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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이수성 골프 회동, 야권 공조 깨려는 작전 아닌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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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7호 12면

1996년 10월 25일 DJ는 외신기자들과 만나 “차기 대통령 선거에서 야권 단일 후보가 나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같은 시각, 이수성 총리는 국회에서 내각제 개헌을 할 수도 있다는 발언을 했다. [중앙포토]

지금은 좀 뜸하지만 1990년대에는 정치인들의 골프 회동이 화제였다. 함께 식사를 하고, 잠을 자고, 운동을 하면 친구가 된다는 말이 있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겠지만 정치인들에게 골프 회동은 효과 만점이었다. 대여섯 시간을 함께 걸으며 대화를 나눌 수 있고, 도청당할 걱정이 없는 데다, 기자들이 온갖 상상력을 동원해 다양한 해설 기사까지 써 주니까 말이다.

[장성민 전 의원 인간 金大中이야기<21>] ‘내각제 개헌’ 발언 소동

대표적인 게 89년 당시 통일민주당 총재였던 YS(김영삼 대통령)와 신민주공화당 총재였던 JP(김종필 자민련 총재)의 골프 회동이다. 신문에는 평소 골프를 잘 안 치던 YS가 헛스윙을 한 뒤 JP와 파안대소하는 사진이 일제히 나갔다. 둘이서 골프를 치며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는 추측만 무성했다. 나중에 밝혀졌지만 이날 회동이 바로 3당 합당으로 가는 첫걸음이었다. DJ는 골프를 안 쳤다. 다리가 불편한 이유도 있었지만 DJ는 골프가 너무 비싸고 시간을 많이 뺏긴다면서 측근들에게도 그 시간에 공부를 하라고 했다.

96년 10월 20일, 이수성 총리와 JP가 경기도 용인 은화삼 골프장에서 골프를 쳤다. 김수한 국회의장과 자민련 이정무 총무도 함께 라운드를 했다. 그때까지 DJP는 ‘찰떡 공조’라는 평가를 들으며 잘 진행되고 있었다. 서로 섭섭해하거나 불만이 오고 간 게 하나도 없었다. 그러던 차에 갑자기 JP가 신한국당 차기 대선주자 중 하나로 거론되던 이 총리와 골프를 나간 것이다. 게다가 당시에는 YS가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골프 금지령을 내린 상태였기 때문에 더더욱 이해하기 어려웠다.

동교동에선 “JP가 우리 쪽에 일언반구도 없이 이 총리와 골프를 치는 건 DJP에서 이탈하겠다는 신호 아니냐”는 분노 섞인 불만이 터져 나왔다. “대통령이 골프를 치지 말라고 했는데 총리가 대통령으로부터 허락도 안 받고 그걸 깰 수 있겠느냐. 이 총리가 뭔가 미션을 받은 게 분명하다”는 분석도 있었다.

분위기가 이상하자 골프 행사에 참가했던 이정무 총무가 무마에 나섰다. “선진국 모임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을 앞두고 이 총리가 JP 총재께 야당의 협조를 당부하기 위해 자리를 만들었을 뿐”이라는 것이었다. 이 총무는 “골프는 골프고 정치는 정치다. OECD 가입이 시기상조라는 야당의 입장은 달라진 게 없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자민련 안택수 대변인은 기자들과 만나 “상당히 의미 있는 일”이라며 다른 뉘앙스의 해석을 했다. 성동격서(聲東擊西)라더니, 같은 당에서조차 다른 신호가 나오니 JP의 진의가 뭔지에 대해 더 의구심이 갔다. 신한국당 강삼재 사무총장은 불난 집에 부채질을 했다. “JP와 이 총리의 골프회동은 좋은 일이다. 아주 신선하고, 정국의 긴장완화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때리는 시어미보다 더 미운, 말리는 시누이 격이었다.

DJ는 우려를 표시했다. “이번 골프회동이 야권 공조를 깨려는 여권의 치밀한 시나리오에서 나온 것이 아닌지 깊은 의구심을 갖고 살펴볼 필요가 있어요.” 사실 DJ는 항상 살얼음판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JP가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입장을 바꿀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포 한신코아 사무실, ‘밤섬’에서 DJ가 물었다. “이봐, 장 동지. 이 시점에서 JP가 왜 이수성 총리와 골프를 하지? 이게 나와의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것으로 봐요, 아니면 실제로 JP의 마음이 변하고 있는 것으로 봐요?” “YS가 내각제 개헌을 감행한다면 모르겠지만 그게 아닌 한 JP의 몸무게 늘리기 행보일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그런데 말이야, 지금 야권공조를 탄탄히 해도 모자랄 판에…. 아무튼 정확한 사정을 알아보세요.”

골프회동 닷새 뒤인 10월 25일, DJ는 이날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외신기자 간담회를 했다. 이양호 국방부 장관과 린다 김의 스캔들과 관련해서였다. DJ는 “김영삼 대통령은 부패한 사람을 안보책임자로 임명한 데 대해 책임을 느끼고 사과해야 한다. 군 인사의 난맥상과 무기구입 과정의 유착의혹을 밝히기 위해 국정조사가 필요하다”고 맹공을 퍼부었다. 기자들이 차기 대선에서 야권 단일 후보가 나올 수 있는지에 대해 물었다. DJ는 “내년 중반께나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DJ가 기자회견을 하던 바로 그 시각, 국회에서는 이수성 총리가 내각제 발언을 했다. 이 총리는 “책임정치 실현과 지역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내각제가 좋은 탈출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내각제 개헌을 할 수도 있다는 얘기였다. DJ의 입장에선 야권 단일 후보는 고사하고 자칫하면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될지도 모를 판이었다. 밤섬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이 총리의 발언 소식을 들은 DJ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YS는 그동안 개헌을 반대했는데, 이 총리가 저런 얘기 하는 게 YS와의 합의 없이는 나올 수 없는 게 아닌가요. 도대체 어떤 의도로 저런 발언을 했는지 자세히 알아봤으면 좋겠어요. 청와대 쪽도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아보세요.”

정치에 대한 DJ의 지론 하나가 있다. 정치는 50%가 돈이고, 나머지 50%는 정보라는 것이다. DJ가 정보를 얻는 가장 큰 소스는 신문이었다. 거의 열 개 가까운 신문을 구독하는데, 아침에 눈뜨면서 시작해 이동하는 차 안에서도 시간을 쪼개가며 구석구석 열심히 읽었다. 남들은 그냥 스쳐 지나가는 단신 기사를 보면서도 혹시 그게 여론의 변화를 반영하는 게 아닐까 신경을 곤두세웠다. DJ가 워낙 새로운 정보에 목말라하니 측근들은 항상 귀를 열고 주변의 얘기를 경청해야 했다. 새롭고 의미 있는 소식이 있어야 DJ와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개헌에 대한 YS의 생각이 뭔지를 청와대에 있는 소식통들에게 탐문했다. 당시 YS의 생각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누구보다도 막내아들 현철씨인 게 분명했다. 그래서 정치권에서 현철씨와 친한 인사들을 수소문해 이러저러한 인맥을 통해 만났다. YS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대략의 윤곽을 알 수 있었다.

소식통들은 YS가 개헌을 할 생각이 없고, 내각제 개헌은 더더욱 꿈도 안 꾼다고 말했다. 남북이 대치하는 상황에서는 대통령제가 유지돼야 한다는 게 YS의 소신이라고 했다. “이수성 총리의 발언은 YS의 뜻이 아니고, 여당 내에서 조율된 내용도 아니며, 그저 이 총리 본인의 생각일 뿐”이라는 얘기였다.

그렇게 보고를 하자 한참을 생각하던 DJ가 나에게 지시했다. “아무래도 이번 기회에 내각제에 대해서 연구를 좀 해봐야겠어요. 학계 사람들은 뭐라고 하는지 좀 알아보세요.”

헌법학 권위자인 연세대 허영 교수와 서울대 이정복·한상진 교수 등의 신문기고와 강연 내용 등을 참고했다. 허 교수는 “지금의 개헌론은 제도개선 차원에서 논의되는 게 아니라 특정 정치인들의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동기 자체가 불순하고 국민 공감대도 없다. 따라서 개헌 논란은 무의미하다. 다만 3김 시대가 끝나면 순수한 동기에서 내각제와 4년 중임제를 세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었다. 이정복 교수는 “개헌을 놓고 왈가왈부하는 자체가 개헌론을 활성화하니 아예 얘기를 하지 않는 게 낫다”며 더 부정적이었다. DJ로선 기뻐할 얘기였다. 그러나 한상진 교수는 “(개헌은) 각 정파가 제도개혁에 대한 합의를 도출할 수 있다면 정치발전의 분기점이 될 수도 있다. 대통령의 리더십을 저하시키지 않고 권력을 분점하는 화합 시스템을 생각해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런 내용을 보고받은 DJ가 말했다. “다른 헌법학 교수들과 오찬 회동을 하면서 의견을 들을 테니 자리를 마련하세요.” DJ는 아예 이번 기회에 내각제에 대해 확실하게 공부를 해 두겠다고 작정한 것 같았다. 논리를 앞세우는 DJ로선 JP와의 연대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라도 그게 필요했다. 이수성 총리의 내각제 개헌 발언은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났지만 정작 그 효과는 DJ에게 나타난 셈이었다. DJ와 만난 교수들의 이름은 그들과의 약속에 따라 공개하지 않겠다. 약 열흘 동안 DJ는 10여 명의 교수를 조찬·오찬을 해가며 부지런히 만났다. 11월 초께 ‘내각제 공부’를 마친 DJ가 말했다. “독일의 대륙형 내각제가 가장 좋은 형태 같아요. 서독은 1969년부터 82년까지 사민당의 빌리 브란트와 슈미트 총리가 자민당과 연립해서 보혁(保革) 정권을 만들지 않았어요? 독일은 또 내각제지만 통일을 이뤘다는 점에서도 우리가 불가피하게 내각제 개헌을 해야 한다면 독일 모델이 좋겠어요.”

정부가 의회에 대해 우월성을 지니고, 연방총리 불신임안도 의회 과반수의 발의가 있어야 하는 등 독일이 상대적으로 정치가 안정돼 있다는 점도 DJ의 관심을 끈 것 같았다. 독일에선 차기 총리를 먼저 뽑고 현 총리를 해임해 국정공백을 최소화한다는 사례도 들었다. 그런 점을 높이 산 것이다. 나중에 DJ는 JP와 내각제 합의를 할 때 아예 ‘독일식 내각제’라는 문구를 집어넣었다. 미리 내각제 공부를 하면서 JP와 협상을 하게 되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연구해 둔 것이다.

이수성 총리의 개헌 발언 파장은 정작 대통령인 YS가 시큰둥하자 곧바로 사그라졌다. DJP호는 다시 항진하기 시작했다. 11월 8일 경기도 오산시장 보궐선거가 실시됐다. 이번에도 국민회의는 후보를 내지 않았다. 자민련의 유관진 후보를 밀었다. 보궐선거인데도 투표율은 43.1%로 꽤 높았다. 유 후보가 전체의 38.5%를 얻어 승리했다. 노원구청장 선거에 이어 두 번째였다. DJ와 JP가 손잡으면 무조건 이긴다는 걸 보여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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