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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 생장의 비밀 해독, 온난화·에너지 위기 해결한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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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7호 11면

지난달 29일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 대학ㆍ대학원 학생들의 연구 활동을 지원하는‘LG 글로벌 챌린저’ 발대식이 있었다. 선발된 30개 팀 가운데 특별히 눈에 띈 게 경북대 팀의 미국 로런스 버클리국립연구소 인공광합성센터(JCAP) 방문 계획이다. 이 연구소는 요즘 전 세계 과학계가 가장 주목하는 곳이다.

중앙SUNDAY 창간 4주년 기획 10년 후 세상 <16> 인공 광합성

JCAP는 ‘탄소 사이클 2.0(Carbon Cycle 2.0)의 시대’라는 이름 아래 인공나무 숲에서 나오는 액체연료를 넣은 무공해 자동차가 달리는 멋진 신세계를 그리고 있다. 에너지의 생산 개념을 완전히 바꿀 구상이다. 그 중심에는 태양과 이산화탄소(CO2)의 새로운 순환이 자리 잡고 있다.

이산화탄소는 순환형 자원
태양(빛) 에너지를 이용하기 위한 연구는 크게 보면 세 가지 방향에서 전개되고 있다. 첫째는 이미 실용화되고 있는 태양전지. 둘째는 광촉매로 물(H2O)을 산소(O)ㆍ수소(H)로 분해해 나온 수소를 연료전지 등에 쓰는 것. 셋째는 식물의 광합성처럼 광촉매로 이산화탄소를 환원해 메탄올(CH3OH) 등의 연료를 만드는 방법이다. 이것이 바로 인공광합성이다.

이산화탄소는 지구온난화의 원흉으로 낙인 찍혔지만 자연계에선 식물에 흡수돼 모든 생명을 키우는 중요한 ‘순환형 자원’이다. 이산화탄소를 환원해 이용 가능한 에너지 자원으로 변환하면 지구온난화와 에너지 고갈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 이미 지구상의 석유는 절반 이상 사라졌고, 대기 중에 이산화탄소는 계속 쌓이고 있다. 과학자들이 이산화탄소 환원을 에너지 고갈과 온난화에 대비하는 해법이라고 여기는 이유다. 이로부터 얻어지는 메탄올 같은 물질은 전기와 수소에 비해 보존ㆍ수송이 쉽다.

식물이 태양광을 이용해 물ㆍ이산화탄소로부터 산소와 포도당(C6H12O6)을 만들어 내는 광합성은 과학자가 꿈꾸는 이상(理想) 반응이다. 인공광합성에서는 이 과정에서 수소뿐 아니라 메탄올도 얻을 수 있다. 식물의 광합성을 인공적으로 재현하는 연구는 미국 에너지부,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 일본 문부과학성 등에서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노벨상을 받은 네기시 에이이치 미 퍼듀대 특별교수는 올 들어 과학자들의 지혜를 모아 인공광합성을 실현하겠다고 나섰다. 네기시 교수를 특별 초청교수로 초빙한 홋카이도대학엔 일본 전역에서 100여 명의 화학자가 모여들었다. 대학 측은 이 연구 테마를 통해 노벨상 수상자를 내겠다는 야심을 갖고 있다.

광합성을 인공적으로 재현하는 걸 목표로 하는 연구의 역사는 길다. 20세기 들어 줄곧 식물에서 어떤 반응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탐구하는 연구가 계속돼 왔다. X선에 의한 분석이 성공한 1985년 이후에는 상세한 구조 해명이 이뤄졌다. 식물 세포 1개에 100개 가까이 있는 엽록체 안에 ‘틸라코이드’라고 하는 원반 모양의 조직에 모여 있는 거대한 단백질 합성체가 광합성의 거점이 되고 있다는 것이 거의 밝혀졌다. 합성체에서는 빛을 받아 물을 분해하고 전자를 방출하는 단계, 포도당의 원료 합성에 필요한 전자를 운반하는 단계, 포도당 합성 원료를 만드는 단계, 포도당 합성을 위한 에너지원(ATP)을 만드는 단계, 이산화탄소와 에너지원 및 원료를 사용하여 포도당을 합성하는 단계(칼빈 회로) 등 모두 5단계의 반응이 일어난다.

두께가 불과 약 6나노미터(1나노미터는 10억 분의 1m)밖에 안 되는 틸라코이드와 엽록체 내의 ‘스트로마’라는 공간에 반응이 일어나 마치 나노공학을 구사하는 정밀공장과 같다. 광합성이 종료되면 포도당은 식물의 열매 등이 된다. 이런 연구결과를 토대로 광합성을 인공적으로 재현하려는 연구가 진척되고 있다. 예를 들면 오사카대학은 전자의 운반에 적합한 분자를 중심으로 지금까지 120종류 이상의 인공광합성용 유기재료를 합성해 왔다. 어떤 재료를 어떤 수순으로 조합하면 좋을지 검토하는 단계다. 수년 내 광합성을 모방한 원리적 수준의 반응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도쿄대는 포도당 합성이 가장 어려운 반응이라는 점에 착안해 대체 원료물질을 찾고 있다. 구조가 간단하고 폭넓게 화학원료로 사용될 수 있는 물질을 합성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광합성 변환효율 높이는 게 관건
문제는 인공광합성 반응의 효율이다. 식물의 경우 광합성의 에너지 변환효율은 30~34%로 매우 높은 편이다. 합성한 유기재료로 광합성의 일부 반응을 흉내 내면 효율은 0.1% 전후에 머문다. 자연계가 만들어낸 정교한 반응에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 인공광합성이 5~10년 사이에 실현될 만큼 쉬운 테마는 아니다. 도쿄공업대학은 지난해 노벨상 대상이 된 ‘크로스 커플링 반응’(탄소를 자유자재로 결합하는 기술)같이 의약품 원료 등을 합성할 수 있는 새로운 반응을 광합성 연구에서 찾고 있다.

광합성을 모방한 다른 기술도 나오고 있다. 무기질 반도체를 사용한 물의 분해, 색소반응 태양전지와 유기박막 태양전지에 의한 발전도 넓은 의미에서 광합성의 원리를 활용해 실용화가 가까워진 성과들이다. 광합성 세균의 능력을 인공적으로 높이는 생명공학 기법도 유망하다.

지구온난화 억제대책의 관점에서 화학 반응뿐만 아니라 다른 연구도 잇따른다. 국내에선 2009년 9월 서강대가 교육과학기술부 기후변화대응 기초ㆍ원천기술 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인공광합성연구센터(소장 윤경병 화학과 교수)를 열었다. 교과부로부터 10년간 총 500억원의 연구비를 지원받는다. 미국 로런스 버클리국립연구소와 공동으로 연구를 진행 중이다. 또 지난해 8월부터는 POSCO와 함께 인공광합성 실용화 공동연구를 시작했다. 서울대ㆍKAIST 등도 뒤따르고 있다. 지난 1월에는 KAIST의 강정구 교수 연구팀이 이중 금속으로 구성된 다전자 광촉매 물질을 합성해 인공광합성 기술을 구현해내는 데 성공했다. 강 교수의 연구 결과는 에너지 환경분야의 권위지인 ‘에너지 앤드 인바이런먼털 사이언스’지 온라인판에 게재됐다.

그는 “이 연구는 태양광 아래에서 수소와 같은 청정에너지를 생산하는 기술로 활용할 수 있다”며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를 저감시킬 뿐 아니라 석유 자원을 대체할 길을 열어 놓았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 6월 초 JCAP는 캘리포니아의 파사데나 인공광합성센터에 이어 버클리에 두 번째 인공광합성센터를 개설했다. 미국 에너지부의 ‘에너지 이노베이션 허브’ 프로그램의 핵심 사업이다. 5년간 1억2000만 달러를 들여 인공광합성을 태양연료 기술의 새로운 이정표로 만들겠다는 목표다.

“10년 후에는 인공광합성의 에너지 변환효율이 3%를 넘고, 사막지대나 해안가를 활용해 전 세계 화석연료의 1~2%를 대체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50년 후에는 화석연료의 50%를 대체해 완전히 다른 세상을 만들 것이다.” 윤경병 교수의 말이다.

지금부터 10년간은 ‘3%의 승부’다. 이 분야에서 한국과 미·일·중, 독일ㆍ러시아 등이 지구적 과제를 놓고 한편으로 협력하고, 다른 한편으론 경쟁을 펼치는 묘한 연구체제가 가동되고 있다. 인공광합성은 “식물이 하는 데 인간이 못할 리 없다”는 과학자들의 자존심에서 출발한 세기적 프로젝트다. 나노·바이오 공학 등 넓은 분야에 걸쳐 쏟아져 나올 부수적인 연구 성과도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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