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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범의 세상사 편력] 진리는 좌우 어느 한쪽에 있는 게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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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범
중앙일보 j에디터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즐기진 않지만 ‘관전자’로서 들여다봅니다. 새삼스러운 관전평을 굳이 하자면, 페이스북은 사교공간의 성격이 짙은 반면, 미디어적 특성은 트위터가 훨씬 강한 것 같더군요. 잘나간다는 사람들의 자기 광고, 어떠한 이념 또는 주장들의 프로파간다가 트위터에 두드러지더란 얘깁니다. 그래선지 트위터에 더 눈이 갑니다. 일종의 직업병입니다.

 그렇게 눈동냥하는 트위터에서 얼마 전 몇 가지 흐름을 봤습니다. 한진중공업 크레인 점거 농성과 제주도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반값 등록금에 대한 언급들이 특히 눈에 띄더란 말입니다. 점거 농성을 실시간 중계하고 지지와 관심을 호소하는 글들, 기지 건설 시공사와 주민들 사이의 마찰을 중계하고 입지의 부당함을 역설하는 글들, 반값 등록금 시위를 중계하고 실현을 촉구하는 글들이 좁은 스마트폰 화면에 차고 넘쳤습니다. 개중에는 포털 사이트의 실시간 검색 순위를 올리려고 독려하는 모습도 있더군요. 구체적 방법까지 알려주면서 말이지요.

 하지만 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따로 있었지요. 각기 다른 공간에서 서로 무관한 사람들에 의해 독립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인데도 지지자들끼리 서로 연대가 형성되더란 말입니다. 점거 농성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해군기지 건설도 반대하고, 또한 반값 등록금 실현을 목청껏 외치는 식이었지요. 현장에서 사진을 찍고 팩트를 공급하는 적극적 주체들뿐 아니라 그저 트위터 안에서 의견을 표명하는 소극적 지지자들까지 하나로 묶는 단단한 끈이 보였습니다.

 트위터 사용자들이 주로 젊은층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닐지 모릅니다. 그들이 지지하고 ‘리트윗’을 해대는 이슈들이 이른바 좌파진영에서 추구하고 있는 가치들이니까요. 일방적 정리해고 반대, 환경 파괴 반대, 무상급식과 반값 등록금 실현 같은 것들 말입니다. 일반적으로 좌파는 이상을 수호하려고 합니다. 우파는 효율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지요. 젊은 나이에는 이상 쪽으로 쏠리기 마련입니다. 또 그래야 합니다. 뜨거운 젊은 피가 계산기만 두드리고 있다면 혁신과 개혁을 기대하기 어렵겠지요. 좌파에 ‘진보’란 멋진 타이틀이 수식어로 따라붙는 것도 다른 이유가 아닙니다.

 그렇지요. 대책 없는 실업은 자칫 삶의 파괴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환경 파괴는 좌우를 떠나 인류의 재앙입니다. 값싼 등록금으로 배우고 싶은 만큼 누구나 배울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보기에는 좋지만 그렇다고 좌파가 늘 옳은 영역에 있는 건 아닙니다. 일감이 없어도 근로자를 줄일 수 없다면 결국 전체 근로자들이 일자리를 잃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습니다. 환경 보호를 위해 댐을 건설하지 않았을 때 수재를 입는 건 저지대의 서민들입니다. 허울뿐인 대학을 국민 세금으로 연명시킨다면 결국 피해를 보는 건 학생들입니다.

 이처럼 좌파와 우파의 대립은 곧 선과 악의 대립이 아닙니다. 진실과 거짓의 대립도 아닙니다. 그것은 각기 다른 역사와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양쪽 진영의 정치적 견해가 충돌하는 것뿐입니다. 이상이냐 효율이냐 무엇을 우선하느냐의 문제인 겁니다. 서로 조금씩만 양보하면 함께 갈 수 있다는 말입니다. 좌파의 국가사회주의, 우파의 극단적 자유주의, 이런 걸 내려놓으면 됩니다. 그런 양보와 타협을 딛고 민주주의는 발전하는 겁니다.

 좌파는 이상, 우파는 효율성을 추구한다고 했지만 항상 그런 것도 아닙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권력을 쥔 쪽은 필연적으로 효율성을 추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제는 국가 경영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권력에서 밀려난 쪽은 아무래도 이상 또는 이타심에 호소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자신들이 하던 주장을 여야 입장이 바뀌었다고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뒤집는 우리네 정치 현실이 이런 불편한 진실을 잘 말해줍니다.

 이런 걸 생각한다면 우리 젊은이들이 한쪽으로 쏠릴 이유가 없습니다. 진리가 좌우 어느 한쪽에 있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교육부 장관까지 지낸 프랑스 철학자 뤽 페리는 “인심이 후한 우파 인간과 머리가 영리한 좌파 인간 사이에는 차이가 없다”고 말합니다. 이 말이 전적으로 옳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한가지만은 분명합니다. 뜨거운 가슴과 차가운 머리가 항상 따로 노는 것만은 아니란 사실 말입니다. 한 몸에서도 가능한 겁니다. 또한 그래야 합니다. 가슴은 한없이 달구되 냉철한 눈을 감지 마세요. 한쪽으로 쏠리지 말아야 똑바로 설 수 있는 겁니다.

이훈범 중앙일보 j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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