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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철호의 시시각각

2% 부족한 한국 대기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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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철호
논설위원

1990년대 중반 도쿄 특파원 시절의 일이다. 도요타차의 쓰쓰미(堤) 공장을 취재할 때 그를 처음 만났다. 그는 공장을 도는 마이크로 버스에 올라와 이곳저곳 무척 열심히 설명했다. 당시 그의 직책은 홍보부 차장. 그날 저녁 옆에 앉은 다른 홍보팀원이 귓속말을 했다. “저 사람이 도요타 가문의 4세인 아키오예요.” 현재의 도요타차 사장인 도요다 아키오(豊田章男), 바로 그다. 그는 게이오대를 나와 남들과 똑같이 공채 시험을 치르고 입사했다. 말단 사원에서 입사 동기들과 똑같이 승진했다. 옆자리의 홍보팀원은 무덤덤하게 말했다. “지금의 저 보직이 아마 첫 특혜인지 몰라요. 1~2년 하면 전 직원들과 한 번씩 얼굴을 마주하니까요. 모든 사원이 도요타 정신의 산실인 쓰쓰미 공장은 꼭 순례하거든요….”

 오쿠다 히로시(奧田碩) 사장은 99년 아키오 부장을 이사로 발탁하면서 공개적으로 경고했다. “도요다 일가니까 임원까지는 기회를 준다. 그 다음부턴 실력과 능력이다. 피는 시간이 지나면 흐려진다.” 예상과 달리 아키오는 2년마다 상무-전무-부사장으로 고속승진했다. 국내 영업과 해외 생산·판매를 두루 맡으며 경영수업을 마쳤다. 오히려 그의 진면목은 84년 입사 이후 16년간의 평범한 샐러리맨 생활에 있는 게 아닐까.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그는 할아버지 기일 때마다 “저는 아직 그룹을 위해 한 것이 없습니다. 고작 이렇게 머리를 숙이는 것 말고는…”이라며 영정 앞에 오래 머물렀다고 한다.

 혼다차의 창업주인 혼다 소이치로(本田宗一郞)는 자식들에게 가혹할 정도로 냉정했다. 아예 회사 근처엔 얼씬도 못하게 했다. 기술이 뛰어났던 장남 히로토시(博俊)는 나이 서른에 자동차 튜닝 업체인 ‘무겐(無限)’을 혼자 힘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사람 좋은 그가 재무팀을 너무 믿은 게 탈이 났다. 탈세 혐의로 구속되는 비극이 찾아왔다. 그 무렵 사후 10년을 맞은 소이치로의 동상 제막식에서 그의 미망인은 “이렇게 시원치 않은 사람의 동상을 세우느냐”며 한탄했다. 아들 하나 지켜주지 못한 남편에 대한 섭섭함이 묻어난다. 장남 히로토시가 점심 도시락을 챙겨 들고 검찰 청사를 향해 힘없이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많은 일본인들이 눈시울을 붉혔다.

 요즘 한국의 대기업 때리기는 도를 넘고 있다. 5년 주기의 권력 환절기마다 반복되는 감기 몸살 수준이 아니다. 편법 증여·상속 같은 예민한 부분까지 칼을 들이대고 있다. 사회 양극화가 깊어지면서 대기업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도 곱지 못하다. 그렇다고 선거를 앞둔 정치적 푸닥거리로 가볍게 넘길 사안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눈높이에 맞추지 못한 부분이 없었는지, 대기업들 스스로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도요타차와 혼다차는 창업주 이름을 딴 회사다. 한국의 기준으론 개인 회사도 이런 사유(私有)기업이 없다. 도요다 가문이 가진 도요타차의 지분도 고작 2% 남짓하다. 그런데도 도요다 가문과 전문 경영인이 번갈아 등판해 세계 일류 기업으로 키웠다. 아키오의 사장 등극 역시 무리 없이 넘어갔다. 사실 한국과 달리 일본은 대기업을 향한 손가락질은 찾아보기 힘들다. 잃어버린 10년을 포함해 심각한 양극화 현상을 앓고 있는데도 말이다. 일본 대기업들이 지분보다 ‘권위’를 물려주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한국 대기업들의 경영권 승계는 갈수록 어려워질 게 분명하다. 우회적 통로였던 신주인수권부사채(BW)나 일감 몰아주기에 연이어 제동이 걸리고 있다. 앞으로 도요다 가문처럼 지분이 한 자릿수로 내려앉는 것은 시간문제다. 물론 사실과 거리가 있겠지만, 요즘 TV 드라마엔 대기업의 젊은 2·3세들이 하나같이 본부장이나 기획실장으로 등장한다. 그들의 삶은 우리 사회의 눈높이와 자꾸 거리가 멀어지는 느낌이다. 이런 추세라면 대기업 때리기는 한층 기승을 부리기 마련이다. 일본 기업에서 효율적인 생산기법이나 노사관계보다 좀 더 눈여겨볼 대목이 있다. 사회의 눈높이에 맞추고 국민의 사랑을 이끌어내는 경영, 바로 그 지혜가 아닐까 싶다.

이철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