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악마는 샤넬을 입고 웃었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27호 27면

악마는 프라다 대신 샤넬을 입고 웃었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실제 모델로 알려진 패션지 보그 미국판 편집장인 안나 윈투어 말이다. 그가 지난 6일 프랑스 최고 권위의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를 받았다(사진). 지금까지 발렌티노(2006년), 조르조 아르마니(2008년), 랄프 로렌(2010년), 칼 라거펠트(2010년) 등 패션 디자이너가 이 훈장의 수훈자였다. 안나 윈투어의 수훈 이유는 ‘패션 발전에 공헌했다’는 것. 앞선 이들은 패션의 창조자라는 점을 떠올려보면 새삼 안나 윈투어가 대단하구나 싶다. 말 한마디로 디자이너를 살리기도 죽이기도 한다는 그의 막강한 영향력이 훈장으로 다시 확인된 것만은 분명하다.

스타일 인사이드

행사가 열린 엘리제궁에 모인 면면도 화려했다. LVMH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 샤넬의 칼 라거펠트, 베르사체의 도나텔라 베르사체, 이브생로랑의 스테파노 필라티, 랑방의 알버 엘바즈, 지방시의 리카르도 티시 등이 안나 윈투어를 축하하기 위해 참석했다. 이날 안나 윈투어는 푸른색 샤넬을 입었다. 그리고 방긋 웃었다. 별것도 아닌 두 가지가 레지옹 도뇌르 훈장보다 훨씬 흥미롭다.

‘핵 겨울(nuclear winter)’을 빗댄 ‘핵 윈투어(nuclear wintour)’라는 별명을 가진 그는 어지간해선 웃지 않는다. 패션쇼든, 윔블던 관중석이든, 영화 시사회든, 그가 나타날 때마다 파파라치들이 사진을 찍어대는데도 웃는 걸 볼 수가 없다. 한결 같은 단발 뱅헤어 아래 굳은 표정이거나, 커다란 선글라스로 그마저 가려버리는 경우가 태반이다. 오죽하면 올해 3월 뮈글러 패션쇼에서 ‘레이디 가가가 런웨이에 오른 모습을 보고 안나 윈투어가 웃었다’는 게 화제가 됐을까. 이랬던 그가 엘리제궁에서 찍힌 사진 속에선 방긋거리니 훈장이 좋긴 좋은가 보다.

옷 역시 언뜻 봐선 대수롭지 않다. 칼 라거펠트와 ‘절친’인 안나 윈투어는 샤넬을 수시로 입으니까. 하지만 이날은 좀 특별했다. 패션쇼에서 선보인 지 하루가 채 안 된 ‘초(超)신상’이었기 때문이다. 행사 하루 전, 파리에선 샤넬 오트 쿠튀르 쇼가 열렸다. 이 의상은 모델에게 입혀져 무대에 올랐고, 안나 윈투어는 맨 앞줄에서 쇼를 감상했다. 그렇다면 원하는대로 매일 새옷을 입는 안나 윈투어도 이날만은 ‘내일은 뭘 입으면 좋을까’ 고민하면서 쇼를 본 건 아닐까. 옷을 사고 또 사도, 매일 입을 옷이 없어서 고민하는 보통의 여자들처럼 말이다.

사르코지 대통령이 안나 윈투어의 옷에 핀을 꽂아 훈장을 달아주는 사진은 매체와 패션 블로그를 통해 퍼날라졌다. 여기엔 나름의 해석과 논평도 덧붙었다.

“(지난해에 참석했던) 브루니가 참석하지 않은 건 두 스타일 아이콘 중 누가 더 잘 입었는지 비교당하기 싫어서다” “그녀 말고도 레지옹 도뇌르를 받은 여성은 있지만 샤넬 오트 쿠튀르 의상에 (감히) 핀으로 구멍을 낸 건 안나 윈투어가 최초일 것이다.”

이 역시 레지옹 도뇌르보다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