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유리한 자의 부채

<결승 2국> ○·허영호 8단 ●·구리 9단

제10보(109~120)=바둑은 유리한데 시간은 없고 상대는 계속 승부를 걸어온다. 이런 때는 어떤 전략이 최선일까. 이런 질문을 던지면 일류 고수들은 그냥 웃어버린다. 바둑판의 상황은 한 수 둘 때마다 변하고 내 마음도 그에 따라 계속 변한다. 또 불리한 쪽은 갈수록 용감해지고 유리한 쪽은 자꾸 소심해질 수밖에 없는 것. 그러니 유리한 자는 그냥 빚쟁이다. 그게 바둑이다.

　백△ 젖히자 구리 9단은 곧바로 109로 끊어온다. 백△는 당연해 보이지만 109는 필시 무리수일 것이다. 하나 유리한 자는 조심해야 하는 것. 허영호 8단이 110 하나 선수한 뒤 112의 축으로 잡아버린 것은 더 이상 분규가 싫다는 의사표시다. 다른 쪽이야 어찌 되건 상변만 집으로 만든다면 이긴다는 계산법이기도 하다. 이런 계산 속을 빤히 알기에 흑은 결코 고분고분할 수 없다. 중앙도 바쁜 흑이 113으로 타진한 것은 상변에도 맛을 남기자는 것.

　상변은 ‘참고도1’처럼 받아야 깨끗하지만 흑2가 선수로 듣는다. 할 수 없이 114 막자 115로부터 장차 A가 듣게 됐고 118로 빵 때려냈음에도 이게 상변 파괴의 발판이 됐다. 그럴 바엔 118로 ‘참고도2’처럼 잡아두는 건 어땠을까. 하지만 허영호는 흑2 같은 수로 국면이 복잡해지는 게 싫었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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