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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봉 기자의 모델 도전기 ④ 내 옆의 지원자가 말했다 “부을까봐 밤 새고 왔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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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8면

1 ‘2011 SBS 슈퍼모델’ 예선 통과자들과 함께 무대에 섰다. 경력 4년차 모델 김무영(24·왼쪽)과 2년차 모델 김수빈(18·왼쪽). 가운데 기자의 포즈가 아무래도 어정쩡하다.


준비기간은 끝났다. 본격적인 도전이 시작됐다. 지난달 30일 ‘2011 SBS 슈퍼모델’ 1차 예선이 있었다. 100여 명의 남자 지원자 가운데 30명이 통과했다. 기자는 어렵사리 30명에 끼었다. 남녀 각각 30명이 이달 6~28일 서울 청담동 DCM 모델아카데미에서 하루 두 시간씩 워킹·자세 등의 교육을 받는다. 예선과 모델 교육은 처음으로 모델 지원자들을 직접 만난 자리였다. 길을 걷다 마주치면 누구나 돌아볼 만한, TV 광고와 패션지에서 볼 수 있는 몸과 얼굴들이었다. 마치 다른 생물종과 경쟁하는 느낌이다. 오는 29일 경기도 일산 탄현 SBS 스튜디오에서 열리는 최종 예선에서 10월 열리는 본선 참가자 남녀 각 10~12명이 가려진다.

글=이정봉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협찬: 블랙야크·카파(의상), 네스트바이유양희(헤어·메이크업)

새벽 5시 메이크업 … 런웨이서 맨발로 심사 받아

2 지난달 30일 서울 등촌동 SBS공개홀에서 열린 슈퍼모델 1차 예선대회에서 기자가 장기자랑으로 섀도 복싱을 하고 있다. [슈퍼모델 사무국 제공] 3 14일 서울 청담동 DCM 모델 아카데미에서 남자 예선 통과자들이 워킹 연습을 하고 있다. 4 여자 예선 통과자들이 거울 앞에서 기본 자세를 연습하고 있다.

1차 예선은 그저 편하게 치르자 마음먹었다. 예선은 오전에 워킹·체형을 심사해 100여 명의 지원자를 절반으로 거르고 오후에 장기자랑·인터뷰로 30명을 추린다. 애초 입사시험 면접과 비슷할 거라 생각했다. 대여섯 명의 심사위원 앞에서 대여섯 명의 지원자가 방에 들어가 면접하는 식 말이다. 완전한 착각이었다.

예선 장소는 300여 석 규모의 공개홀이었다. 22명의 심사위원이 무대 바로 앞에 앉았고 다른 지원자들도 객석에서 심사 내용을 볼 수 있었다. 지원자들은 뜨거운 조명을 받으며 무대 가운데 설치된 T자형 런웨이에서 자신을 드러내야 했다. 예선을 앞두고 새벽 5시에 메이크업을 받은 콧잔등에 땀이 맺혔다. 이런 압박감은 다른 지원자도 마찬가지였다. 무대에 오르기 전 참가자들은 대거 화장실로 향했고, 차례가 다가오는 줄에 앉은 몇몇은 그 긴 다리를 심하게 떨었다.

지원자들은 10명씩 한 조가 돼 무대에 올랐다. 모두에게 똑같이 지급된 민소매 티셔츠와 사이클복처럼 달라붙는 바지 차림에 맨발이다. 한 여성 지원자는 같은 쪽 팔다리가 동시에 나가는 워킹으로 심사위원의 실소를 자아냈고 참가자들은 이를 보고 더욱 긴장했다.

드디어 무대에 올랐다. 어떻게 걸었고, 어떤 포즈를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심사위원 몇몇의 웃는 듯한 표정을 언뜻 본 것도 같다.

20주년 맞아 처음으로 남자 모델을 뽑아서인지 지원자들의 준비는 남달랐다. 이돈성(19)씨는 “몸과 얼굴이 부을까 봐 밤을 새우고 왔다”고 말했다. 기자는 다이어트로 몸무게를 75㎏에서 72㎏으로 줄였다. 심사위원도 눈길을 떼지 못할 정도로 훌륭한 워킹을 선보인 이도 더러 있었다. 심사위원인 박항치 디자이너는 “모델은 관객의 눈길이 닿는 곳이라면 절대 자세나 눈빛이 산만해져서는 안 된다”며 “일부 워킹이 뛰어난 지원자도 있지만 자세가 안 된 이가 많다”고 지적했다. 기자는 실력이 부족한 것을 알기에 무대에서 ‘인간 마네킹’이 되기로 정했었다. 합격한 것은 워킹·체형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이런 성실성 때문이었던 듯싶다.

워킹 교육에 무릎이 깨질 듯 아파

예선 통과자들은 5일 프로필 촬영을 하고 6일부터 모델 교육을 받았다. 1차 예선 통과자 60명 중 기자는 32번이다. 남자 중 2번인데 둘째로 작다는 뜻이다. 기자의 키는 1m81.7㎝다.

남자 통과자들의 몸매는 체력 단련에서 나온다.

프로필 촬영을 위해 옷을 갈아입는데 어찌나 몸매들이 훌륭한지, 태어나 처음으로 남자 앞에서 옷을 갈아입는 것이 부끄러웠다. 이런 몸매들은 피나는 노력의 결과물이다. 통과자들은 체지방률이 8%가 안 됐으며 3%에 불과한 이도 있었다. 위지웅(25)씨는 “먹을 거 다 먹고, 놀 거 다 놀면서 모델 일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며 “제대로 몸을 만들려면 2년 정도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과자를 먹을 때도 뒤의 성분표를 확인했으며 포화지방이 들어 있으면 배가 고파도 먹지 않았다. 이호승(25)씨는 “다이어트·운동을 해보니 지방보다 근육 빼기가 더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20㎏ 감량에 성공했는데, 비법은 “4개월 동안 매일 파워워킹(빠른 걸음으로 팔을 힘차게 흔들며 걷는 것)을 2~3시간 동안 한 결과”라고 했다. “잘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다”는 식으로 말한 지원자는 없었다.

예선 통과자들은 10명씩 조를 이뤄 기본자세·워킹 등 모델 교육을 받는다. 기본 자세와 워킹은 의외로 특별한 게 없다. 기본 자세는 그저 어깨와 팔에 힘을 빼고 아랫배에 힘은 주고 바르게 서는 것이다. 단지 양쪽 어깨·골반의 높이가 수평이 되고 머리가 기울지 않으며 살짝 턱을 당긴 자세다. 하지만 이게 간단치 않다. 워킹 교육에 앞서 매일 10분 동안 벽에 기대 서서 이 자세를 취했는데, O자형 다리인 기자는 무릎이 깨질 듯 아팠다.

워킹은 이 바른 자세를 유지하며 걷는 것이다. 양발이 일자가 되게 걷되 양팔의 흔드는 각, 양 어깨의 높낮이, 보폭 등이 일정해야 한다. ‘모델은 인간 마네킹’이라는 오래된 정의가 결코 틀린 게 아니다. 남자 모델 교육을 맡은 국제대학 모델학과 이선 교수는 “모델이란 남들이 보기에 아름다운 몸과 자세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라며 “워킹과 자세는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신체의 대칭과 비율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1차 예선을 통과한 남자 30명 중 모델 경력이 전혀 없는 지원자는 기자를 포함해 5명. 3주간의 기간에 30여 년 동안 가져왔던 걸음걸이·자세를 바꿔야 하는 난해한 숙제가 주어진 것이다.

“제 2의 정우성·차승원 꿈꾼다”

남성 모델 지망생 부쩍 늘어

현재 활동 중인 남자 모델은 700여 명으로 최근 증가세다. 남자 모델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이선 교수는 “2000년대 초반만 해도 모델학원에서 남녀 비율이 1대2로 여자가 많았지만 요즘은 역전돼 남자가 여자보다 두 배 더 많을 정도로 지원자가 늘었다”고 했다. 경력 11년차 남자 모델 김영민(29)씨는 “2000년대 중반부터 눈에 띄게 늘었고 최근에는 15세에 모델로 데뷔하는 이도 있다”고 말했다.

 남자 모델이 증가한 배경에는 모델 출신 남자 연기자들의 성공이 있다. 정우성·차승원·권상우·강동원·소지섭·조인성·공유 등 내로라 하는 남자 탤런트·배우가 모델 출신이다. 이들은 모델 업계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 뒤 자연스럽게 연기에 입문했다. 이들의 성공을 본 세대들이 남자 모델을 동경했다는 것이다.

 SBS 슈퍼모델 사무국 이상수 팀장은 “신선한 마스크와 느낌을 원하는 연출자들이 신체 비율이 완벽한 데다 연기 경험이 없어 겉멋이 덜 든 모델에게 끌린다”고 말했다. DCM 노선미 원장은 “남자 모델은 여자처럼 다양한 포즈가 없어 눈빛과 자세만으로 느낌을 표현해야 한다”며 “표정과 간단한 자세만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훈련이 연기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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