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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의준 경제연구소장의 경제 산책] 종합부동산세 폐지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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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박의준
경제연구소장

태어날 때부터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이젠 ‘잘못 태어났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대부분의 조세 전문가들이 그렇게 본다. 종합부동산세 얘기다. 헌법재판소는 세대별 합산과세는 위헌이고, 투기 목적이 없는 1가구 1주택자에 대한 과세는 헌법에 불합치한다는 결정을 일찌감치 내렸다. 그런데도 정부는 세율과 과세 방식만 바꿔 세금을 계속 매겼고 폐지는 엄두도 내지 못한다. “역시 부자 정권이라 종부세를 없앤다”는 비판이 두렵기 때문이다. 최근엔 국세청이 법에서 규정한 것보다 더 많이 종부세를 걷었다는 서울행정법원의 판결도 나왔다. 이에 따라 종부세 환급 여부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으며, 관련 소송이 이어질지도 모른다. 종부세는 생명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형국이다. ‘정치적 세금’이란 꼬리표를 달고서. 더 늦기 전에 종부세의 본질을 냉정하게 살펴보고 그 운명을 결정하자.

 조세의 기본 목적은 나라 살림살이를 꾸려 가는 데 필요한 돈을 원활하게 확보하는 것이다. 가능하면 국민 개개인이 세 부담을 크게 느끼지 않도록 배려하면서. 만약 조세의 기본 원칙을 어기면서 세금을 만들어 납세자들이 엄청난 중압감을 느끼면 큰 문제다. 국세청장과 옛 건설부 장관을 지낸 서영택 김&장 고문은 회고록(『신세(新稅)는 악세(惡稅)인가』)에서 “조세제도는 본연의 목적과 원칙에 충실해야지 다른 사회·경제 정책적 목적 내지는 정치적 목적으로 조세를 지나치게 이용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 조세제도 역사를 보면 ▶소득 재분배 ▶부동산 투기 억제 ▶사치성 소비 억제 ▶국민 저축 증대 ▶경기 진작 유인책 등의 목적으로 이용한 사례가 많았다는 것이다.

 땜질식 처방에 자주 동원하다 보니 세제가 누더기처럼 돼 버렸다. 토지초과이득세와 종합부동산세가 대표적인 예다. 이 둘은 많이 닮았다. 우선 부동산 투기를 막기 위해 무리하게 도입했다. 노무현 정부가 집값을 잡기 위해 2005년 내놓은 ‘8·31 대책’의 핵심이 종부세였다. 노 대통령은 퇴임 후 펴낸 회고록 『성공과 좌절』에서 “부동산 정책의 핵심은 결국 땅을 많이 가진 사람, 돈을 많이 가진 사람이 반대하는 정책을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부동산 보유세 제도를 확실히 관철하면 투기를 잡을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보유세가 무서우면 집을 내놓으라’는 식이었다. 재산의 미실현 이익에 과세하고, 팔 때 양도세를 또 부과하기 때문에 이중 과세 문제가 생기는 점도 똑같다. 그러나 종부세는 1998년 헌법 불합치 판결로 폐지된 토지초과이득세보다 더 가혹하다. 예전의 토지초과이득세는 투기지역에 땅을 많이 갖고 있는 사람에게 땅값 상승분에 대해 세금을 매겼다. 세금이 아주 부담스러우면 나대지(노는 땅)를 팔거나 여기에 건물을 지으면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됐다. 하지만 종부세는 주로 주택에 대한 과세로 부담이 지나쳐도 보유 주택을 쉽게 처분할 수도 없다. 통상 외국에선 재산 관련 세금은 살 때 취득가액이나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보유세를 부과하고, 팔 때 그동안 집값 상승에 따라 올린 소득에 양도세를 매긴다. 종부세처럼 매년 변하는 주택과 나대지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과세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서 고문은 지적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재산에 대한 과세는 지자체에서 지방세로 과세하는 것이 조세 원칙이다. 미국에선 주민의 교육과 사회복지 등 지자체의 재정 수요를 감안해 이들의 양해를 구한 뒤 재산세 부담을 결정한다. 거둬들인 세금은 지방 주민을 위해 쓴다. 한국처럼 국세로 징수한 뒤 지방으로 넘기면 자칫 낭비하기 쉽다. 세 부담이 너무 큰 것도 문제다. 소득이 세원(稅源)의 기본이고, 특히 재산은 소득 과세의 보완세로 운영하는 게 조세 원칙이다. 따라서 재산 과세는 무리하지 않아야 한다. 1가구 1주택인데도 집값이 높다고 해서 세금을 턱없이 많이 매기는 것은 옳지 않다.

 이처럼 조세 원칙에도 어긋나고 헌법 불합치 판정까지 받은 세금을 계속 끌고 가야 하는가. 종부세를 아예 폐지하고 재산세율을 점진적으로 높이면 된다. 대신 양도세 부담은 줄여 나가자. 어정쩡한 상태로 종부세를 계속 매기면 납세자(21만 명, 2010년 기준)의 조세 저항을 부를 수도 있다. 용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박의준 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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