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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대 졸업생, 기업들이 먼저 반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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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취업률 90%, 대기업 취업률 40% 상회, 개교 20주년 만에 한국기술교육대학교가 이룬 쾌거다. 전운기 한국기술교육대학교 총장은 다가오는 20년 뒤에는 국내 기업뿐만 아니라 해외 유수의 글로벌 기업들까지 한기대에 학생을 스카우트하겠다고 찾아오도록 하고 싶다고 했다. 전 총장이 학생들의 글로벌 마인드 역량 강화와 산·학·연 협동의 교육시스템 구축에 사활을 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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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를 나누다 보면 우리 학교 학생들 인품이 참 바르고 곧은 걸 몸소 느껴요. 마음 씀씀이가 흔히들 말하는 ‘요새 아이들’하고 달라요.”

20주년 맞는 한기대, 전국 취업률 1위 대학의 저력 #전운기 한국기술교육대학교 총장

전운기 한국기술교육대학교(이하 한기대) 총장은 학생들 이야기를 할 때면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다. 전 총장은 한기대 학생들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재능과 인성을 겸비한 미래 인재상을 찾으려거든 한기대를 방문하라고 큰소리칠 정도다. 인터뷰 도중 잠깐 코가 시큰해지며 눈물을 보이기까지 할 정도였다. 학생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도 그대로 전해져왔다.

“우리 학교는 등록금 30%, 정부 출연금 70%로 운영됩니다. 덕분에 한 학기 등록금이 공학계열은 학기당 276만원, 산업경영학부는 193만원 수준이죠. 그래서 성적은 뛰어나지만 비싼 등록금 때문에 일반 사립대 진학이 어려운 우수한 인재들이 저희 학교로 진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번은 기숙사 배정도 못 받고 원룸 구할 형편도 안 되는 학생이 학교 연구실에서 잠을 잔다는 말을 들었다. 기숙사 수용률이 전체 학생 수의 75%나 되지만 일부는 수용하지 못해 전 총장은 늘 안타까웠다.

“젊은이의 자존심을 해치지 않으면서 어떻게 도와줄까 고민하다가 올해부터 연구실을 24시간 개방하고 학생식당도 늦게까지 열어두도록 했어요. 밤늦게까지 과제에 몰두하는 학생들이 다 같이 연구실에서 밤샘 작업도 하면 좋잖아요. 문을 열어놓으니 한 해 재학생 약 2800명 중 2000명가량이 방학에도 집에 안 가고 연구실에서 자신들의 졸업작품 준비며 각종 경진대회 준비로 바쁘게 움직입니다. 이런 게 바로 살아 있는 학교 아니겠어요?”

기술공학 분야에 단연 눈에 띄는 재능을 보이는 학생이 있어 대학원 진학을 권한 적이 있다는 이야기도 해주었다. 그랬더니 돌아온 학생의 답이 가슴 뭉클할 정도로 기특했다. 빨리 졸업해서 취직해야 부모님 걱정도 덜어드리고 동생을 대학에 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학생들이 공부하는 학교의 총장이라는 사실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그만큼 또 큰 책임감을 느낍니다. 재능에 인성을 더한 귀한 학생들, 더 잘 가르치고 더 좋은 교육을 받도록 더 뛰어다녀야죠. 그게 우리나라를 위해 애국하는 거고 미래를 위한 노력 아니겠습니까?”

실무와 이론교육 50 대 50
전 총장은 올해 개교 20주년을 맞아 ‘20주년 기념 사업단’을 조직했다. 재학생들의 롤 모델이 될 동문을 찾아 소개하는 ‘한기인상 스토리’ 제작을 비롯해 우리나라 대학교육의 새로운 모델 정립을 구축하는 ‘챌린지 2030 연구과제’ 등 20주년 사업이 한창 진행 중이다. 6월 중순, 학교를 찾았을 때도 학생들은 물론이고 교직원들까지 20주년 기념행사 준비로 분주했다. 반값 등록금 시위가 벌어지는 여타 대학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원래 우리 학교는 중공업이나 기계 등 주요 산업의 기능인력을 양성하는 교원 배출을 목적으로 설립된 일종의 사범학교예요. 그런데 고용보험제도 도입으로 산업환경이 달라지면서 갑자기 인력 수요처가 줄었어요. 1992년 첫 입학생을 받아 1996년 졸업생을 배출하는 시점이었어요.”

1990년대 중반까지는 근로자 수 300인 이상 기업은 무조건 직업교육훈련기관을 설치해야 하는 의무가 있었다. 그러나 고용보험제도 도입으로 해당 조항이 법적인 의무에서 제외되면서 기업들마다 훈련기관을 폐쇄했고 기술 교육자들을 필요로 하는 곳도 줄었다. 자금을 출연했던 노동부와 정부 관계 기관들은 한기대의 존폐 여부를 놓고 고심 끝에 실무 중심의 정부 육성 기술핵심 엔지니어를 육성하는 학교로 발전의 가닥을 잡아나갔다. 그리고 개교 20년 만에 한기대는 국내 유수 기업들이 신입사원 선발 때 졸업생들을 가장 먼저 스카우트하려는 대학으로 성장했다.

실제 한기대 학생의 취업률은 전국 4년제 대학은 물론이고 전문대학까지 포함해도 1등이다. 지난해 10월 교육과학기술부 발표에 따르면 한기대 2010년 6월 1일 기준 취업률은 81.1%. 교과부가 전국 대학 졸업생의 건강보험데이터베이스를 연계해 군 입대나 대학원 진학 등의 허수를 배제하고 실제 기업에 입사한 사람만 집계한 결과다. 당시 조사에서 전국 대학 평균 취업률은 55%였다. 지난해 하반기 취업생까지 합하면 한기대 졸업생 취업률은 93.6%에 달한다. 특히 삼성·현대·LG·STX조선 등 국내 대기업과 공기업 취업률이 40%를 웃돌 정도다. 올해 학교에서 자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올 2월 졸업생 중 39%가 대기업에 취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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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술교육대는 학생들의 실무능력 함양을 위해 실험·실습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기업들이 우리 학교 졸업생들을 선호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다른 공과대학이랑 다르게 저희는 이론과 실무교육에 더해 직업교육교사 자격증도 발급해요. 다른 학교보다 이수 학점도 10~20점 많아 150학점을 이수해야 해요. 교직 과목을 이수한 학생들은 직접 교안 짜는 거며 자신이 아는 기술을 남들에게 가르치는 커뮤니케이션 능력도 배우죠. 기업 입장에서는 자기 혼자 제 일만 잘하는 사람보다 다 함께 협동하는 인재를 더 요구하니 당연한 결과 아니겠습니까?”

한기대는 중앙일보 전국대학 종합평가 교육중심대학 부문에서 2년 연속(2009, 2010년) 전국 1위를 차지했다. 기계정보공학부, 메카트로닉스공학부, 전기·전자·통신공학부, 컴퓨터공학부, 디자인공학과, 건축공학부, 에너지·신소재·화학공학부, 산업경영학부 등 7학부 1학과 체제의 학부 과정은 모두 실무와 이론교육을 50 대 50으로 나눠 철저한 실사구시형으로 진행된다. 교육 시간은 2500시간인 4년제 대학보다 무려 1500시간 많은 4000시간이고, 첨단 실습장비가 구비된 70여 개의 연구실인 랩(LAB)도 운영한다.

전 총장은 저녁마다 가끔 학생들이 연구하는 랩을 둘러보곤 한다. 랩에서는 3~5명이 한 팀을 이뤄서 같이 아이디어를 내고 브레인스토밍하며 새로운 장비를 개발하거나 토론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노력하지 않으면 졸업할 수 없는 졸업제도도 이런 학교 분위기 조성에 한몫한다. 졸업할 때 기능사 자격증에 기사 자격증, 여기에 기술교육 자격증도 받아야 하고 졸업연구 작품전도 통과해야 졸업할 수 있다. 지난해 졸업연구 작품전 때는 ‘태양전지를 이용한 횡단보도 LED 바닥 조명 시스템’ ‘다목적 휠체어’ ‘레스토랑 무인 주문 시스템’ 등 학생들 아이디어 180여 개가 쏟아져 나왔다. 이 중 특허를 취득한 것만 벌써 10여 개다.

글로벌 마인드 갖춰야
전 총장은 올여름 학생들과 충남 부여로 농촌봉사활동을 갈 계획이다. 타 학교들처럼 의례적으로 찾아가 때우고 돌아오는 게 아니라 농기계를 수리하고 청소하는 기술봉사활동이다. 학교 설립 이래 20년을 이어온 한기대의 전통행사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농촌 독거노인 가정의 전기배선을 점검하기도 한다. 지은 지 40년 넘은 노후한 주택에 독거노인들이 혼자 살다가 합선이나 누전 등의 전기 사고가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는 데 착안해 학생들이 고안한 봉사활동이다. 배운 것을 남들과 함께 나누며 살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전하기에는 이만한 것도 없다.
“지난해에는 몽골봉사활동도 다녀왔어요. 정부의 교육역량강화사업 예산으로 진행했는데 3000만원가량을 들여 몽골 사막화 방지사업을 도왔죠. 몽골 사막에 태양열 에너지 시설을 설치하고 지하수를 끌어올려 저수조를 만드는 일이었어요. 우리 학생들이 직접 프로젝트에 참여했는데 그렇게 뿌듯해할 수 없더군요.”

올 여름방학에도 몽골을 방문한다. 어떻게 알았는지 KBS에서 동반취재를 하고 싶다는 연락도 왔다고 한다.
“우리 학교의 미래를 국내 기업에만 한정 지어서는 안 돼요. 우리나라가 1970년대 해외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이제는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면서 다른 개발도상국가를 돕는 위치에 올라서지 않았습니까? 지금 젊은이들은 이런 마인드를 배워야 해요. 자신들이 도움받는 처지가 아니라 나가서 개발도상국을 도울 수 있는 위치며, 자신들의 무대가 대한민국 땅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가 된다는 걸 배우라는 거죠.”
전 총장은 이미 이집트나 팔레스타인 지역 등의 기술교육 현장을 답사하고 왔다. 국제협력단의 자금 지원으로 학생들의 기술교육 현장을 해외로 넓혀나가는 토대가 만들어지고 있는 셈이다.

학생들에게 글로벌 마인드를 심어주려는 소소한 노력도 끊임없다.
첫 번째는 언어 습득. 글로벌 인재가 되려면 일단 외국 사람들과 언어 소통이 자유로워야 한다는 생각에 캠퍼스 내에서 학생들에게 뜬금없이 영어 한번 해보라고 한 적도 있다고 했다. 한기대는 공과대 학생들임에도 토익 시험을 필수로 정해놓았다.

“그래도 아직 학교 브랜드 파워가 대중적이지 못해요. 기업은 알아주지만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한기대를 모르는 이들이 더 많아요. 졸업생들이 저에게 이런 내용을 직접 토로하기도 하더군요. 이렇게 좋은 대학을 모르는 사람이 아직 너무 많다는 사실을 사회에 나와서 알게 됐으니 학교 홍보에도 최선을 다해달라는 부탁입니다.”

전 총장은 학생들이 자부심을 갖고 사회에 나가 제 역량을 다 발휘할 수 있도록 올해부터 학교 홍보 프로젝트도 시작했다. 연초 교직원 월례조회 때 수첩 크기만 한 팸플릿을 제작해 교직원들에게 나눠주며 평소 가지고 다니다가 만나는 사람들마다 나눠주도록 했다. 대신 신문광고나 돈 많이 드는 이벤트는 지양한다. 학생들과 교육을 위한 씀씀이는 배포가 큰 전 총장이지만 그 외 예산 집행에는 10원 한 푼도 허투루 쓰지 않는다.

“정부 예산으로 운영되는 학교예요. 사회에 기여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최고의 대학 시스템을 갖추었는데, 그것을 알리는 일은 이 대학에 몸담은 교직원의 의무고 책임이잖아요. 팸플릿을 한 사람이 1년에 100장만 나눠줘 보십시오. 학부와 대학원생까지 4300명, 교직원 1000명, 모두 5300명이 1년 동안 100장 나눠준다고 하면 한 해 50만 명이 한기대를 알게 돼요.”

전 총장 자신도 수첩에 끼워둔 팸플릿을 보여주며 하루에 서너 장씩은 꼭 나줘준다고 했다. 직접 학생들의 멘토 역할을 하겠다는 생각에 올해 가을학기부터는 직접 강의도 한다. 한기대는 매주 수요일 각계각층의 지도층 인사나 인문학자 등을 초청해 인문학 강좌를 여는데 이 중 한 강좌를 맡을 계획이다. 프로그램 이름은 ‘총장과 학생의 열린 강좌’라는 ‘P&S 오픈 체어(PRESIDENT & STUDENT OPEN CHAIR)’라고 할 생각이다.

수업 후에는 학교 후문 쪽 선술집에서 학생들과 막걸리라도 한 잔씩 기울이며 조언을 들려줄 참이다. 전 총장은 가끔 선술집에 나타나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며 그날 술값을 모두 내주는 ‘골든벨’을 울리곤 했다. 격의 없는 대화에 전 총장 인기도 나날이 높아지니 학생들은 저마다 총장과 술자리를 갖고 싶어한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보편화로 최근에는 전 총장이 술집에 나타나면 학생들이 서로 실시간으로 연락해 기숙사에 있는 학생들까지 모두 나와 총장님과의 대화에 참여하려고 한다.

“기술 개발이 정말 빨라졌어요. 하지만 대학 입장에서는 그 변화에 맞춰 신기술 장비를 들여놓기에 역부족입니다. 그런데 기업들은 공과대학 나온 학생들이 장비도 하나 못 만진다고 볼멘소리만 해요. 서로 문 꼭 걸어 잠그고 있으면 개선의 여지는 없습니다. 학교에서는 기본적인 것을 배우고, 기업은 1년 이상씩 학생들을 대상으로 인턴십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해당 기업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는 데 노력해야 해요. 이미 해외 유수 공과대학들은 기업과 연계한 기술교육의 문을 열어놓고 있습니다.”

이런 체계적인 교육시스템을 갖추려고 정 총장은 발이 닳도록 노동부와 기업들을 찾아다닌다. 전 총장은 4년제 총장 임기 중 올해가 3년째니 자신이 학교에 들일 시간이 1년 남짓이라며, 남은 1년 동안 미래 20년의 발전을 가능하게 할 토대를 마련해두고 싶다고 했다. 한기대의 미래가 곧 대한민국의 산업 발전과 맞닿아 있다.

정부도 기업도 인정한 교육 중심 대학

한국기술교육대학의 기록

한기대의 교수 선발 과정은 이채롭다. 해당 전공 박사 학위 취득 후 3년 이상 산업체나 연구소 등 현장 일선 경험을 가진 사람만 교수로 채용한다. 산학협동의 관계를 가르치기 위한 방법이다. 빠르게 돌아가는 산업체의 변화에 뒤떨어지지 않도록 하려고 교수들을 3~4년마다 1학기씩 기업체에 파견해 최신 기술 동향과 연구 경험을 쌓도록 하는 ‘교수현장연구 학기제’도 운영 중이다.

철저한 교육 중심 대학으로 거듭나다 보니 취업률도 상승하고 더불어 입학생 수준도 높아지고 있다. 최근 5년간 한기대 신입생 수능 평균 성적을 보면 2007학년도 상위 18.2%에서 2011년 14.4%로 약 4%포인트 이상 상승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한기대의 이런 변화에 주목해 2008년부터 4년 연속으로 한기대를 교육역량강화사업 지원 대학으로 선정하고 매년 20억원 상당을 지원한다. 지난해에는 25억3700만원을, 올해는 28억5500만원을 지원했다. 학교 측은 지원금을 활용해 교육 과정 개편과 교육 환경 개선에 사용할 계획으로 현재 본교 캠퍼스에는 새로운 교육관을 신축 공사 중이다.

2009년 6월에는 교과부로부터 광역경제권 선도산업 인재양성사업에서 ‘New IT’사업에 선정돼 연간 50억씩 5년간 250억원을 지원받기도 했다. 사업을 수행할 ‘E2-반도체장비인재양성센터’는 친환경·에너지절감형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장비 분야 인재를 양성하는 허브기관으로 충청남·북도와 대전광역시 등 3개 지자체, 삼성전자·하이닉스반도체·현대중공업 등 60개 산업체, 충남테크노파크 등 7개 협회, 연구소 등 70여 개 협력기관으로 구성된 산·학·연 집합체 역할을 하게 된다.

지난해 4월에는 지식경제부로부터 ‘기술경영(MOT) 학위과정 운영대학’으로 재선정되기도 했다. 2006년 서울대·포항공대·성균관대와 함께 교과부와 지경부의 MOT 전문학위 운영대학으로 선정된 이래 한기대만 4개 대학 가운데 유일하게 2단계 MOT 학위과정 운영대학으로 재선정된 것이다.

한기대는 5년 전 천안에 제2캠퍼스도 지었다. 삼성전자와 협력사 직원들의 재교육을 담당하는 기관으로, 삼성이 시작한 이래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들까지 직원 교육을 맡아달라고 이곳을 찾는다. 한기대 학생들도 이곳에서 교육을 받으며 해당 기업이 요구하는 인재상을 배워나간다. 산학협동 기술교육의 첫 모델이다.

글 이선정 칼럼니스트 [sjlgh@joongang.co.kr]
사진 최대웅 월간중앙 사진기자 [wo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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