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백성호 기자의 현문우답 (102) 심청이 인당수에 빠진 뜻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2면

전남 곡성군 관음사는 ‘심청’으로 통합니다. 심청전의 근원설화에 등장하는 사찰이 관음사라고 합니다. 곡성군은 심청을 ‘효문화 콘텐트’로 특화하려 합니다. 9월 말 심청 효문화 축제를 마련합니다. 그런데 심청전에는 효만 있는 게 아닙니다. 구도의 코드도 담겨 있습니다. ‘심청전은 깨달음의 이야기’(본지 2010년 6월 17일자 29면)에 이어 ‘심청전은 구도기 2편’을 풀어봅니다. 얼~쑤!

 심봉사는 처음부터 장님이었을까요. 아닙니다. 그는 황주땅 도화동의 이름난 유학자였습니다. 본명은 ‘심학규’였죠. 그는 서른이 되기 전에 병에 걸려 장님이 됐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심봉사라고 불렀습니다. 그의 부인 곽씨는 딸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딸의 이름이 심청입니다.

 여기에도 구도의 코드가 숨어 있습니다. 심청은 나자마자 어머니를 잃었습니다. 다시 말해 심청은 ‘태어난 곳’을 여읜 겁니다. 나를 만든 곳, 나를 창조한 곳을 잃어버린 거죠. 불교에선 그것을 ‘공(空)’이라고 부릅니다. 사람과 물질, 세상과 우주를 창조한 근원의 자리죠. 그런 공(空)의 자리에서 ‘툭!’하고 심청이 튀어나온 겁니다. 그게 바로 ‘색(色)’입니다. 심청뿐만 아닙니다. 저도, 여러분도, 심청도, 심봉사도 모두 공(空)에서 ‘툭! 툭!’ 튀어나온 색(色)입니다.

 공과 색은 둘이 아닙니다. 어머니의 배 안에서 자식과 어머니는 하나로 있잖아요. 그런데 세상으로 ‘툭!’하고 튀어나오면서 달라집니다. 자신을 만든 자리를 망각하고 마는 겁니다. 왜냐고요? 공(空)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으니까요. 그래서 어린 심청이 어머니를 여의는 겁니다.

 이제 심청은 세상의 반쪽만 봅니다. 색(色)은 보지만 공(空)은 못 봅니다. 심청만 그런 게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그렇습니다. 세상의 반(色)만 보고, 나머지 반(空)은 보질 못합니다. 그래서 허무합니다. 모든 색은 사라지게 마련이니까요. 삶은 자꾸만 뒤뚱거립니다. 싸우고, 충돌하고, 길을 잃죠. 앞을 못 보는 심봉사처럼 말입니다. 실은 우리가 그런 장님입니다.

 심봉사는 실족해서 물에 빠집니다. 지나가던 화주승이 구해주죠. 그리고 “명월산 운심동 개법당(사찰명은 판본에 따라 차이가 있음) 부처님께 공양미 300석을 바치면 눈을 뜬다”고 일러줍니다. 심봉사는 덜컥 “그러겠다”고 약조를 합니다. 법당 이름을 눈 여겨 보세요. ‘개법당(開法堂)’. 개법, 법이 열린다, 언제 법이 열릴까요? 맞습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반쪽을 찾을 때 법이 열리는 겁니다. 공양미 300석이 그걸 심청에게 일러주는 거죠.

 사람들은 묻습니다. “왜 심청이가 인당수에 빠져 죽어야 하느냐?” “그런 비인도적이고, 비상식적인 방법에 무슨 길이 있느냐?”라고 반박합니다. 이 대목이 하이라이트입니다. 판소리에서도 심청이 인당수에 빠지는 대목은 백미 중의 백미죠. 드라마틱한 장면 때문만은 아닙니다. 구도의 길을 여실히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뭐냐고요? 심청이 심청을 허무는 장면입니다. 풍랑이 몰아치는 뱃전에서 훌쩍 뛰어올라 인당수로 뛰어드는 심청이 그걸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그건 색(色)이 색(色)을 허무는 대목이죠. 붓다는 “상(相)이 상(相)이 아닐 때 여래(如來)를 보리라”고 했습니다. 인당수에 ‘풍덩!’ 빠지는 순간, 색이 공으로 ‘쑤~욱’ 들어가는 겁니다. 모든 색이 ‘본래 비어있는 색’임을 알면 그 순간, 그 자리에서 공이 됩니다. 그런데 거기가 끝이 아닙니다. 인당수로 들어갔던 심청은 연꽃을 타고 다시 올라옵니다. 공에서 색으로 다시 나타나는 겁니다.

 이제 심청은 자유롭습니다. 세상의 반쪽을 찾았으니까요. 그래서 심봉사가 눈을 뜹니다. 맹인잔치에 왔던 모든 장님도 눈을 뜹니다. 그때 눈을 못 뜬 봉사가 딱 한 명 있었습니다. 심봉사를 버리고 뺑덕이네와 도망을 쳤던 황봉사였죠. 그는 자신을 가리키며 “이런 천하 못쓸 놈을, 살려두어 쓸데 없소. 당장 목숨을 끊어주오”라며 참회합니다. 그러자 황후가 된 심청은 “네 죄를 아는고로 살리로나. 어서 눈을 뜨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황봉사도 번쩍 눈을 뜨게 됩니다. 죄(色)가 공(空)이 될 때 우리도 눈을 뜹니다.

백성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