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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수의 해피 톡톡] 앨런은 지금도 굿윌에서 일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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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수
행복동행 에디터

“누나, 나도 앨런처럼 마음 편하게 오래 일할 직장이 있으면 좋겠어요.”

2005년 9월 캐나다 토론토시 ‘굿윌(Goodwill)’ 매장에서였습니다. 열 살도 더 많은 제게 “누나, 누나”하며 살갑게 따르던 동근이가 매장 계산대에서 일하는 앨런을 보더니 무척이나 부러운 듯 말했습니다.

우리는 한국장애인재활협회의 ‘장애청년 드림팀 6대륙에 도전하다’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캐나다의 장애인 직업재활프로그램들을 둘러보던 중이었습니다. 스물세살의 동근이는 북미팀으로 선발된 장애청년 다섯 명 중 한 명이었습니다.

동근이가 부러워할 만도 했습니다. 50대의 앨런은 선천성 뇌성마비에 인지능력과 청각장애까지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굿윌에서 벌써 29년째 일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반면 지적장애 2급에 불과(!)한 동근이는 당시 ‘위캔’이라는 장애인직업재활시설에서 과자굽는 일을 하고 있었지만, 언제 그만둬야 할 지 모를 처지라며 걱정이 태산같던 참이었습니다. 장애인 일자리가 워낙 없다보니 위캔에서 일하려는 대기자가 많았거든요.

이번 호 ‘행복동행’의 사회적기업 기획을 준비하며, 그때 방문했던 굿윌이 떠올랐습니다. 굿윌은 ‘사회적기업’이라는 용어가 생기기 훨씬 전인 1902년 미국 보스턴에서 생긴 비영리단체입니다. 하지만 어떤 사회적기업보다도 가장 사회적기업다운 시스템을 갖춘 곳으로 꼽힙니다.

우선 “자선이 아닌 기회를!”이라는 슬로건부터 그렇습니다. 우리나라 ‘아름다운가게’의 모델이기도 한 굿윌은 개인이나 기업의 기증품을 손질해 싸게 파는 곳입니다. 그 과정에서 중증장애인 등 가장 취업하기 힘든 이들에게 직업훈련과 고용 기회를 주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를 포함해 세계 16개국에 진출해 있는데, 2009년 기준으로 연간 약 7억달러(약 7400억원)의 예산으로 190만여 명에게 일자리를 주고 있다고 합니다.

또 굿윌의 수익모형은 ‘리사이클링’ 개념에서 나왔습니다. 1900년대 초에 이미 친환경적 사회변화에 앞장선 것이죠.

더욱 대단한 건, 굿윌을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재정관리능력입니다. 예산의 65% 이상이 매장에서 벌어들이는 수익으로 채워진다고 합니다. 그건 매장을 단순히 취약계층의 직업재활훈련 장소로 여기는 게 아니라, 소비자들이 스스로 찾고 싶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동근이가 다니던 위캔도 2007년 사회적기업으로 인증받으면서 우리밀 쿠키 브랜드로서 인지도가 더 높아졌습니다. 지난해 매출 규모가 5억7000여만원에 이릅니다. 하지만 40명 안팎의 장애인 직원 수는 별로 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사회적기업이 성공하기란 그만큼 쉽지 않다는 뜻이겠지요.

그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동근이가 보고 싶어졌습니다. 그 사이 결국 위캔에서 나와 가구공장에 취업했다는 소식은 들었습니다. 월급이 얼마나 되는지, 거긴 얼마나 오래 다닐 수 있을지는 차마 물어보지 못했었습니다. 180㎝ 가까운 큰 키에, 사진기만 들이대면 ‘V’자를 그리며 포즈를 취하던 우리 팀 귀염둥이. 노트 한 권을 끼고 다니며 틈틈이 시를 끄적여 읽어주던 시인. 동근이에게 정말 오랜 만에 전화를 했습니다. “어, 누나, 안녕하셨어요?” 특유의 한 톤 높은 목소리로 반겨줍니다. 괜히 마음이 짠해 집니다. 고맙다, 동근아. 그 씩씩한 목소리 오래 오래 간직할 수 있길 바랄게.

김정수 행복동행 에디터
경원대 세살마을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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