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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탐구] 하드고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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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멸의 미학'이 일본인 특유의 것임을 염두에 둔다면 수십년간 일본의 상업 애니메이션사 속에서 거의 언제나 화면의 일부를 장식해온 폭력이 80년대 하드 고어 애니메이션의 장르적 출현을 예고하고 있었음을 알 수가 있다.

극장용 장편으로 한국에서도 유명한 〈세기말 구세주전설 북두의 권〉이 발표된 80년대 중반은 하드고어 애니메이션에 있어 괄목할 만한 시기이다.

〈강식장갑 가이버〉와 〈요수도시〉도 모두 그 무렵에 극장에서 공개 되었기 때문이다. 먼저 〈세기말 구세주 전설 북두의 권〉은 본래 1984년 시작된 'TV 시리즈'를 원작을 새로운 각도에서 정리하여 제작한 아시다 토요오감독의 애니메이션이다.

핵전쟁후의 무법 세계를 무대로 실사영화에서는 불가능한 전대미문의 폭력 격투 액션과 스플레터를 선보인 '아시다 '감독은 그밖에도 예의 〈강식장갑 가이버〉에 참여하였고 '키쿠치 히데유키'원작의 〈흡혈귀 헌터D〉를 감독하였다. '다카야 요시키'의 인기 만화에 근거하여 '와타나베 히로시'감독이 1986년에 만든 극장용 애니메이션 〈강식장갑 가이버〉는 3년 뒤 '이시구로 코이치'에 의해서 OVA용으로 다시 제작되었는데 '크로노스' 비밀결사와 그에 대항하는 주인공 소년의 처절한 결투를 주된 내용으로 하고 있다.

조아노이드라고 불리는 생물학적 돌연변이 괴물들의 사지절단이 속출하며, 속편에서는 주인공이 '조아노이드'로 개조된 아버지를 알아보지 못하고, 죽이는 결과가 보여준다.

또한 인기작인 '코이케 카즈오'의 하드 액션만화들을 원작으로 한 비디오 애니메이션도 여러편 제작되었는데, '데자키 사토시'가 감독한 '기즈오이비토'시리즈가 1987년에 나오기 시작했고, 더 뒤에 애니메이션화된 〈크라잉 프리맨〉 시리즈는 최근 실사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것들은 그 대결구도가 주로 인간 대 인간이라는 점에 있어서 〈세기말 구세주전설 북두의 권〉 같은 부류의 하드 고어 액션으로 분류될수 있다면 '나가이 고'원작의 대표적인 하드 고어 〈데빌맨〉은 〈강식장갑 가이버〉에서처럼 괴물들과 싸우는 변신영웅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어서 호러 액션쪽에 보다 가깝다.

나가이는 사실 TV시리즈인 〈마징가Z〉의 원작자로서 훨씬 더 유명한데, 1990년작 〈데빌맨〉은 그것과 극히 대조적으로 악마를 쓰러뜨리기 위해 스스로 악마가 된 주인공의 무참한 살상과 파괴행위를 묘사하고 있다.

60년대말 태즈카의'무시 프로덕션'에서 출발하여 유명 애니메이션 작품들의 메인 스탭으로 활동하다가 1984년 〈SF 신세기 렌즈맨〉 으로 감독 데뷔한 '가와지리'는 당초 OVA용 애니메이션으로 발표했던 〈요수도시〉가 높은 인기를 얻자 1987년 극장공개까지 하게 되었다.

〈요수도시〉의 신비주의적 하드 고어는 리얼한 연출과 정돈된 영상미에 의해 화려한 스플래터 호러의 세계를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더욱이 같은 해에 가와지리는 '린 타로'및 '오토모 카츠히로'와 함께 참여한 〈미궁물어〉 중 두 번째 이야기인 〈달리는 사나이-87年〉를 통해 하드보일한 분위기의 독보적인 영화세계를 점차 확고히 해 나갔다. 이후로도 그는 악마의 부활을 저지하려는 주인공들의 사투를 그린 '키쿠치'원작의 〈마계도시 신주쿠-88年〉 그리고 미래세계의 강력범죄를 소재로 한 〈미드나잇 아이 고쿠-89年〉와 〈사이버시티 오에도808-90年〉등의 비디오 애니메이션 작품들을 꾸준히 제작하였다.

이처럼 하드 고어 호러와 액션장르에 있어 영화작가로서의 위치를 견지해온 가와지리는 1993년에 시대극의 최고 걸작이 된 〈수병위인풍첩-93年〉을 공개하였으며, 거기에서 원작과 감독 캐릭터 디자인 이라는 1인4역을 수행하였다.

시대극 장르라는 점에서 이 작품이 나오기전에도 데자키 오사무 감독의 〈수라지 개천 마검-시켄몬의 사나이-90年〉라는 '에로틱 하드 고어'가 발표된 바 있으나 별 관심을 모으지는 못했다.
그 당시까지 주로 현대와 근 미래를 시간적 배경으로 설정하는 것에서 중세 일본의 에도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 가와지리는 〈수병위인풍첩〉을 통해 상상하기 힘든 하드고어 액션과 스플레터의 극치를 창조적으로 연출해냈다.

여기에서 스플래터무비라는 말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가기로 하자.

스플래터무비는 화면을 온통 피바다로 만드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스플래터무비에 주로 등장하는 살인마로는 좀비 등이 있다. 좀비가 나오는 스플래터무비는 워낙 많아 따로 '슬랩스틱 스플래터무비'라고 명칭도 가지고 있다. 또한 슬랩스틱 스플래터무비는 한번 접해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가 어렵겠지만, 눈뜨고 볼수 없는 처참함에도 불구하고 웃긴 대사와 행동을 보여준다.

스플래터무비는 질적 양적 잔인함으로 미국에서 X등급을 맡고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국내에서는 접하기가 힘들다.
스플래터무비의 매력은 당연히 잔인함에 있다고 해야겠다. 사용되는 무기로는 도끼, 전기톱이 단골이고, 총, 큰 칼, 이빨등이다.

호러영화들도 그 성격에 따라 몇가지로 구분이 되고 있다.

기본적인 호러영화들이 갖춘 잔혹성과 코메디를 가미한 형태를 하고 있는데 이런 호러영화의 장르를 '스플래터 호러'라고 한다.
이 스플래터호러의 시작은 토비후퍼 감독의 '텍사스전기톱 살인마'라고 하기도 하지만 본격적인 시작을 알린 작품은 샘레이미감독의 기념비적인 작품 〈이블데드〉로 알려져 있다.

'스플래터호러'의 묘미는 엽기적인 장면들에서 혐오감을 느끼다가 후에는 오히려 재미를 느끼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일반 영화팬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호러장르이기도 하며, 샘레이미의 이 영화도 노컷판을 보면 다소 조악한 특수효과가 눈에 거슬리기는 하지만 대단히 쇼킹한 장면들이 간간히 등장한다.

이런 스플래터 호러의 역사는 후에 스플래터호러의 최고 걸작으로 손꼽히는 작품인 피터잭슨의 〈데드얼라이브〉로 절정을 맞이했고, 현재도 많은 골수호러광들에게 지지를 많이 받는 장르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영화 이블데드는 국내에 출시된 비디오판의 경우 대량 삭제로 인하여 제대로 감상을 할 수 없지만 저예산으로 이 정도의 완성도를 보여주는 작품들은 드물다고 할 만큼 호러영화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에는 감독인 샘레이미 뿐만 아니라 〈바톤핑크〉로 칸느 그랑프리를 수상한 조엘코엔이 편집을 맡고 있고 〈아담스패밀리〉로 이름을 날린 베리 소넨필드가 촬영을 맡고 있다.
특히 이 영화에서는 살인마인 괴물의 모습을 직접 보여주지 않고 카메라의 시점으로 처리하는 기지를 발휘해서 인물이나 사건의 직접적인 묘사보다도 훨씬 더 강력한 공포감을 전달하고 있다.
영화의 음악을 특별한 테마음악 위주로 전개하기 보다는 현악기를 적극 이용한 상황상황에 충실한 음악으로 풀어가고 있으며. 대부분 소규모의 현악기군을 이용한 음악이며 괴물이 등장하는 장면에는 간헐적으로 전자음악을 이용하고 있다.

하드 고어 애니메이션들은 요컨데 모두 액션을 공통분모로 하고 있는데 〈인어의 숲〉과 속편인 〈인어의 상처〉는 조금 다른다.
이 90년대 호러 애니메이션의 원작자는 '타카하시 루미코'로 〈우루세이야츠라-81年 TV판, 83-84年 극장판〉와 〈란마〉, 〈메존일각-86-88年〉 등 러브 코미디 작품으로 유명하다.
만화가 타카하시의 다른 면모를 접해 볼수 있는 두 작품은 모두 공통적으로 인어의 생육섭취에 의해 불로장생 할 수 있다는 전설과 그것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인간들의 욕망과 음모, 질시, 증오의 헛됨을 그려 내고 있다.

'미즈타니 타카야'감독의 〈인어의 숲-〉은 '아사카 모리오'의 〈인어의 상처〉에 비해 영상이 훨씬 뛰어 날 뿐만 아니라, 서스펜스와 하드 고어가 짜임새있게 연출된 호러 애니메이션의 수작으로 꼽힌다.
일본 하드고어 애니메이션은 포르노와 접합시키고 그럼으로써 과장된 잔혹함과 무자비한 살인, 시체해부, 육체절단과 피로 온통 뒤집어 쓴 듯한 묘사는 극영화에서 보여줄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고 있는 것이다.

마치 하드코어로 가기 직전의 모습인 것 같아 보이는 하드고어 에니메이션에도 다층의 강한 섹슈얼 코드를 담고 있다.
다만 코어쪽이 더욱 강도높은 '섹슈얼 코드'를 담고 있다는 점이 코어와 고어를 구분짓는 결정적인 기준이라고 필자는 얘기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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