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star&] 차인표 … 연기도 하는 작가랍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17면

차인표는 이름만으로 설명이 되는 배우다. 그를 톱스타로 올려준 드라마 ‘사랑을 그대 품 안에’를 시작으로 한 번도 고꾸라지지 않고 그 자리를 지켰다. 아내 신애라와의 애틋한 모습은 늘 잉꼬부부의 모범이 됐다. ‘가슴으로 낳은 딸’을 키우며 사회적으로 입양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그렇게 ‘착한 배우’로 자리 잡는가 싶더니, 2년 전에는 불쑥 소설 『잘가요 언덕』을 냈다. 사람들은 그저 ‘연예인이 취미생활로 쓴 책’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차인표가 2년 만에 두 번째 소설을 냈다. 제목은 『오늘예보』. 하루하루 살기에 급급하고, 당장 오늘의 절망만을 생각해 죽고 싶은 이들에게 위로를 건네는 이야기다. ‘시청자’였던 사람들이 ‘독자’로서의 눈빛을 보내기 시작했다.

“10년 구상해서 쓴 『잘가요 언덕』은 잘 팔렸어요. 하지만 작가로서, 글로서 평가를 받을 수가 없었죠. 그냥 연예인이 낸 책으로만 보니까요. 그런데 이번에 출간 기념회를 하는데 연예부 기자들이 아닌 문학담당 기자들이 왔더라고요. 아, 진정성을 조금씩 알아주는구나 싶었죠.”


먼 훗날 작가로 기억되고 싶다는 그는 스스로 ‘재능이 있다기보다 노력하는 스타일’이라고 평가한다. 250페이지의 소설을 쓰기 위해 2만5000페이지를 썼단다.

그는 왜 펜을 잡았을까. 차인표를 직접 만났다.

글=임주리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세상의 기준으론, 참 별 볼일 없는 사람들 얘기다.

전직 웨이터 나고단. 나이트 죽순이였던 아내는 수영강사와 바람나 도망갔고, 대박을 꿈꾸며 연 쇠고기 집은 촛불시위와 함께 개업 날 문을 닫았다. 노숙자가 된 고단은 그저 죽고만 싶다. 주식 브로커였던 이보출은 욕심을 부리다 쫄딱 망했다.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보조출연자 일을 시작했지만, 땀 흘려 돈 벌기란 녹록하지가 않다. 새 인생을 살려고 했던 퇴물 조폭 박대수에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이 있다. 그런데 아이가 희귀병에 걸렸다. 한 푼, 두 푼 모은 돈은 후배 이보출에게 사기 당해 몽땅 잃은 상황. 눈앞이 깜깜하다.

소설 『오늘예보』를 통해 이 세 남자의 이야기를 담아낸 건, ‘별 볼일 있는’ 남자 차인표다. 그를 13일 오후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먼저 도착해 있던 그는 안경을 낀 채 대본을 읽고 있었다.

-소설, 재미있던데요. 솔직히 큰 기대는 안 했거든요. 그런데 깔깔 웃으면서 읽었어요.

“가독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잘 읽히는 거. 소설이니까요. 웃음이 어디서 나오는 걸까 치열하게 연구했죠. 개그콘서트 같은 것도 즐겨보고요. 제가 생각할 때 유머는, 상황과 인물이 어울리지 않을 때 나오는 것 같아요. 가령 수해 상황을 보도하는데 이름이 ‘이재민’인 기자가 나오는 식이죠.”

-재미있기는 했는데, 결말이 너무 해피엔딩이라서 판타지 같더라고요. 노숙자가 재기하기가 쉽나요 어디.(소설에서 나고단은 재기에 성공해 캄보디아에서 봉사활동을 펼친다)

그는 잠시 고개를 숙였다. 두 손을 모으고 뜸을 들이더니 긴 이야기를 꺼내 놓았다.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들처럼 내일이 없다, 희망이 없다 생각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잖아요. 그래서 제 이야기를 읽고 그 결말을 ‘기적’이라 하는 분들도 많아요. 사람들은 상식에서 벗어나는 일, 생각들은 책상 서랍 속에 넣고 잠가버리죠. 그런데 천만에요. 내일은 반드시 내일의 태양이 떠요. 이 얘기가 왜 허황되지 않으냐고요? 정확히 20년 전 일이에요. 제가 미국에서 1년 동안 회사에 다니다가 사정이 생겨서 그만두고 어머니와 한국에 들어와 살게 됐어요. 아버지랑은 당시 사이가 안 좋았죠. 한국에 왔는데 군대도 안 갔다 왔지, 취업이 안 되더라고요. 미칠 노릇이었죠. 그때 제가 쓸 수 있는 돈이 얼마였는지 아세요? 하루 300원이었어요. 하루 종일 전철역에 앉아서 두꺼운 전화번호부를 들여다봤어요. 누굴 만나야 하나, 뭘 해야 하나 싶어서…. 그 새파란 나이에 그랬어요 제가.”

-자전적 얘기인가요.

“어떻게 보면 나고단은 제 얘기죠. 만약, 20년 전의 제 하루를 수박 자르듯 잘라서 보잖아요? 그러면 전 정말 희망 없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살고, 살아냈더니 탤런트도 됐고 결혼도 하고 이제 가난한 아이들에게 밥을 먹여요. 제가 해낸 게 뭐냐. 하루하루를 살아낸 거예요. 그건 기적이 아니에요. 분명히 일어날 수 있는 거죠, 누구에게나. 힘들다고 포기하면 끝내 못 보는 거고.”


-그때의 경험 때문에 소설을 쓰게 된 건가요.

“이 이야기를 구성한 건 사실 IMF 직후였어요. 평일 오후에 자전거를 타고 한강을 달리는데 한숨 짓거나 울고 있는 사람들을 스쳐 지나갔죠.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계속 남아 있었어요. 몇 년 전에 후배의 자살 소식을 듣고 마음이 너무 아팠고…. 이런 생각을 해봤어요. 만약 신이 있다면 우주가 이렇게 큰데 왜 이렇게 먼지만 한 지구에 사람들을 다 몰아넣었을까. 목성에 5000명, 토성에 3000명 이렇게 살면 좋잖아요? 아마, 서로 위로하고 같이 하루하루를 살아내라는 뜻이 아닐까 싶었어요. 그런 생각으로 쓰게 된 거죠.”

-사람들은 자신의 고통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남을 위로하잖아요. 이를테면 연예인은 ‘무릎팍도사’ 같은 토크쇼에 나와서 고백을 하거나 에세이를 쓸 수 있겠죠. 그런데 왜 소설이에요.

“제가 제 입으로 제 얘기를 꺼내기 시작하면, 과장하게 될까 봐요. 나쁜 건 지우고, 잘했던 건 좀 과장하게 되고 그럴까 봐요. 소설은 다 지어낸 거지만 메시지는 남죠.”

그렇게 소설을 쓰기 시작한 그는, 여전히 배우다. 스스로 ‘노력파’라 일컫는 중년 배우. 콧수염을 기르는 이유도 새로 맡은 배역 때문이다. 25일부터 MBC에서 방영하는 사극 ‘계백’에서 무사 무진 역을 맡아 한창 촬영 중이다. 역에 걸맞은 몸을 만드느라 질릴 정도로 닭가슴살을 먹는 고생도 했다.

그래도 “‘웰메이드 드라마’에 출연하게 된 걸 행운이라 생각한다”는 그는 “계백의 아버지 역인데 내 나이 때 맡을 수 있는 적절한 역이라 좋다”고 말했다. 초반 6회까지 극을 이끌어주고 8월 초께 ‘계백’ 촬영을 끝낸 후엔, 곧바로 김지훈 감독의 영화 ‘타워’ 촬영에 들어간다. 글 쓰랴 연기하랴 쉴 틈이 없는 셈이다.

그의 궁극적인 목표는 뭘까. 답은 이랬다.

“얼마 전에 독자 사인회를 갔어요. 보통 사인을 받는 사람들은 서서 받는데, 그게 싫어서 의자를 준비해두고 한 분씩 다 앉아서 사인을 받으시라 했죠. 그런데 앉으니까 다들 이런저런 힘든 얘기를 꺼내놓기 시작하는 거예요. 졸지에 ‘상담회’가 됐어요(웃음). 다들 자기 얘기를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했던 거죠.”

-재미있는 경험이었네요.

“그때 이런 생각을 했어요. 차인표가 ‘동반자’가 되어준다면 어떨까. 쓰러질 것 같을 때, 옆에서 도닥이면서 ‘우리 같이 가요’라는 말을 해줄 수 있는 동반자 말이죠.”

차인표

-1967년 서울 출생

-뉴저지주립대 경제학 학사

-1993년 드라마 ‘한 지붕 세 가족’으로 데뷔

-1994년 드라마 ‘사랑을 그대 품 안에’

-1997년 드라마 ‘별은 내 가슴에’

-1999년 드라마 ‘왕초’

-2004년 영화 ‘목포는 항구다’

-2007년 드라마 ‘하얀 거탑’

-2008년 영화 ‘크로싱’

-2010년 드라마 ‘대물’

-2011년 제1회 이달의 나눔인 보건복지부 장관상

[시시콜콜] 입양계획 더는 없지만 …

차인표의 첫 독자는 아내 신애라다. 첫 소설 『잘가요 언덕』이 큰 주목을 받지 못해 의기소침해 있을 때 아내가 쿨한 격려를 보냈다. “작가로서 평가받고 싶으면 또 써. 그러면 진정성을 알아줄 거야.”

그렇게 용기를 내, 두 번째 소설을 썼다. 가장이 소설을 쓴다고 방에만 처박혀 있으면 불안해할 법도 한데, 늘 한결같이 지지해준 아내야말로 차인표 소설의 일등 공신이다. 아직도 그렇게 좋으냐는 질문에 “어디를 가든 분위기를 밝게 만들고, 어려운 사람을 불쌍히 여길 줄 아는 아내는 굉장히 손발이 잘 맞는 동반자”라며 웃는다.

든든한 이는 또 있다. 아들 정민(14)은 독자이자 편집자다. “작가가 달리는 말이면 독자는 기수예요. 누군가 읽어주고 재미있다고 채찍질해 주면 더 달리게 되잖아요. 아내는 완성품이 아니면 안 읽는데, 아들은 중간중간에도 읽어줬어요. 한마디로 쪽 대본을 열정적으로 봐주고 코치해 주는 꼼꼼한 편집자였던 거죠.”

그가 이번 소설에서 가장 애착을 가지는 인물은 희귀병을 앓는 딸을 가진 아버지, 박대수다. 그 자신도 소위 ‘딸바보’이기 때문이다. 2년 전, 딸 예은(7)이의 눈에 순간강력접착제가 한 방울 떨어진 적이 있었단다.

“애가 자지러지는데, 차가 너무 막혀서 병원까지 한 시간이 걸리는 거예요. 그 한 시간 동안 ‘내 눈을 빼줘야지’라는 생각밖에 안 했어요. 그게 모든 아버지들의 심정일 거고요.”

딸 예은이와 예진(5)이를 입양한 차인표, 신애라 부부는 더 이상 입양을 할 계획은 없다. 하지만 나중에 보육원을 운영해 보고 싶은 꿈은 간직하고 있다.

“아내는 예전부터 큰 가족을 원했어요. 아내의 꿈, 들어주고 싶어요.”

임주리 기자

사진

이름

소속기관

생년

[現] 탤런트

1967년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