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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간 1400억원대 정부 지원 예산…기업 자생력엔 ‘독’ 될 수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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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서울 강동구 명일동에 위치한 사회적기업 도서출판 점자 작업장에서 직원들이 강동구 점자소식지를 인쇄하고 있다. [최명헌 기자]

#1 자동차광택서비스업을 하는 A기업은 새터민 등 취약계층을 고용하는 사회적기업으로 2008년 고용노동부 인증을 받았다. 그러나 실제로는 취약계층을 고용하지 않은 채 유급근로자명부를 거짓으로 꾸미고, 인건비 지원금을 임대료 등 다른 용도로 사용한 사실이 적발돼 지난해 1월 인증이 취소됐다. 

#2 경북의 B자활공동체는 2007년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았다. 그러나 필요한 서류를 기준에 맞춰 작성하는 일도 버거울 만큼 실무능력이 부족했다. 결국 사업실적을 실제와 다르게 제출한 것이 지적돼 1년 만에 인증이 취소됐다.

사회적기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급격하게 늘면서 공익적 목표의식이나 능력없이 이를 악용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정부는 사회적기업 육성을 위해 지난해 1487억원에 이어 올해는 1453억원의 예산을 투입할 예정이다. 올해부터는 사회적기업에 대한 미소금융재단과 중소기업 정책자금의 융자 규모도 200억원으로 늘어나고, 공공기관에 납품하거나 정부사업에 진출할 수 있는 우선권도 부여된다. 그만큼 정부의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고, 사회적기업들도 투명성과 책임감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청년 사회적기업가를 지원하는 (사)씨즈의 이은애(경원대 경영대학원 겸임교수) 단장은 “정부의 인증이나 지원이 목적이 되면 사회적기업이 유지될 수 없다”며 “정부 지원금에 대해 분명한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송도SE는 전문교육장을 갖추고 북한이탈주민과 취약계층에게 미화교육을 실시한다. [사진=송도SE 제공]

고용노동부는 올 하반기부터 사업보고서 제출을 연 1회에서 2회로 늘려 사회적·재무적 성과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기로 했다. 고용노동부의 황보국 사회적기업과장은 “경영공시제도를 도입해 경영상태와 사회적 목적 실현에 대한 정보 등을 공개하는 사회적기업을 보다 우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사업분야 비슷비슷 … 출혈경쟁 위험

사회적기업의 사업분야를 다각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현재 고용노동부 인증 사회적기업 532개 중 일자리제공형이 313개로 약 60%를 차지한다. 정부가 2012년까지 1000개의 기업을 육성해 2만8000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목표를 세운 게 주요 배경이다. (사)글로벌경쟁력강화포럼의 강주현 대표는 “해외에서는 사회적 가치와 아이디어에 주목하는 반면, 국내에서는 일자리 창출에만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며 “전자의 경우는 지속가능한 성장이 가능하지만, 국내의 경우 정부주도형으로 고착화되어 본래의 취지를 상실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자칫하면 과거 ‘벤처 거품’의 재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일자리 창출에만 매달리다 보니 지역적 특성이 고려되지 않은 채 획일적인 아이템이 늘어나는 것도 문제다. 도서출판 점자의 육근해 대표는 “현재 많은 사회적기업의 사업분야가 중복되어 있는데 편중된 아이템으로 기업 수가 늘어나면 서로 출혈경쟁을 하다 공멸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민간에선 ‘1사1사회적기업’ 운동도

(재)함께일하는재단의 정태길 국장은 “정부 지원이 초창기 ‘붐업’ 과정에서는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지만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는 건 아니다”라며 “정부와 민간이 균형있게 사회적기업을 지원하는 구조가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현재 사회적기업에 대한 민간영역의 지원은 대기업이 직접 사회적기업을 설립하는 ‘1사1사회적기업’ 운동의 형태가 주를 이룬다. 송도SE의 경우 포스코가 13억원의 자본금을 출자해 만들었다. 빌딩 청소와 주차 서비스 등을 하는데, 고용노동부 인증 기업 중 북한이탈주민을 가장 많이(40명) 고용하고 있다. 330㎡(100평) 크기의 실습장을 갖추고, 송도SE에 고용된 인력 뿐 아니라 인천지역의 미취업자들에게도 전문교육을 제공한다. 삼성도 지난 2월 각 지역 공부방에 교사를 파견하는 (사)희망네트워크를 설립한데 이어, 3월에는 다문화가족을 지원하는 (사)글로벌투게더음성을 출범시켰다.

지원에 의존 않는 ‘생태계’ 만들어야

정부의 인증이나 지원 없이 독립적으로 기업을 운영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지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하 지구인)’은 지난 4월 약사·화가·교사·로스쿨 재학생 등 다양한 분야 출신의 채식주의자 12명이 세운 회사다. 천연화장품과 친환경세제 판매수익금의 50%를 하천살리기·나무심기 등의 환경보호 운동과 친환경화장품만들기교실 지원에 쓰는 등 경영목표와 방식은 사회적기업과 같다. 그러나 정부의 인증이나 지원을 받을 계획이 없다. 지구인의 김유진(33·여) 대표는 “인증을 받으면 홍보하는 데 더 유리할 수도 있지만, 행정절차에 얽매이기보다는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에만 충실하고 싶다”고 말했다.

라준영 가톨릭대 경영학과 교수는 “영리기업들이 꺼릴 수밖에 없는 사회문제를 시장과 기업의 운영원리 속에서 해결하겠다고 나선 게 사회적기업”이라며 “이들이 적자생존의 시장에서 성공하려면 직접적인 지원이나 후원 등에 의존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 생태계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사회적기업가가 많이 배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별취재팀=손지은·박성민·윤새별·이예지 행복동행 기자
사진=최명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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