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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혁명의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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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 5년에 10배씩 느는 전자기술의 세계

전자기술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최근의 과학기술의 수준은 그 전체가 기하급수적(더 정확히는 지수함수적)으로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1960년 이래 엄청난 속도로 향상되고 있는 반도체 기술 또는 전자기술의 수준은 18개월마다 2배로 증가하고 있다(이것을 무어의 법칙이라 한다). 이것은 대략 5년마다 기술수준이 10배씩 늘어난다는 뜻이다.

실제로 반도체 기술, 그 중에서도 특히 컴퓨터의 두뇌 역할을 해주는 중앙연산처리장치(CPU·Central Processing Unit)나 MPU (Micro Processing Unit) 또는 기억소자로 쓰이는 DRAM(수시로 정보를 기입하고 읽어낼 수도 있게 한 기억소자)의 집적도(손톱만한 크기의 실리콘 기판 위에 모아둘 수 있는 트랜지스터·캐퍼시터 등 전자회로 소자의 수)는 지난 40년간 어김없이 5년마다 10배씩 늘었다.

그 결과 지금의 CPU나 MPU는 1960년에 비해 적어도 1억배 정도 그 성능이 높아졌다. 지금은 초등학교 어린이들도 자유자재로 쓰고 있는 PC 역시 1946년에 첫선을 보인 인류 최초의 컴퓨터인 에니악(ENIAC·무게 30t, 전력소모 140kW, 주먹만한 크기의 진공관 1만8,000개, 기계가 차지하는 방의 넓이는 약 80여평, 즉 약 230제곱미터)의 수백배의 계산 능력과 수백만배나 되는 기억력을 갖게 되었다. 반면 가격은 대당 90만달러나 했던 에니악에 비해 900분의1인 1,000달러면 살 수 있게 되었으니 놀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컴퓨터 또는 MPU라 불리는 두뇌는 현존하는 거의 모든 기계 -예컨대 전기밥솥·세탁기·팩스·휴대폰·각종 의료기기·항공기·가동차 등등 자동장치가 붙어 있는 모든 가전제품 속에 내장되어 있다. 고급 자동차 속에는 100개 이상의 MPU가 들어 있다고 한다.

이처럼 MPU로 대표되는 마이크로컴퓨터는 PC는 물론 휴대폰·PDA·인터넷의 각종 기능을 도와주는 수많은 부분품 속에 내장되어 엄청난 재간을 부리고 있다. 또 5년에 10배씩 성능이 늘어난 MPU 덕으로 전자기기는 그 성능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뿐만 아니라 값은 오히려 계속 내려가고 있다. 그 결과 이들 기기의 가격이 급락하고 크기도 축소되면서 엄청난 수요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전자기기의 보급률 또한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우리가 가정에서 흔히 쓰고 있는 전화기는 지난날까지는 전자기술의 혜택을 별로 받지 못했다. 전화기는 우리나라에 민간용으로 처음 보급된 1905년(가입자 수 101대) 이래 85년이 지난 1990년에야 겨우 인구의 25%인 1,000만대를 돌파하게 되었다.

이에 비해 전자기술의 혜택을 약간 받기 시작한 컬러TV는 1980년 12월1일 KBS가 컬러TV방송을 시작한 지 만 10년째인 1990년 말경에 인구대비 25%를 차지했다. 그러나 1994년 이래 최첨단 전자기술의 뒷받침을 받기 시작한 휴대폰은 지난 1994년말 96만대에서 5년 후인 1998년 말에는 인구대비 25%인 1,100만대를 넘어섰다.

1999년말 현재 통계를 보면 휴대폰은 약 2,300만대로 인구대비 50%를 넘어섰을 뿐만 아니라, 기존의 고정식 또는 유선전화 보급대수(약 2,200만대)를 추월하고 있다. 휴대폰은 1984년경 수백대가 처음 도입된 이래 1990년 8만대, 1991년 16만대, 1992년 27만대 등 느린 템포로 늘어나다 1994년경부터 앞서가는 최첨단 기술의 혜택을 받아 이처럼 급증하게 된 것이다.

인터넷 사용자는 더더욱 폭발하고 있다. 인터넷 사용자는 1994년 인터넷이 국내에 상륙한 이래 불과 6년만인 지난해 연말에 이미 인구의 25%선인 1,000만명을 돌파했다.

이처럼 기술의 발전은 변화의 속도를 상상 이상으로 가속화시키고 있다. 즉 옛날에는 50년, 100년이 걸렸던 일들이 지금은 기술의 지수함수적(기하급수적) 발전에 힘입어 불과 5년 또는 10년밖에 안되는 최단기간에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 도구의 사용과 인간 능력의 발전

이렇게 모든 것이 급진전하는 까닭은 과학기술의 지수함수(기하급수)적 발전 때문이며, 인간 지능의 발전 때문이다. 그 결과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그 옛날의 인간에 비해 수백배, 때로는 수만배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

수렵채집을 일삼았던 원시시대 사람들은 인간의 능력을 향상시켜주는 연장이 별로 많지 않았다. 기껏해야 돌을 쪼아 만든 돌도끼나 돌칼 정도였다. 따라서 이 수준의 원시인들이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은 돌도끼나 돌칼, 활과 화살 또는 불의 사용을 모르는 짐승들에 비해서는 그 총체적 능력이 월등하게 뛰어나다고 볼 수 있었으나, 기초체력면에서는 겨우 1인력(人力)을 발휘할 수 있었을 뿐이었다.

그 1인력의 기준으로써 사람의 운반 능력을 예로 들기로 하자. 예나 지금이나 인간은 쌀 한가마니(80kg 정도)를 메고 시속 4km(10리)의 속도로 걸어갈 수 있다. 이것을 1인력이라고 정의하자.

원시시대의 1인력에 비해 농경시대 사람들은 약 10∼20인력 전후의 능력을 보유하게 된다. 소달구지에 쌀 10∼20가마니를 싣고 운반하면 되기 때문이다(소도 사람과 비슷하게 시속 4km로 걷는다). 소 대신 말의 경우에는 싣는 쌀가마니 수가 절반 또는 3분의1로 줄어들지만 속도가 2∼3배 빨라지므로 마찬가지다(마차가 달리는 평균속도는 시속 13km).

또 농경시대 사람들은 소나 말 등 축력(畜力) 외에 노비나 노예를 사역시킴으로써 10∼20인력의 능력을 발휘할 수도 있었다(대개 한 사람이 통제할 수 있는 인원은 많아야 10∼20명 정도다). 이미 알다시피 옛날에는 노비나 노예는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고 노동력으로만 존재가치가 있었다.

따라서 원시시대 사람의 능력을 1인력이라 정의했으므로 농경시대에는 한 사람이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이 약 10∼20인력 수준으로 늘어난다. 그 결과 이렇게 늘어난 잉여노동력을 축적함으로써 고대국가의 찬란했던 농경문명사회가 건설되었던 것이다. 어느 고대국가든 모두 이런 방식에 의해 국가와 문화가 발달했던 것이다.

그러면 공업시대는 어떠했는가. 18세기 말의 산업혁명 이후 공업시대가 되면 사람의 능력은 원시시대에 비해 수천배, 수십만배로 늘어난다. 사실 누구나 자동차 운전면허를 갖고 있다면, 별로 힘들이지 않고 1,000인력을 발휘할 수 있다. 트럭에 쌀 40가마니를 싣고 고속도로를 시속 100km(보행속도의 25배)로 달릴 수 있으니 말이다. 쌀가마니 적재량 40배×자동차 속도 25배=1,000배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쌀 한가마니를 메고 쩔쩔매면서 4km가 아니라 단 100m를 걸어갔을 때에 비해 피로감은 훨씬 적다. 과학기술의 힘(결국은 인간 두뇌의 힘)은 이렇게 위대했던 것이다.

더 나아가 특수훈련을 받아 제트여객기의 조종면허를 갖게 된다면 그 능력은 10만인력 이상으로 늘어난다. 제트여객기에 실을 수 있는 화물량은 약 40t(80kg 쌀 500가마니)이나 되며 그 순항속도는 보행속도의 200배인 시속 800km에 달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500×200=10만인력이 달성되는 셈이다.

따라서 적절한 훈련을 받기만 한다면 공업사회에 사는 사람은 모두 1,000인력에서 10만인력 또는 그 중간(기하평균)인 1만인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위에서는 제트여객기 조종술이라는 약간 특수한 예를 들었지만 다른 직종이나 직장에서도 인간 능력이 원시시대에 비해 1,000∼10만인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현대의 평균적인 회사원은 직장 내에서 서류 작성이나 전화 응대 및 그 뒤처리에 한나절의 반 이상을 소비한다. 그러나 만약 이 광경을 1960년경의 사무원의 눈으로 지켜본다면 어처구니없어 할 것이 분명하다. 즉 현대의 회사원들은 옛날 사무원들과 달리 땀흘리는 일은 하나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전화기를 들고 한두시간씩 주절대는가 하면, 몸을 움직이는 일이래야 팩스나 복사기의 단추를 누르는 일 정도다. 때로는 컴퓨터인가 뭔가 하는 옛날의 타이프라이터 비슷한 것 앞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는가 하면 간혹 이 기계를 이용해 트럼프를 즐기기도 한다.

■ 40년 전과 현재의 사무실 풍경

그뿐만이 아니다. 담배 피우는 시간, 커피 마시는 시간이 태반이라 할 정도로 ‘일’을 하는 모습을 볼 수가 없다. 그러면서도 월급은 1960년에 비해 100배(1960년 우리나라 1인당 GNP는 78달러이고, 1995년도에는 10,076달러, IMF사태를 맞은 1998년은 6,823달러)나 받는다니 어처구니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이 1960년의 사무원이 당시 땀흘려 한 일이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그는 조개탄 난로를 피워놓고도 추위에 오돌오돌 떨면서 한시간씩이나 걸려 품의서 한장을 만든다. 애써 작성한 이 품의서를 과장에게 가져갔더니, 별 할 일도 없었던 과장은 ‘오냐, 잘됐다’는 듯 빨간 펜으로 문장에 쭉쭉 줄을 그어가며 야단을 친다. 과장이 손질해준 품의서를 다시 정서하는 수밖에 없다. 다시 정서하는 데만도 30분은 족히 걸린다.

당시에는 미농지라 불리는 얇은 종이 사이에 먹지라 불리는 기름기 있고 시커먼 종이를 끼워 송곳 같은 펜(철필)으로 사본까지 합쳐 3장에 글자가 똑똑히 나오도록 힘주어 써야만 했기 때문에 무척 힘이 들고 시간도 오래 걸렸다. 이 일이 끝나자 과장이 다시 건네준 다른 서류를 열심히 베낀다. 이렇게 해서 그의 오전은 다 지나간다.

오후가 되면 그는 과장에게 불려가 오전중에 베낀 서류를 수색에 있는 A대리점에 전달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당시 시내버스가 있었지만 30분에 한대 다닐까 말까 할 정도로 교통사정이 안좋았으므로 자전거를 탄다. 왕복 1시간 반동안 땀깨나 흘린다. 돌아와 과장에게 보고하니 이번에는 광나루에 있는 B대리점에 갔다 오라는 지시다. 그리하여 그는 그날 오후를 완전히 망쳐버린다.

이에 비해 2000년의 회사원은 똑같은 일들을 5∼10분 이내에 해치운다. 품의서는 컴퓨터의 키보드를 눌러 저장해 두었던 품의서 양식을 불러내고 물품명, 수량, 거래처와 담당자 이름을 정해진 위치에 기입하면 그만이다. 숙련된 사람 같으면 1∼2분이면 끝난다. 사본이 필요하면 복사 단추를 누르면 자동적으로 프린트되어 나온다. 또 과장이 하나 더 만들어 달라는 문서는 복사기 단추만 누르면 몇초 내에 완성된다.

멀리 수색에 있는 A대리점이나 광나루에 있는 B대리점에 서류를 전달하는 일은 팩스가 알아서 해준다. 서류를 얹어놓고 단추를 누르면 몇분 이내에 몇장이고 보낼 수 있다. 이 모든 작업과정을 합쳐봐야 5분 또는 10분이면 족하다. 그러니 그의 능률은 1960년에 비해 48배(8시간/10분)나 늘어난 셈이다.

물론 현재의 회사원들은 하루에 이런 일을 적어도 10번이나 20번 정도는 하게 된다. 따라서 옛날 사무원에 비해 48배×10번(또는 20번)=480배(또는 960배)나 효과적으로 일할 수 있다.

따지고보면 옛날에 비해 생산성은 약 500배 내지 1,000배가 된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옛날(1960년)에 비해 100배로 오른 월급은 오히려 낮은 셈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고도정보화사회로 가보자. 누구나 지능화된 휴대전화기(Intelligent Handphone) 또는 PDA와 같은 단말기를 가지고 다니면서 세계의 누구와도 즉석에서 화상전화를 주고 받을 수 있고(통역기까지 달려 있다), 데이터나 동화상까지 교환할 수 있다.

따라서 그가 있는 곳이 곧 사무실이 된다.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나 놀이공원에서 애인과 데이트를 즐기고 있을 때마저 그는 언제든지 무선으로 본사의 업무용 컴퓨터를 불러낼 수 있다. 본사 사무실의 각종 정보통신기기는 물론 집에 있는 가전제품을 불러내 갖가지 일을 하거나 지시할 수 있다.

따라서 그에게는 따로 사무실이 필요하지 않다(이런 개념을 Flex place 또는 SOMO=Small Office Mobile Office라 한다). 꼭 지켜야 할 근무시간도 없다. 필요할 때마다, 그리고 틈이 날 때 일을 하면 된다(이런 개념을 Flex time라 한다).

그는 시·공간을 초월해 맡은 바 업무를 고능률로 해치울 수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에게는 국경이나 언어의 장벽마저 없다. 시나 문학작품이라면 약간의 문제가 있지만 웬만한 상담(商談)이나 회화는 통역기가 달린 휴대전화나 PDA가 실시간(real time)으로 해결해 준다. 휴대전화나 PDA에 달린 모니터를 통해 상대의 얼굴을 보면서 동시통역으로 업무를 해결하는 것이다.

이처럼 IT기술 -곳곳에 들어 있는 MPU 또는 컴퓨터 기술의 도움으로 그의 능력은 원시시대의 1인력을 기준으로 한다면 농경시대에는 20배, 공업시대에는 약 1만배, 현재는 수억배, 수조배나 되는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다시 인류의 역사를 살펴보자. 농업은 발의 힘을 주로 쓰는 산업이다. 예컨대 외발의 사나이는 모내기도 할 수 없고 파종이나 수확도 하기 힘들다. 따라서 농업시대에는 발의 힘을 보강해 주는 소나 말 등의 축력(畜力), 노비나 노예들을 부리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 보강배율은 기껏해야 20 정도다.

공업은 손의 힘 또는 손재간을 주로 쓰는 산업이다. 공업시대에는 물론 머리도 일부 쓰지만 손(그리고 눈·귀·코·피부 등의 감각기관을 포함한다)의 힘을 도와주는 것이 기계나 에너지라고 할 수 있다. 그 배율은 1,000배에서 10만배 수준이다.

그러나 정보화시대(머리를 쓰는 시대)가 되면 두뇌의 힘을 도와주는 컴퓨터 및 정보통신장치가 가장 중요하게 된다. 그 중에서도 특히 인터넷과 여기에 접속 가능한 휴대폰·PDA 등이 핵심 역할을 맡는다. 그 증폭배율은 최소한 수억배에서 수조배가 될 것으로 예측된다. 정보화시대에 들어서면서 인간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바로 인터넷과 그 주변기기(한마디로 IT)가 만들어내는 첨단 시스템이다.

■ 非보존량으로서의 정보는 ‘마르지 않는 샘’

미국 경제가 오늘날 7∼8년이라는 장기간에 걸쳐 호황을 누리고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바로 IT(정보기술)혁명이 기폭제였다고 한다. 반대로 일본이 최근 수년간 저성장에 허덕이고 있는 이유는 IT기술 구축을 소홀히 했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장차 한 국가의 흥망을 가늠해볼 수 있는 IT 또는 정보과학이란 무엇인가. IT기술은 17세기 이래 발달해온 근대과학의 흐름에서 보면 대단히 이질적이며 완전히 다른 존재이기도 하다. 즉, 갈릴레오(1564∼1642)에서 뉴턴(1642∼1727)으로 이어지는 고전역학(力學)이건 패러데이(1791∼1867)와 맥스웰(1831∼1879)에 의해 완성된 전자기학이건 그 뒤에 발달한 열역학이나 양자론, 원자핵 이론 등 근대산업의 기반이 되었던 학문은 모두가 ‘보존량’을 그 대상으로 삼고 있었다.

보존량이란 ‘질량 보존의 법칙’이나 ‘에너지 보존의 법칙’ 등에서 보는 바와 같이 ‘무(無)에서 유(有)는 생겨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양이다. 따라서 이들 학문에 바탕을 둔 산업은 필연적으로 자원을 낭비하게 되고 에너지를 소모해 버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반면 정보는 보존량이 아니다. 정보는 얼마든지 복제가 가능하며 남에게 나누어 주어도 절대로 줄어들지 않는다. 따라서 ‘무에서 유를 만들어낼 수 있는’ 존재인 셈이다. 그와 동시에 정보 전달수단으로서의 통신기술은 디지털화 및 고주파수화 등에 의해 한없이 압축이 가능해진다. 그 결과 통신비용을 한없이 0(제로)으로 접근시켜 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정보과학 또는 정보기술학은 뉴턴 이래 지금까지의 실(real)의 과학과는 판이하게 다른 허(imaginary 또는 virtual)의 과학이라 할 수 있겠다.

이런 특성 때문에 IT를 잘 이용하면 과거 실(實)의 산업이 벌여놓은 폐해를 허(虛)의 산업으로 대체함으로써 그 폐단을 대부분 제거할 수 있는 비전을 가질 수도 있다. 예컨대 근 100kg 가까이 나가는 4×6배판 30권 전후의 백과사전을 직경 12cm, 두께 1.2mm, 무게 15g의 CD-ROM으로 바꾸어줌으로써 막대한 양의 종이 소비량을 줄일 수 있다. 또 운송비가 격감되고 창고대가 없어지다시피 되며 반송품을 줄여준다. 내용면에서는 개정판을 손쉽게 거의 즉석에서 만들어줄 수도 있게 된다. 그뿐이랴. 이것이 인터넷과 결합되면 그 15g의 무게마저 서버(server) 안으로 사라져 버리게 된다.

그동안 경제의 호·불황은 수요의 증대→생산의 확대→수급의 완화→재고의 증대→생산의 축소→재고의 조정이라는 사이클을 되풀이해 왔다. 그러나 이제 IT기술의 발전은 수요·공급에 관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정확하게 알아내게 해줌으로써 경기파동의 진폭을 대폭 압축시킬 수 있게 해준다. 사실 미국의 장기간에 걸친 경제호황도 따지고 보면 미국이 관민일체가 되어 이런 허의 기술인 IT의 최적기술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어렵지만 과거를 돌이켜보는 것은 쉽다. 앞으로 다가올 고도정보화사회와 지난날의 사회를 비유적으로 비교한다면, 철도교통 시대와 마이카(자동차) 시대의 관계와 닮았다.

철도를 이용한 교통은 철도청이 독점적으로 운행하는 열차에 타느냐 안타느냐 하는 양자택일 뿐이다. 즉, 승객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정해진 시간표에 따라 정해진 장소(역)에서만 발착이 가능한 열차에 타거나 안타거나를 선택하는 자유밖에 없었다.

그러나 마이카 시대에는 누구나 가고 싶은 곳을 향해 언제 어디서든 떠날 수 있게 되었고, 또 언제 어디서라도 내릴 수 있다. 정해진 궤도를 따라서만 운행할 수 있는 열차와 달리 자동차는 고속도로·오솔길·골목길까지 진입이 가능하다. 문자 그대로 ‘door to door’ 운행이 가능해져 편리하기 짝이 없다. 이 마이카 사회가 어떻게 우리의 전래풍습과 생활패턴을 바꾸었는가 하는 것은 현재의 우리 생활을 살펴보면 실감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열풍을 몰고 오는 인터넷 비즈니스

이제 이와 비슷한 변화가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예컨대 사이버대학·사이버은행·사이버쇼핑몰 등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고, e-비즈니스라는 새로운 산업이 융성일로에 있다.

미국에서는 아마존닷컴이라는 인터넷 상의 서점이 불과 5년 전에 설립되었으면서도 현재 세계에서 가장 많은 판매량을 자랑하고 있다. 물론 이 서점은 판매점이 하나도 없는 허(虛)의 존재이면서도 실존하는 그 어느 서점보다 더 많은 매상고를 올리고 있다.

미국의 경우 e-비즈니스의 성행으로 1998년 3,360억달러에 불과했던 매출액이 2003년에는 8조1,100억달러로 급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러한 조류는 우리나라라고 예외가 아니다. 국내에서도 현재 여러 회사가 e-비즈니스의 세계를 선점하기 위해 맹렬하게 뛰고 있다.

그런가 하면 주식투자에서도 사이버 거래가 돌풍을 일으키고 있고, 3월부터는 국내 모든 은행들이 인터넷 대출을 시작할 계획이라고 한다. 20세기를 닫으면서 시작된 인터넷 열풍은 이제 21세기를 열며 우리 사회 모든 곳에서 대혁명을 일으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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