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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국 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 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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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역점 사업은 한국 IT 접목한 e-스쿨·e-Arts 프로그램…
전 세계 대학과 온라인 네트워크 강화해 한국학 강의 확장할 계획

월간중앙
한국국제교류재단을 이끄는 김병국 이사장이 취임 1주년을 맞았다. 대대적인 조직 개편과 성과연봉제 도입, 사업 구조조정을 통해 조직 활성화에 나선 김 이사장을 만나 20주년을 맞은 한국국제교류재단의 미래를 물었다.

한국국제교류재단(Korea Foundation)은 공공기관이다. 해마다 기획재정부와 외교부의 기관장 평가를 받는다. 기획재정부의 기관장 평가에서 국제교류재단은 2년 연속 ‘미흡’이라는 좋지 않은 평가를 받았다. 기존 사업 방식을 그대로 답습한 게 가장 큰 지적 요인이었다. 노사협력 부분에서도 좋은 점수를 받지 못했다.

“한국 정치·경제 배운 세계인들 소중한 외교적 자산”

그동안 KF는 전 세계에 한국학을 보급하고 지원한다는 추상적인 일 말고 눈에 띄는 성과나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이런 조직이 임자를 만났다. 지난해 6월 재단 이사장으로 김병국 씨가 취임하며 조직이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김 이사장은 2002년 동아시아연구원을 직접 만들고 2008년에는 대통령실 외교안보수석을 지냈다. 13세에 미국으로 도미해 부시 대통령 부자가 나온 미국의 명문 필립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하버드 경제학과를 거쳐 동 대학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 MB정부 들어서는 외교안보수석으로 전격 발탁돼 한미 정상회담 준비 등에서 미국 인맥을 활용해 두각을 나타내기도 했다.

‘KF 이사장직은 쉬면서 일하는 곳’이라는 세간의 인식이 무색하게 그는 지난 1년간 새로운 변화를 시도해왔다. 오자마자 대대적인 조직 개편과 성과연봉제 도입, 사업 구조조정을 통한 사업 재정비를 시도했다. 취임 한 달 만에 기존의 방만한 10개 부서 체제를 6부 2실 체제로 개편했다. 형식적으로 진행되던 노사 협의회를 활성화하려고 노사 중장기 발전 계획을 수립하고 노사간담회, 이사장과의 일대일 면담 등을 시도했다.

최근 서울에서 진행한 KF 창립 20주년 행사에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90여 명의 한국학 학자를 초대한 것도 이례적이었다. KF 창립 행사를 끝낸 이틀 후 서울 을지로1가 재단 사무실에서 김 이사장을 만났다. 그는 행사를 코앞에 두고 부친(김상기 전 <동아일보> 회장)을 잃는 큰일을 치러야 했다.

개인적인 일과 재단의 큰 행사를 한꺼번에 겪은 직후여서인지 몹시 피곤해 보였다. 그러나 인터뷰가 시작되자 질문마다 잠시 생각을 거친 다음 한 문장 한 문장 또박또박 말했다. 정부 기관장이라기보다 순수한 열정과 고민을 가진 학자를 마주한 느낌이었다.

며칠 전 끝난 KF 창립 20주년 행사는 만족하십니까?
“(곰곰이 생각하다)음… 저는 어떤 일에서도 만족하는 법이 없습니다. 더 잘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럼에도 의미를 두고 싶은 건 해외의 주요 한국학 교수 90여 명을 한자리에 모이게 한 일입니다. 참석한 교수들의 항공료와 한국 체류비 등 적지 않은 행사 비용의 부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한 이유는 20주년을 맞은 재단의 전환점을 마련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제까지 해외 한국학 학자들이 참여하는 각종 학술회의나 행사들이 국내외에서 많이 열렸지만 이번 경우처럼 20년 동안 공을 들여 키운 한국학 학자들이 한국에 와서 결속을 다진 적은 없었습니다.”

행사에 참가한 교수들로부터 반응을 좀 받아보셨나요?
“서유럽 학자들이 행사 중 따로 모여 중지를 모았나 봐요. ‘서유럽이 있다는 걸 잊지 말아달라’가 주 내용이었어요. 잘 아시겠지만 유럽 쪽 학자들의 자부심은 대단하거든요. 미국보다 학제 간 연구가 활발하고 정치·사회학도 주로 비교사학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특징이죠. 지역학을 더 이상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경제학도 통계학 중심으로 사고하는 미국식 연구가 세계 사회학계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에 아쉬운 마음을 전달하더군요. 한국이 미국 쪽을 더 많이 바라본다며 서운해하는 거죠.”

미국 학자들은 어떤 반응이었습니까?
“현재 재단에서 지원하는 한국학 연구 교수 지원은 크게 두 가지예요. 주니어급 교수를 키우거나 시니어급 교수를 키우는 건데 이제까지는 시니어급 교수들에게 지원을 많이 했거든요. 미국 학자들은 주니어급 교수들이 시니어급으로 가도록 사다리를 놓아달라는 거예요. 4~5년 동안 주니어 교수들을 지원해 전임교수로 갈 조교수직이나 부교수직을 더 많이 만들어달라는 얘기죠. 이미 재단은 사다리 놓기 작업을 준비 중이에요. 대학에 한국학과를 신설해 교수 급여를 3~5년간 재단이 지원해주면 대학은 그 교수들을 나중에 조교수나 정교수로 받아들이는 시스템을 만들어놨어요.”

한국국제교류재단의 연간 사업비 내역

- 한국학 기반 확대 123억원
- 한국 전문가 양성 54억원
- 인사 교류 51억원
- 국제 협력 네트워킹 81억원
- 문화 교류 95억원
- 미디어·출판자료 지원 44억원

“한국문화 강좌에 수강생들 넘쳐”
KF는 지난 20여 년간 한국학 진흥, 문화 예술 교류, 인사 교류와 각종 포럼사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 알리기 인프라를 꾸준히 구축해왔다. 총 12개국에 69개 대학 100석의 한국 관련 교수직을 설치했고, 전 세계 주요 대학에 40여 개의 한국학연구소를 설립 또는 운영·지원해왔다. 설립 이후 지속적으로 인사 교류사업을 펼치면서 현재는 연간 1000여 명의 해외 인사들이 한국을 방문한다.

이번에 행사에 참석하신 교수들의 면면을 보니 주로 어학과 인문학에 치우쳐 있는데 앞으로 다른 분야로 전공을 늘릴 생각은 없으신가요?
“가장 시급한 문제입니다. 한국학 교수직 설치는 한국 전문가 양성과 한국학 발전에 장기적 인프라가 되기 때문에 중요한 문제거든요. 따라서 앞으로 정치·경제·국제관계 등 사회과학 분야에도 적극적으로 투자할 계획입니다. 지금 세계인들은 한국이 빠른 시간 안에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데 지대한 관심을 보여요. 또 민주화를 이룬 과정에도 관심이 많고요. 한국 브랜드가 점점 올라가기 때문에 사회과학 분야 학과 신설은 반드시 필요한 과제죠. 한국 경제와 한국 정치를 배운 세계인들이 차세대 지도자가 되고 지한파가 되면 그보다 소중한 외교적 자산이 어디 있겠습니까?”

고교와 대학, 석·박사 학위를 모두 미국에서 받은 ‘미국 통’이신데 미국에서 공부할 당시와 지금을 비교하면 한국의 국가 브랜드는 어떻게 바뀌었나요?
“제가 알기로 중국의 4년제 대학에서 한국학과를 신설한 대학은 150여 개입니다. 3년제 대학까지 합치면 300여 개에 달합니다. 제가 미국에서 대학을 다녔던 1980년대만 해도 일본학이 단연 최고였죠. 그다음이 중국학이었고 한국학은 아예 없었어요. KF가 만들어지기 시작하면서 점점 한국학의 입지가 넓혀져왔죠. 요즘엔 일본학이 사양길로 접어들었습니다. 미국의 UCLA대에서는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이 일본어 배우는 학생보다 많다고 하더군요. 한국문화 강좌만 해도 140명 학생이 수강을 하는데 이들이 모두 한국계 학생들이 아닐뿐더러 수강 제한을 140명으로 해서 그렇지 대기 학생도 많다고 해요. 현재 외국인들이 한국을 굉장히 매력적인 국가로 인정하는 건 맞는 말입니다.”

“2012년 제주도 이전은 가장 큰 도전”
올해 역점 사업으로 ‘KF e스쿨’을 진행 중이신데 구체적으로 어떤 사업입니까?
“가장 시급한 게 두 가지 있습니다. 예산이 부족하고 가르칠 사람이 없다는 거죠. 북미 지역에서 키운 한국학 교수들에게 중남미나 동아시아, 아프리카에 가서 강연하라고 하면 하겠어요?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가진 인프라를 최대한 활용해 온라인 동영상으로 강좌를 열겠다는 겁니다. 경비도 줄이고 확장 속도도 빠르다는 장점이 있죠. 한국의 IT를 이용해 기존 오프라인 프로그램과 접목을 시도하는 것입니다. 올해 9월 본격적인 개강을 앞두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됩니까?
“1차로 국내 8개 대학이 중국과 일본, 동남아시아 대학들과 연계해 강의를 개설하기로 했습니다. 한국어와 한국 정치, 한국 경제 등 총 26개 강의가 개설될 예정입니다. 중국은 베이징 외국어대학, 일본은 와세다대학과 계약했어요. 북미 지역 한국학 학자들은 시차 문제로 일단 북미 지역 대학끼리 서로 없는 학과를 개설해 교환 강의를 온라인으로 진행할 생각입니다. eArts 프로그램도 진행되는데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의 음악원 교수들이 동남아시아 지역의 명문대학 음대 학생들을 영상으로 연결해 뛰어난 학생을 발굴, 서울로 초청해 한예종 학생과 함께 연주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계획도 세웠습니다.”

제가 알기론 재단 예산이 연간 800억원 이상으로 적지 않은데 예산이 부족한가요? 기금은 주로 어떻게 운영됩니까?
“재단 운영비는 정부 지원금으로 안 받고 여권 발행 시 드는 비용 중 일부가 국제교류기금이라는 명목으로 재단 운영자금으로 유입됩니다. 이 중 해마다 재외동포 교류에 220억원 정도를 지원하고 한국학 기반 확대를 비롯해 연간 사업 운영비로 450여 억원이 쓰이죠. 지난해 기준으로 한국학 기반 확대에 123억원, 국제 협력 네트워킹에 81억원, 한국 전문가 양성에 54억원이 쓰였습니다. 세계 각국에서 수시로 행사가 열리는 데다 북미 지역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도 한국학 과정을 계속 신설해야 하기 때문에 예산은 항상 빠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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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 아프리카 세네갈 경영대학원에서 열린 한국학 강연.

취임하고 바로 조직 개편을 했다고 하던데요. 처음 오셨을 때 재단의 가장 큰 문제점을 무엇이라 생각하셨나요?
“국민 혈세로 재단이 운영되는데 그동안 너무 존재감 없이 일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국제교류재단이 무슨 일을 하는 곳인지 당사자들이 아니면 직원 가족들도 잘 모르니까요. 존재감을 못 느끼면 직원의 사기도 떨어지고 정부 지원도 받기 힘들죠. 조직적인 차원에서도 기획·홍보·평가·심의 등 4대 기능이 취약해 이 부분을 강화하기로 했습니다. 또 성과주의를 통해 조직의 활기를 찾고 소통을 강화하기로 했죠. 제가 너무 재촉했기 때문에 재단 직원들에게는 지난 1년이 그리 쉽지는 않았을 겁니다.”

김 이사장은 20여 년간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를 지냈다. 본인 스스로 “논문 한 단락을 쓸 때 하루가 걸릴 정도”라고 말할 만큼 꼼꼼하고 완벽을 추구하는 전형적인 학자 스타일이다.

외교 안보수석을 할 때도 그렇고 지금 조직에 와서도 일을 많이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항상 꼼꼼하게 챙기고 노력하는 스타일이신가요?
“제가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모든 과목이 ‘양’이었어요. 저희 형제들은 어릴 때부터 모두 천재 소리 듣고 자란 집안인데 저는 안 되더군요(그의 조부는 <동아일보>를 창간한 김성수 씨). 그때 진짜 바보라고 생각했어요. 머리가 없으면 노력이라도 하자 싶어 남들 2시간 공부할 때 4시간 하고 4시간 공부할 때 8시간 했습니다. 그 어린 나이에 말이죠. 그리고 1년 후 전교 1등을 했어요. 처음 미국에 갔을 때도 페센덴이라는 중학교에 들어갔는데 영어를 못하니 전 학년 53명 중 52등을 했어요. 그때도 기숙사 화장실에서 남몰래 불 켜놓고 공부했죠. 밤을 꼬박 새면서요. 거기서도 1년이 지나 전 학년에서 3등을 했고 미국의 명문이라는 필립스고등학교에 들어갔죠. 어느 자리에 가든 저는 처음부터 잘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노력이 99%입니다. 제가 이후 하버드대 박사 학위를 따고 나이 마흔이 됐을 때 어머님이 ‘병국아, 너는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니?’ 물으시더라고요. 저는 그때도 ‘지금보다 더 똑똑해지고 싶어요’라고 대답했어요. 어머님이 ‘너는 이제 충분히 똑똑하다’고 하시더군요.(웃음) 그래도 저는 여전히 만족하지 못했어요. 학문적 욕심도, 일 욕심도 말이죠.”

재단은 2012년 혁신도시 정책에 따라 제주도 이전을 앞두고 있다. 김 이사장은 “KF의 제주도 이전은 재단 역사상 가장 큰 도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이나 박물관, 오케스트라 등 재단이 네트워크를 구축한 상당수의 기관이 거의 서울과 해외에 있기 때문에 기동성 측면에서 네트워크를 유지·확장하려면 배의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120여 명의 직원이 한꺼번에 제주도로 거주지를 옮기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한국학의 세계적 네트워크 확장과 조직 내부의 결속까지, 지금 김 이사장 앞에 두 개의 묵직한 과제가 놓여 있다.

박미숙 월간중앙 기자 splanet88@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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