끝난 후 나온 대책이 좀 의아하다. 가혹행위를 한 병사에겐 해병대의 상징인 ‘빨간 명찰’을 떼 내고 타 부대로 전출시킨다는 거다. 그 명찰은 단순한 이름표라는 의미를 넘어 해병대에 소속된 일원이라는 자부심과 명예를 상징한다고 해병대 예비역들은 증언한다.

 가혹함이 또 가혹함을 낳는다면 군대는 가혹한 장소로 계속 남을 것이다. 군대가 끌려가는 곳이 아니라 ‘끌리는’ 곳이 되려면 이름표를 달거나 떼기 전에 먼저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주는 문화가 필요하다. 동고동락하는 관심사병의 어깨를 다독거리는 군대, 그야말로 시선을 즐기는 군대에서 다시 한번 ‘우정의 무대’를 연출하고 싶다.

주철환 jTBC 제작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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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소속기관

생년

[現] jTBC 상무(제작본부장)
[前] OBS경인TV 대표이사사장

195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