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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구석 서울의 멋 알리는 대학생 ‘외교관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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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말레이시아인 린의 가족이 서울메이트 소속 대학생들의 안내를 받으며 서울 종로구 경복궁을 관람 하고 있다. [김진원 기자]

“Look like just came out of the picture(마치 그림을 보고 있는 것 같아)!”

지난달 29일 오후 1시께 서울 종로구 경복궁 안. 말레이시아인 린 닝(22·여)이 근정전 연못 안에 있는 경회루를 보고 외쳤다. 남동생 조셉(20)이 카메라를 들이밀자, 린은 내리는 비에 아랑곳 않고 우산도 접은 채 포즈를 취했다. “경회루는 나라에 경사가 있거나 사신이 왔을 때 잔치를 열던 곳이에요.” 함께 한 유다영(19·여·한국외대 국제학부2)씨의 설명에 남매는 장난을 멈추고 다시 한 번 경회루를 바라봤다.

린은 현재 호주에 살고 있는 자칭 ‘한류 마니아’다. 이번에 부모와 두 남동생을 이끌고 한국으로 3박 4일 가족여행을 왔다. 시내 관광 첫날인 이날, 린의 가족은 유씨를 비롯해 7명이나 되는 서울의 대학생들과 어울려 광화문에서부터 경복궁·북촌·광장시장 등을 구경했다.

비가 많이 내리는 날씨에도 기꺼이 린의 가족을 위해 하루 종일 시내 가이드를 맡은 이들은 ‘서울메이트(SeoulMate)’라는 자원봉사동아리 회원들. 한국에 와 있거나 새로 방문한 외국인들에게 서울 구석구석의 투어 코스를 안내하는 대학생들이다.

린은 “여행 전 인터넷을 찾아보다가 서울메이트에 대해 알게 됐다”라며 “처음에는 무료라서 신청했는데 비슷한 또래라서 그런지 설명도 쏙쏙 들어오고 한국 젊은이들의 문화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린의 아버지 테렌스(52)는 “비까지 오는데 한국 친구들이 너무 고생한 것 같다”며 고마워했다.

서울메이트는 2009년 9월 17명의 대학생들로 시작됐다. 아이디어를 낸 조아영(23·여·한양대 정보기술경영4)씨는 “2008년 한 달간 유럽 여행을 할 기회가 있었는데 무료도보투어 관광프로그램들이 의외로 많더라고요. 게다가 거기서 만난 한국 사람들이 ‘유럽은 이렇게 좋은데 우리나라는 볼거리가 없다’고 불평하는 걸 들으니 오기가 생겼어요. 뻔한 관광이 아니라 진짜 서울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라고 결성 취지를 설명했다.

현재 수도권 지역 대학생 17명으로 구성된 4기 회원들이 주로 활동하고 있다. 영어로 된 인터넷 홈페이지(seoulmate.byus.net)를 통해 신청을 받아, 매주 토요일 서울 남산·북촌·용산 전쟁기념관 일대에서 정기 투어를 진행한다.

주로 도보나 버스·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이용한 코스다. 린의 가족처럼 특정한 날짜와 장소를 정해 투어를 부탁할 경우에도 가능한 선에서 안내를 해준다. 4기 회장인 유다영씨는 “매주 2, 3명에서 20명까지도 신청을 한다”며 “지금까지 모두 150~200명의 외국인이 우리와 함께 서울 거리를 누빈 것 같다”고 말했다.

대학생 봉사동아리지만 조직이나 규율이 제법 체계적이다. 참가자관리·투어관리개발·대외협력·홍보팀으로 나눠 운영하고 있고, 매주 수요일 오후 7시에는 대학교 강의실을 빌려 회의를 한다. 기존 투어 프로그램을 점검하고 새로운 프로그램에 대해 의논하기 위해서다. 영어가 부족한 회원을 위해 스터디도 한다. 회원들은 한 달에 두 번 이상 투어활동에 참여해야 한다. 그러다보니 항상 6, 7명의 회원들이 함께 다니며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거의 일대일 가이드를 해주곤 한다. 유씨는 “우리에게 투어를 신청하는 분들이 대부분 20~30대라 그런지 저녁 때까지 함께 돌아다니다 보면 정말 친구 같아진다”며 “빈대떡과 막걸리를 먹으면서 뒷풀이를 할 때도 많다”고 말했다.

물론 그런 뒷풀이 비용은 각자 부담이다. 매 기마다 3만원 정도씩 내는 회비는 홍보물이나 기념품 마련 등에 쓰고, 투어를 하며 발생하는 교통비나 식비는 회원들 스스로 낸다. 그렇게 돈까지 들여가며 하는 봉사활동이지만 6개월에 한 번씩 새 회원을 모집할 때마다 경쟁률이 은근히 높단다. 현재 5기를 모집 중인데, 유씨는 “영어 실력보다 다른 회원들과 한 가족처럼 지내며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지를 살핀다”고 설명했다. “저희들 활동이 분명 한국 이미지에 기여한다고 생각해요. 더 열심히 해서 서울의 멋을 구석구석 알리고 싶어요.”

글=윤새별 행복동행 기자
사진=김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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