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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켓의 아버지 비웃던 NYT, 49년 만에 ‘바로잡습니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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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7호 32면

1969년 7월 16일 달착륙선 아폴로 11호가 발사됐다. 11호의 달착륙선 이름은 ‘이글’, 미국의 상징인 ‘흰머리 독수리’를 가리킨다. 사령선은 ‘컬럼비아’, 승무원들이 달 탐험을 콜럼버스의 미 대륙 발견에 비유해서 지은 이름이다.

권기균의 과학과 문화 인류 최초 달 착륙한 아폴로 11호

우주인은 닐 암스트롱과 버즈 올드린, 마이클 콜린스 세 사람. 미션은 1961년 5월 25일 케네디 대통령이 의회에서 약속한 대로 “이 10년이 다 가기 전에 달에 인간이 착륙한 뒤 지구로 무사히 돌아오는 것”이었다.

발사 12분 만에 아폴로 11호는 궤도에 진입해 지구를 한 바퀴 반 돌고 달로 향했다. 30분 후에는 달착륙선과 사령선이 도킹에 성공했다. 그리고 7월 20일(미국시간) 발사 4일 만에 달에 진입하고, 거기서 다시 분리된 달착륙선을 타고 달의 ‘고요의 바다’에 슬로 모션처럼 천천히 착륙했다. 달 표면에 역사적인 첫발을 내디딘 사람은 닐 암스트롱이다. 그때 그가 했던 “이것은 한 인간의 작은 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커다란 도약이다”는 말은 지금도 회자되는 명언이다.

암스트롱과 올드린은 달에 성조기를 꽂은 후 기념비를 설치했다. 21.55㎏의 모래와 달 암석을 채취하고 지진계도 설치했다. 이 장면은 TV로 생중계됐고, 전 세계 6000만 명 이상이 시청했다. 달에서의 작업 시간은 2시간30분. 달 체류 전체 시간은 21시간36분이었다. 그동안 사령선의 콜린스는 달 110㎞ 상공 궤도를 돌았다. 마침내 7월 24일 오후 5시50분 아폴로 11호는 무사히 태평양 바다에 내렸다. 이것으로 인간이 달에 착륙했다가 돌아오는 새 역사가 만들어졌다. 돌아온 우주인들은 격리돼 ‘달 바이러스’ 감염 체크를 받았고, 아무 이상이 없었다. 그들은 대대적인 환영행사에 참석하고, 25개국을 순방하며 연설을 했다.

아폴로 프로젝트를 돌아보면, 1호는 67년 1월 27일 모의 카운트다운 테스트를 하다가 화재로 우주인 세 사람이 모두 사망했다. 희생자는 머큐리 계획과 제미니 계획의 베테랑 거스 그리솜, 미국 최초의 우주 유영자 에드워드 화이트 2세, 그리고 신참자 로저 채피였다. 아폴로 2·3호는 아예 없었고, 아폴로 4·5·6호는 새턴Ⅴ형 로켓을 시험하는 무인비행이었다. 7호는 착륙선만 빼고 모든 것을 연습했다. 8호는 지구 궤도를 벗어나 최초로 달 궤도를 비행했다. 착륙선 대신 똑같은 무게의 짐을 싣고 발사됐다. 9호는 달 착륙 장비를 모두 싣고, 착륙에 필요한 랑데부와 도킹 테스트를 했다. 그리고 10호는 11호 발사 2달 전에 달 상공 9마일까지 접근했다 돌아왔다. 그러고 나서야 11호가 달 착륙에 성공한 것이다. 그때까지 총 240억 달러 예산이 투입됐다.

달 착륙과 암석 채취 결과로 달에 관해 여러 가지 과학적 사실들이 밝혀졌다. 달에는 생명체가 없다. 비(非)생명체의 유기화합물조차 없다. 월면 암석은 현무암·사장암·각력암의 세 가지가 있고, 사암·이판암·석회암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밖에 월면 암석의 나이가 32억~46억 년 사이인 것도 밝혀졌다.

이후 아폴로 12~17호가 달에 착륙했다. 모두 12명의 우주인이 달에 갔다. 13호는 산소탱크 회로 손상으로 위기에 처했다가 착륙을 포기하고 대신 달착륙선의 동력과 산소, 엔진을 이용해 기적적으로 무사히 지구로 돌아왔다.

한편 아폴로 11호가 성공적으로 발사된 다음 날인 69년 7월 17일, 뉴욕 타임스는 로켓 과학자 로버트 고더드에게 사과하는 사설을 실었다. 사설은 “고더드 박사의 실험이 ‘보다 발전된 실험과 조사’였다”면서 “17세기 아이작 뉴턴의 실험 결과를 확인해, 대기에서처럼 진공 상태에서도 로켓을 추진할 수 있다는 게 명백히 확인됐다. 뉴욕 타임스는(작용·반작용의 법칙을 잘못 해석하고 있던) 잘못을 후회한다”는 것이었다.

발단은 191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늘날 ‘미국 로켓의 아버지’로 불리는 고더드가 1919년 ‘초(超)고도에 도달하는 방법’이란 69쪽짜리 책을 출간했다. 책은 작용과 반작용을 이용하는 ‘로켓의 비행 원리’를 제시했다. 그러자 뉴욕 타임스는 1920년 1월 12일 사설에서 신랄하게 비판했다. “로켓은 공기를 박차고 나간다. 우주는 진공이라 박찰 공기가 없는데 어떻게 날겠는가”라고 비웃었다. 게다가 ‘고더드는 고등학교에서 배워야 할 지식도 없는 과학자’라고 조롱까지 했다. 69년 사설은 49년 전 사설에 대한 공식 사과였다.

2009년 7월 16일 아폴로 11호 발사 40주년을 기념해 세 우주인은 자신들이 탔던 사령선이 전시된 스미소니언 항공우주박물관에서 만났다. 그러나 NASA엔 더 이상의 달 탐사 계획이 없다. 우주왕복선 시대도 7월 8일 애틀랜티스호의 발사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우주 탐험의 역사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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