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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ad·콜라 넘치는 테헤란 … “반미는 정부 인사들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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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이란의 수도 테헤란의 퇴근길 풍경. 현지 브랜드 ‘아제라’(왼쪽)로 팔리고 있는 현대 그랜저와 기아차의 프라이드 베타 생산기술을 전수받아 현지에서 생산한 ‘사바’(아제라 오른쪽) 자동차가 곳곳에 눈에 띈다. 이란에선 한국 차들이 ‘고급 차’로 통한다. 2002년 핵무기 개발 의혹이 불거지면서 이란에 대한 미국의 경제 제재가 시작됐다.


#지난달 19일. 테헤란의 중앙은행 4층 회의장. 20여 명의 현지 은행 관계자와 한국의 기업·우리은행 관계자가 마주 앉았다. 양측이 교역대금 지불방법으로 채택하고 있는 원화결제 시스템을 점검하는 자리였다. 원화결제 시스템은 이란 중앙은행이 원유 수출대금을 기업·우리은행을 통해 국내 업체로부터 원화로 받아 계좌에 보유했다가 자국 업체가 한국산 물품을 수입할 때 대금을 원화로 한국 업체에 지급하는 것이다. 지난해 10월 개시된 이후 6월 말 현재 3300여 건, 거래금액도 7조원을 넘어섰다. 이란 사만은행의 바내이파 교류협력파트장은 “미국의 경제 제재에도 이 시스템으로 양국 간 교역이 이어질 수 있게 된 것을 고맙게 생각한다”며 “유로나 달러 등도 한국 은행에서 취급해 주면 좋겠다”고 요청했다.

 #지난달 24일. 테헤란에 머물며 찾은 재래시장 그랜드 바자(Grand Bazzar). 20곳 이상 늘어선 33㎡(약 10평) 남짓 가게들이 눈길을 끌었다. 게임기 XBOX, PS3 등을 판다는 광고판이 즐비한 이곳은 평일에도 젊은이로 가득했다. 위닝일레븐 등 유명 게임의 복사판이 3~5달러 내외로 팔렸다. 이란은 세계무역기구(WTO)가 주관하는 지적재산권 협정에 가입하지 않은 해적판의 천국이다. 버스 안에선 한 여성이 애플의 iPad 2를 이용해 동영상을 보고 있었다. 64Gb 모델(Wifi+3G)은 1500달러가 넘는 가격에 팔린다. 한 이란인은 “대개의 정보기술(IT) 기기들은 밀수품이다. 세계 시장에 공식 출시되기 전에 이란에 먼저 풀린다”고 말했다.

권호 기자

 조지 W 부시(George W Bush) 전 미국 대통령이 이라크·북한과 함께 ‘악의 축’으로 꼽은 나라. 혁명과 신정(神政)의 나라, 반미(反美)의 선봉에 선 나라 이란. 그러나 그 속에 사는 이란인들에게 서구 문화는 오랜 친구처럼 친근해 보였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도 미국 세계화의 상징인 코카콜라는 인기였다. “미국을 적대시하는 것은 정부 인사들뿐”이라고 하는 이가 많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은행 임원은 “미국의 경제 봉쇄가 축복이라는 건 그들의 말일 뿐”이라고 했다. 그는 “경쟁력 없는 정부 소속 기업들이 봉쇄를 명분으로 배를 불리고 있다”며 “이란인들은 품질이 엉망인 비싼 물건을 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시내 중심가엔 토플과 영어능력평가시험(ILETS) 학원 광고가 눈에 띄었다. 거리에서 만난 사히드(26)는 미국 정부 인증 경호원 자격증을 갖고 있다고 했다. 그는 “미국 입국이 쉽지 않아 두바이에서 자격증을 취득했다”며 “미국에서 공부하고 일하는 것은 이란 젊은이들의 소망”이라고 전했다. 트위터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접속이 잘 안 되지만 인터넷은 활성화돼 있다. 시내 곳곳엔 인터넷 카페가 있다. 이란인들은 마음만 먹으면 서구 문화를 접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란인들의 서구 사회에 대한 갈증은 팍팍한 현실에서 비롯된다. 2009년 기준 이란의 1인당 국민소득은 4530달러(한국 1만9830달러)다. 정부는 실업률이 12~13%라고 하지만 실질 실업률은 20%가 넘는다고 한다. 최근 버스 요금(우리 돈 200원)도 세 배나 뛰었다.

 이란인들에게 한국은 ‘대장금의 나라’ ‘동쪽의 선진국’이다. 4년 전 대장금이 방영됐을 때 시청률은 80%를 기록했다. 지난해 한·이란 교역 규모는 115억 달러. 한국 입장에선 13번째로 큰 무역 상대다. 한국산 TV·에어컨도 인기다. 도로에는 모하비나 제네시스 등 국산 차량이 질주하고 있었다. 기아자동차가 프라이드 베타 생산기술을 전수해 이란 현지 사피아 자동차회사가 자체 생산하는 ‘사바(SABA)’ 자동차는 이란의 국민차라 할 만큼 인기다. 한 대기업의 현지 관계자는 “내수 수요만으로도 올해 10억 달러 수출이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북한의 흔적을 직접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란인들은 북한을 ‘폭탄(bomb)의 나라’로 여긴다고 한다.  

테헤란=권호 기자

“이란, 매년 4%대 성장 … 제재 동참한 한국 이해”

무함마디 경제수석 인터뷰

무함마디

이란 정부의 경제 정책 책임자인 알리 아가 무함마디(60·Ali Agha Mohammadi) 경제수석을 만났다. 신재현 외교통상부 에너지자원 협력대사와 동행한 자리였다. 이란 국영방송(IRIB) 사장과 이란 최고국가안보위원회(Supreme National Security Council) 대변인을 지낸 무함마디는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의 각별한 신임을 받고 있다고 한다.

 인터뷰는 지난달 21일 테헤란 북쪽 정부청사에서 진행됐다. 일반인의 접근을 통제하는 청사 외벽엔 ‘테러 없는 세상(World without Terrorism)’이라고 쓰인 대형 선전물이 붙어 있었다. 1시간 동안의 인터뷰에서 무함마디는 이란의 경제 상황 설명에 공을 들였다. “이란은 매년 4%대의 성장을 하고 있고, 정부 기업의 민영화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미국·유럽의 봉쇄가 계속되고 있다. 타격이 있을 것 같은데.

 “없다. 경제봉쇄는 미국이 이란에 준 선물이다. 과거 미국·유럽과 경제적으로 긴밀히 엮여 있었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경제봉쇄는 이란 스스로 역량을 키울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봉쇄 속에서도 이란이 발전하고 있다는 사실은 미국이 더 이상 수퍼 파워가 아니라는 증거 아니겠나.”

 무함마디는 한국과의 경제 협력에 깊은 관심을 나타냈다. 이날 만남도 무함마디가 신 대사에게 적극적으로 요청해 이뤄진 것이라 한다. 한국의 경제 발전사를 영문으로 정리한 『절망에서 희망으로(From Despair to Hope)』라는 책을 전달하자 한참을 들춰봤다.

 -한국도 경제제재에 동참하고 있다.

 “불가피한 측면이 있을 거다. 한국과는 좋은 관계를 유지해 왔고, 경제 교류가 끊이지 않고 이어지길 바란다.”

 이란이 북한과 핵·미사일 분야에서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는 국제사회의 우려에 대해 무함마디는 “관계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테헤란=권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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