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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엔진 꺼져야 대응책 논의할 건가 위험은 피하기보다 감수하고 관리할 대상”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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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7호 22면

불확실성의 시대다. 예측할 수 없었던 ‘블랙 스완’이 기존의 틀을 온통 뒤흔들어 놓는다. 특히 2000년대 이후 경영 환경이 급속도로 글로벌화되면서 기업은 충격이 크고,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는 위기에 자주 직면하게 됐다. 세계적인 컨설팅업체인 딜로이트의 전략·위기관리 전문가인 게라드 포스터(사진)는 “기업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려면 일정 수준의 위험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위험을 회피하려고만 들지 말고 평상시부터 관리하는 ‘지능화된 위험 관리(risk intelligence management)’ 기법을 도입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게라드 포스터 딜로이트 호주 최고전략책임자(CSO)

-위험 관리가 필요한 이유는.
“작은 위험을 그냥 방치했다가 두어 가지가 겹치면 예상치 못한 큰 손실이 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작은 위험들의 상관관계를 파악하는 것이다. 복잡한 현실에서 쉽지 않은 문제다. 그래서 구글 같은 경우는 ‘빨리 실패할수록 싸게 먹힌다(Fail quickly, fail cheaply)’며 실패를 장려한다. 이런 정책은 신기술 개발뿐 아니라 위험관리에도 대단히 효과적이다.”

-위험을 파악한 다음에는.
“최고경영자부터 윤리적 행동, 법규 준수 등을 강조하는 ‘위험 문화(risk cultu re)’를 만들어야 한다. 위험을 과장해 두려움과 불안을 키우라는 뜻이 아니다. 회계·내부통제·보안·인적자원 등에 정확한 규정을 만들고 그에 따른 성과를 측정해야 한다. 경영진과 구성원 간에 서로 합의된 기준이 없다면 오해의 여지가 생기고 그만큼 위험 관리에 실패할 수밖에 없다.”

-예상치 못한 사태가 자주 일어나나.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가 얘기한 ‘블랙 스완’이다. 일어날 가능성이 낮은 사건이 벌어져 세상을 뒤흔드는 것이다. 일본의 자동차업체가 큰 지진으로 원전이 멈추는 경우에 대비하거나 한국 전자업체가 유럽 국가의 디폴트 상황을 전제로 평상시 위험 관리를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99.9% 예상 가능한 상황에서의 위험보다 0.1%의 확률로 발생하는 위험이 더 파괴력이 크다. 이런 상황에 대한 대책까지 갖고 있다면 99.9%의 상황에서도 더 안정적인 대응이 가능할 것이다.”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경영진이 위험의 원인과 해결책을 실시간으로 알 수 있도록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지진이 난 뒤 일본 도쿄전력의 대응을 보면 내부 정보가 제대로 전해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평소에 대응방안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 비상 매뉴얼을 잘 만들어도 실제로 일이 벌어지면 허둥대기 마련이다. 원전이 위험에 처했을 때 직원들이 해야 할 일을 구체적으로 정하고, 일이 터졌을 때 스마트폰 등을 통해 각자에게 통보하는 시스템을 갖췄다면 초기에 혼란이 적었을 것이다. 담당 업무별로 ‘방화벽(firewall)’을 치는 것도 중요하다. 원전이나 금융업체에서 인센티브 제도를 만든 사람에게 위험 관리를 맡기면 안 된다. 수익을 더 내기 위해 안전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유연하면서도 명확한 매뉴얼이라니 모순처럼 들린다.
“조직 레벨에 따라 다른 원칙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날고 있는 여객기의 엔진 4개가 다 꺼졌는데 기장이 기내 방송으로 승객들에게 ‘어떻게 할까요?’라고 물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경영진은 ‘의원과 시민’ 모델에 따라 전체적인 방향을 잡으면 된다. 주권을 가진 시민이 나갈 방향을 정하고 국회의원이 대표로 이를 이끌어 가는 조직 모델이다. 중간관리층은 ‘건축가와 건설업자’ 모델에 따라 명확한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 이 레벨에서는 까다로운 리더(건축가)의 비전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조직원들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짜내야 한다는 의미다. 마지막으로 실행 조직에서는 ‘지휘자와 오케스트라’ 모델이 적합하다. 앞서 만든 청사진을 악보 삼아 정확하게 실행하면 된다.”

딜로이트는 최근 리더와 구성원의 성향에 따라 기업 유형을 여덟 가지로 나눴다. ‘의원과 시민’ 모델 등은 이 가운데 하나다. ▶임대주와 세입자 ▶장군과 군인 ▶지휘자와 오케스트라는 기존의 ‘명령과 통제’ 모델에 속하고, 나머지는 유연하고 순응적인 새로운 조직 모델에 가깝다. 재미있는 것은 스티브 잡스라는 창의적 리더의 성공으로 보는 ‘애플 신화’를 시장의 규칙을 강력하게 통제하고 여기에 동의하는 참여자들이 그 틀 안에서 능력을 발휘하는 ‘임대주와 세입자’ 유형으로 본 대목이다.

-위험관리에 적합한 조직이 있나.
“경영 이론가들은 ‘명령과 통제’ 모델이 유효기간이 지났다고 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관리와 권위가 필요한 비상시에는 대단히 효과적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상황에 따라 둘 다 활용할 필요가 있다. 창의성을 중시하는 세계적인 디자인 컨설팅업체 아이디오에서 회의 도중 화재경보기가 울렸다고 상상해 보자. 평소에는 ‘프로듀서와 제작팀’ 모델에 따라 개성대로 움직이던 직원들이라도 ‘지휘자와 오케스트라’ 식으로 소방 담당자의 지시에 따라야 한다.”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조직 형태는.
“현대 기업에는 ‘건축가와 건설업자’ 모델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인도 타타그룹의 라탄 타타 회장은 2003년 오토바이 값으로 온 가족이 탈 수 있는 차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이런 비전에 공감한 엔지니어들은 갖가지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결국 6년 만에 10만 루피(240만원)짜리 ‘타타 나노’가 빛을 보게 됐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인 게라드 포스터는 포체프스트룸대에서 경영학 석사(MBA)를 받은 뒤 24년째 딜로이트에서 일하고 있다. 현재 딜로이트 호주 지역 최고전략책임자(CSO) 겸 아시아·태평양 컨설팅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8가지 기업 유형을 다룬 하나 되는 힘, As One에 공동저자로 참여했다. 미국 아마존에서 베스트셀러가 됐던 이 책은 최근 국내에서도 번역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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