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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엔 못 밟았지만 … 후쿠시마 희망을 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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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14일 후쿠시마현 고오리야마의 가이세이잔 경기장에서 치러진 고시엔 지역예선전에 나선 3개 고교 연합팀 소소렌고(相雙聯合) 소속 선수들이 1-8, 7회 콜드게임으로 경기를 마친 뒤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들은 인근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로 상당수 부원이 지역을 떠나는 바람에 단독 출전이 힘들어지자 연합팀을 만들었다. 이들의 야구에 대한 열정은 일본인들이 잊고 지냈던 ‘굴하지 않는 의지’를 일깨우고 있다. [지지통신 제공]


점수는 1대 8. 7회 콜드게임 패. 같은 야구팀이라고는 하지만 유니폼도 제각각인 선수들. 그러나 야구에 대한 열정, 고난을 이겨내야 한다는 굳은 마음만은 하나였다. 14일 일본 전국 고교야구 대회인 고시엔(甲子園) 후쿠시마 지역 예선전에서 펼쳐진 감동의 드라마가 일본 전역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이 야구팀은 ‘소소렌고(相雙聯合)’. 지난 3월 쓰나미로 방사성물질 누출 사고가 발생한 도쿄전력 후쿠시마(福島) 제1원전 반경 30㎞ 안에 있는 3개 공립 고등학교 야구부원들로 결성한 연합팀이다.

 세 학교의 선수들은 올해 초까진 꿈의 무대인 고시엔에 서기 위해 땀 흘리며 훈련하고 있었다. 하지만 3·11 동일본 대지진은 그들의 꿈을 송두리째 앗아갔다. 후쿠시마 제1원전 폭발 사고로 인근 주민들에게 대피명령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원전에서 5㎞ 떨어진 후타바소요(双葉翔陽)고교와 10㎞ 떨어진 도미오카(富岡)고교는 주민 대피령이 떨어진 지역 내에 있었다. 원전에서 약 25㎞ 떨어진 소마(相馬)농고는 긴급 시 피난준비구역으로 분류됐다.

후타바소요고교 야구팀은 5명이 타지로 전학을 떠나면서 14명으로 줄었다. 소마농고는 2명, 도미오카고교는 1명의 선수만 후쿠시마현에 남았다. 단독 출전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러자 후타바소요고교의 핫토리 요시히로(服部芳裕·52) 감독과 이 지역 교육위원회가 3개교 연합팀 결성을 제안했다. 다시 희망이 생겼다. 5월 29일에 연합팀을 결성한 이들은 경기에선 각 학교를 대표한다는 뜻에서 기존의 유니폼을 그대로 입되 ‘相雙’라는 팀이름을 새겨 넣은 모자로 통일을 기했다. 이들은 7차례에 걸쳐 합동연습을 했다. 후쿠시마현 내 아다치히가시·오노고교 운동장이 비는 주말 시간을 이용했다. 서로 수십㎞씩 떨어져 있어 1~2시간씩 이동해야 모일 수 있었다. 방사선량이 시간당 3.8μSv(마이크로시버트)를 넘는 날에는 운동 허가가 나지 않았다. 비가 오면 피폭 대비 의무규정에 따라 고무장갑을 껴야 했다. 선수들은 이 모든 불편을 야구에 대한 열정 하나로 감수했다.

 14일 기타카타(喜多方)고교와의 예선 1차전이 펼쳐진 후쿠시마의 고오리야마(郡山)시 가이세이잔(開成山)구장의 응원석에는 다른 학교로 뿔뿔이 흩어졌던 세 학교의 전교생이 모두 모였다. 쓰나미로 숨진 야구선수 아들의 사진을 들고 응원에 나선 어머니의 모습도 보였다.

 0대8의 점수로 맞은 7회 말 원아웃 상황. 무안타 무득점으로 콜드게임패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도미오카고교에서 혼자 참여한 4번타자 나카무라 고헤이(3학년)가 비장한 표정으로 타석에 나타났다. 그는 안쪽으로 날아오는 강속구를 힘껏 때렸고, 공은 크게 원을 그리며 좌측 펜스를 넘어갔다. 홈런이었다. 곧이어 타석에 선 두 선수도 연속 안타를 날리며 응원석을 뜨겁게 했다. 하지만 추가 득점을 하진 못했다.

 경기를 마친 선수들은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지진과 원전 사고 때문에 함께하지 못한 동료들의 몫까지 뛰었다는 긍지, 상황이 아무리 어려워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다는 자부심의 눈물이었다. 주장 엔도 쓰요시(遠藤剛司)는 “마지막 1점은 우리 팀 전체가 땀 흘려 노력한 결실이다. 최고의 야구인생을 경험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도쿄=박소영 특파원

◆고시엔=일본 최고 권위의 고교야구선수권대회다. 4000개가 넘는 전국 고교야구팀의 왕중왕을 뽑는다. 매년 6~7월 지역 예선을 거쳐 선발된 1위 팀이 8월에 열리는 본선에 진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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