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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 여대생 네비아, 소원 풀었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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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뎌(저)의 증조하라버디(할아버지)는 한국뎐(전)에 참던(참전)한 용사임(입)니다. 뎌(저)도 한쿡(국)에서 공부하고 싶습니다….”

 지난 9일 에티오피아를 순방 중이던 이명박 대통령은 아디스아바바 대학에서 환경학 명예박사 학위를 받고 이 대학 학생·교직원 1000여 명 앞에서 ‘꿈과 용기, 도전의식을 가지자’는 주제로 연설했다. 대통령의 연설이 끝나고 질의응답 순서가 되자 이 대학에 재학 중인 한 여대생이 A4용지 한 장을 들고 연단 위로 올라왔다.

 ‘네비아’라고 이름을 밝힌 그는 한글로 쓴 질문을 떠듬떠듬 읽어 내려갔다. “저는 할아버지가 참전해 싸운 한국의 놀라운 발전상에 깊은 관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서울대 대학원에 가려고 준비 중입니다. 한국과 에티오피아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한 대통령님의 전망은 무엇입니까?”

 그러자 이 대통령은 “솔직히 절반밖에 못 알아들었지만 한글로 질문을 써 와서 한국어로 얘기해준 노력에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의 대학에 진학하면) 등록금과 생활비 지원을 보장하겠다”고 했다. 여대생은 환한 표정으로 ‘고맙다’는 눈인사를 연발했고, 장내에선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 대통령은 이날 아디스아바바 시내에 건립된 한국전 참전기념비를 찾아 헌화한 뒤 참전 용사·가족들을 만난 자리에서도 “한국은 에티오피아를 절대 잊지 않는다. 참전용사·가족들에 대한 지원 확대 방안을 찾아보겠다”고 밝혔다고 정부 관계자가 전했다.

 이런 소식이 전해진 뒤 한국전쟁기념재단(이사장 백선엽)의 김상원 사무국장은 “한국에서 공부하고 싶다는 네비아의 간절한 꿈을 꼭 이룰 수 있게 해주겠다”고 13일 본지에 밝혔다. 김 국장은 “우리 재단이 장학금 지원 양해각서를 체결한 연세대·한양대·한국외대 등 9개 대학의 대학원 중 한 곳에서 네비아가 공부하기 원하면 곧바로 지원이 가능하다”며 “네비아가 그 밖의 대학원에서 공부하길 원하면 해당 대학과 양해각서를 체결해서라도 도와줄 방침”이라고 말했다. 백선엽 이사장도 “이제는 우리가 받은 나라에서 갚는 나라가 돼야한다”며 “네비아에 대한 지원은 ‘교육으로 보은하자’는 재단의 정신을 실천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현재 국내에는 에티오피아 참전용사 후손 대학생 5명이 재단의 도움 아래 지난 4월부터 한국외대에서 등록금 면제·생활비 지원 혜택을 받으면서 공부 중이다.

 이 대통령이 8~10일 방문한 에티오피아는 1950년 한국전쟁이 터지자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가 자신의 황실근위대 병력 6037명을 총 다섯 차례에 걸쳐 파병했다. 당시 에티오피아는 파병을 할 만큼 넉넉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셀라시에 황제는 망설임 없이 파병을 결정했고 참전부대에 ‘강뉴’(에티오피아어로 초전박살이라는 뜻)라는 칭호를 내릴 만큼 한국 돕기에 적극적이었다고 한다.

강찬호·고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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